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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둠즈데이북 1~2 세트 - 전2권 - 10점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아작


유럽 인구의 3분의 1, 아니 절반까지 죽었다. 그것은 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천벌이었다. 최후의 날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어디는 마을 전체가 몰살해 죽은 사람을 묻어줄 사람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퍼지는 흑사병의 공포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려했지만 그것은 더 병을 퍼뜨리는 일이 됐다. 그렇게 퍼진 흑사병은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박살냈다. 그 병이 진행되는 모습도 끔찍했다. 고열을 동반하면서 환자는 망각을 보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등에 큰 멍울이 생긴다. 그 멍울은 끔찍하게 커지고 어떤 감염자는 눈이 썩어들어가 손으로 긁어내야 했다. 1300년대 의사들은 멍울을 째보기도 했지만 터진 고름에 노출되어 병을 옮기거나 동맥을 건들여 죽이기 일쑤였을 것이다. 항생제라는 것은 커녕 아스피린도 없던 시절이다. 약초라는 걸 달여서 붙이거나 먹이는 게 전부였던 시기였다. 피부 밑의 핏줄이 터지면서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으로 불렸다. 사람들은 이 공포스러고 괴기스러운 죽음에 좌절했다. 이런 떼죽음이 하늘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여자, 유대인들이 하늘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산 채로 태워죽이거나 목을 매달았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흑사병은 그저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만 알았다.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Doomsday book)"은 흑사병이 발병하던 초기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참했다. 글이 줄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살려내는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바이러스처럼 뇌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이 핀다. 세상의 끝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진실이 나타난다. 키브린은 성녀였고, 로슈 신부는 성자였다. 흑사병은 신의 천벌도 분노도 아닌 그냥 질병이었다. 무시무시한 병 앞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서로를 의심과 비난으로 쳐다보며 신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키브린은 이 병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퍼지는지 알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을 죽음의 사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현대 지식을 총동원하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역사를 바꿀 수 없었다. 시간 모순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미래에서 왔다고 할지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키브린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것은 중세시대를 뒤흔들었던 흑사병의 사망률은 2분의 1 혹은 3분의 1이었다는 것에 기댔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 그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이미 과거는 정해져 있지만, 키브린은 그 결론과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람들은 쉽게 진행되는 사건의 결론을 내고, 그에 따라 해야할 행동을 계산적으로 따지면서 이익을 쫓아 행동한다. 우리들에게 키브린은 묻고 있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결말에 기대지 말고 나아가라고. 세상에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변화시키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대며, 더 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 앞머리에 있는 존 클린 수사의 기록이 그것을 말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 모든 일이 시간에 파묻히지 않도록, 그래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 모든 일이 우리 후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 땅 사악한 존재의 손아귀에 놓인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앙을 보아온 나는, 이제 죽은 자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리며 그동안 내가 목도한 모든 일을 여기 적는다. 

기록은 글쓴이와 함께 소멸되지 않아야 하고 노동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함께 무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므로, 내 오늘 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양피지를 남기니,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아담의 후예 중 그 누구라도 페스트로부터 도망쳐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 존 클린 수사, 1349년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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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 6점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민음사


난감한 일이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도 보고, 침대 머리맡에서도 보았다. 작정하고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탐독도 해 보았다. 그의 이전 작품 "데미안"에 대한 기대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러나 달랐다. 재미도 감동도 없이 철학적 사유와 몽환적 상상력, 이해되지 않은 이야기의 연결 구조, 도저히 현실적 인물이라고 보기 힘든 등장인물들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내 사유의 빈곤함인지, 아직 무르익지 않음인지 모를 일이다.

 

주인공 하리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사상을 고수하며 전쟁으로 치닫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소시민적인 삶과 명확히 구분되며 홀로 좁은 방에서 고전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사상가이다. 세상에 대한 희망도 기대도 없고 삶의 즐거움도 행복도 모른다. 마침내 거칠고 황막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가슴 속에서 야수를 불러내고 말았다. 그 이리는 그의 영혼의 살점들을 뜯어먹으며 끝내 그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헤르미네를 만나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혐오하던 대중 음악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속물적이라고 보았던 가면 무도회에 참석해 어린 소녀부터 중년의 부인까지 희롱하며 춤을 춘다. 자신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던 그가 마지막에 찾아간 이상한 장소에서 몽환적 상상을 경험하고 수많은 자신의 개성들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에 대해 깨닫는다. 


50대의 헤르만 헤세는 삶에서 회한과 절망을 경험했던 것일까. 세상과 불화하거나 또는 세상에 너무 예민하거나 했을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시인이라면, 소설가라면 보다 예민하고 불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이유와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상황에 담긴 은유의 의미를 찾기 바빴고, 맥락없이 빠져드는 독서를 다시 주워담기에 정신없었다. 너무 어렵게 책을 읽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바삐 행간을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 속에서 한마리 야수가 정신없이 심장을 뜯어 먹는 것은 아닐까 생각됐다. 영혼 없는 책읽기... 내 영혼에게 참 미안한 책 읽기였음을 고백해야겠다. 



▲ 딸과 함께 간 실내 놀이터에서도 열심히 탐독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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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 순간이 그립다. 양 옆으로는 곧게 뻗은 참나무들이 적당하게 나 있는 숲의 오솔길, 숲의 향을 온전히 맡을 수 있는 그 길을 걷던 순간 말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숲과 나라는 인간은 온전히 하나되는 합일의 경험에 다가선다. 경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계조차 서로 다른 종의 경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그 순간 숲에 들어온 낯선 동물의 하나다.


                                                                                       ⓒ강대진(eowls@eowls.net)


지리산을 비롯해 남도의 여러 산을 돌아다니고, 백두대간에 도전한다고 꼬박 열흘 동안 지리산부터 덕유산까지 걸을 때도 그런 순간은 매번 찾아왔다. 어쩌면 이제는 잃어버린 시간이 된 것일까? 산, 숲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됐다. 숲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라는 책을 들었다.


이 책은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숲 속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숲의 생태계에 대한 관찰과 그 속에 담긴 생물학적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 낸 책이다. 숲이 가지는 생태적 환경의 조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태고적 신비, 그로부터 수만년 동안 진행되 온 진화의 오묘함 등을 쉽고 아름다운 문체로 담았다. 이 책에 담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내 좁은 시야를 다시 한 번 넓혀주었다.


작가는 한 겨울의 추위를 맨 몸으로 도전해 보면서 박새가 겨울을 나는 방법과 그러기 위해 발달할 수 있었던 신체의 비밀들을 비교해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극심한 추위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고 서술했다. 이 책에는 이처럼 동물만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 생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끼, 꽃, 풀, 나무들은 동물들과 함께 공존한다. 나무 하나가 쓰러져 죽으면 그 죽은 나무 주위로 더 많은 풀과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싹튼다. 곰팡이부터 도롱뇽까지 수많은 무척추 동물들이 썩어가는 줄기 속과 밑에서 번식한다.

그래서 숲의 건강함은 고사목의 밀도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죽은 나무들이 숲을 살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억지로 나무를 베어 넘어뜨리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숲의 자연스러운 경쟁과 협력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일궈낸 위대한 작품은 여럿 있지만 그 중에 여기서는 ‘반딧불이’에 대해 소개해 본다.


어둠의 장막이 하늘을 완전히 덮었다. 하지만 만다라[각주:1]를 떠나려고 일어선 찰나 숲이 빛으로 가득 찼다. 반딧불이들은 땅 위 60~90센티미터 높이에 머물기 때문에, 선 채로 내려다보면 바다에 빛나는 부표가 가득 떠 있는 것처럼 지면이 울렁거린다.(생략) 이 비교는 공정하지 못하다. 아기를 현자(賢者)와 비교하는 셈이니 말이다. 우리의 손전등은 기껏해야 200년 전에 발명되었으며 화석 에너지와 화학적 에너지가 풍부한 시대에 발전했다. 사람들은 전구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연료가 무한한데 왜 쓸데없는 수고를 들이겠는가? 이에 반해 반딧불의 설계는 수백만 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반딧불이는 늘 에너지가 부족했기에, 채굴된 화학 물질이 아니라 자신의 식량을 연료로 사용하며 낭비가 거의 없는 전구를 만들어냈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이 또한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말인지 되새겨 보기도 하였다. 작가는 숲에 버려진 골프공 하나를 치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골프공이 가진 인간적 환경의 특성, 인간은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인지, 인간과 자연은 전지구적 관점에서 하나의 자연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그 골프공도 자연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지 등등 생각이 뻗어나간 자리에서는 또다른 건강한 싹이 움트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든 충동은 골프공을 치워서 만다라의 ‘순수함’을 회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충동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골프공을 치워도 만다라가 산업 부산물로부터 완전히 깨끗해지는 않는다. 산, 황, 수은, 유기 오염 물질이 끊임없이 비에 섞여 내리기 때문이다. 만다라에 있는 모든 생물의 몸 속에는 바깥 세상의 분자 골프공이 흩뿌려져 있다. 나 또한 옷에서 떨어진 섬유 가닥, 외부의 세균, 숨으로  내쉰 외부 분자 혼자 따위를 만다라에 더했다. 심지어 만다라 생물들의 유전 부호에도 산업의 낙인이 찍혔다. 날아다니는 곤충, 특히 사람 가까이에 살던 조상의 후손들에게는 많은 살충제에 대한 내성 유전자가 들어 있다. 따라서 골프공을 치우는 것은 인간의 이 모든 인공물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하여 인간과 분리된 ‘순수한’ 존재라는 환상을 유지할 뿐이다.

순수의 충동은 심층적인 두 번째 차원에서 무너질 것이다. 인간의 인공물은 자연에 묻은 얼룩이 아니다. 이런 시각은 인간과 나머지 생명 공동체를 갈라 놓는다. 골프공은 똑똑하고 놀기 좋아하는 아프리카 영장류의 마음이 물질로 구현된 것이다. 이 영장류는 신체적·정신적 솜씨를 겨루는 놀이를 고안하는 일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놀이가 펼쳐지는 무대는 이 영장류가 떠나온,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는 사바나를 꼼꼼하게 재구성한 복사판이다. 똑똑한 영장류는 이 세계에 속한다. 영장류의 생산물도 이 세계 속할 것이다. 이 유능한 영장류가 자신의 세계를 통제하는 데 능숙해지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긴다. 이를테면 지금껏 보지 못한 화학 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데, 그중 일부는 생명체에 유독하다. 대다수 영장류는 이러한 역효과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영장류는 자신의 종이 세상에 미친 영향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아직까진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곳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도 그런 영장류 중 하나다. 따라서 골프공이 숲에 떨어진 것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은 골프공과 골프장, 골프객, 이 모두를 낳은 인류 문화를 욕한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인류는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인류의 창의성과 놀이 본능 또한 사랑해야 한다. 인간의 인공물이 남아 있다고 해서 자연이 아름답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는 덜 탐욕스럽게 덜 어지르고 덜 낭비하고 덜 근시안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감을 자기 혐오로 바꾸지는 말자. 우리의 가장 큰 실패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품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세상에 대한 연민을 품는 것, 그것은 아프리카 영장류인 나를 비롯한 인간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한 걸음 더 자연 속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을 향한 연민으로 나아간다. 나아가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독자에게 불어넣어 준다. 이 책이 가진 힘이다. 숲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닌 숲 속에 있는 나를 상상하게 한다. 오롯이 숲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나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 새소리를 상상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슴이 떨릴 때 스스로 살아있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즈음, 이 책은 죽음을 풀어내는 자연의 순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도에서 독수리가 멸종 위기로 몰리면서 일어난 일이다. 들판이나 숲에서 죽어간 동물들을 1차적으로 분해하고 해체하는 독수리들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위장을 가지고 있다. 독수리들은 썩어가는 사체에서도 영양분을 흡수하고 열량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독수리들이 멸종 위기로 몰리자 가축이나 야생동물들이 들판에서 그대로 썩어가야 했고, 이로 인해 파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감염된 들개들이 창궐하기 시작하면서 이로 인한 질병과 광견병이 인도 사회를 괴롭혔다. 또한 독수리의 멸종은 '풍장'을 전통으로 여기는 인도의 파르시 공동체에도 위기를 가져왔다. 인도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독수리의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비슷한 예는 북미에서도 나타났다. 숲을 복원하고 사슴을 숲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사슴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숲이 오히려 망가지는 현상이 나타나자 결국 늑대를 넣어 숲의 균형을 유지한 예도 나온다(관련 기사).[각주:2] 하나의 숲이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수천년 간 이어져 온 질서가 필요하다.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복원은 수천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유기화학적 공산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진화의 신비는 이런 자연의 질서 앞에는 한낱 어린 아이의 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연민을 바탕으로 자연 앞에 더 겸손해야겠다.

조만간 아이와 함께 봄이 움트고 있는 작은 숲을 찾아가 보아야겠다. 아이가 보는 숲이 내가 보는 숲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좀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출판사
에이도스 | 2014-06-27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2013년 교양과학 부문 미국 최고의 화제작2013년 미국 국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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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숲을 '만다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온갖 자연만물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곳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 기사가 인용한 논문: William J. Ripple et. al., Status and Ecological Effects of the World’s Largest Carnivores, Science 10 January 2014: Vol. 343 no. 6167 DOI: 10.1126/science.124148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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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맞고 잘게 부서진 쪽파의 비극이 여기까지 번지지는 않았을까. 무도 감자도 단단함을 잃지 않았다. 늦도록 장터를 지키다가 떨이로 딸려온 노각이 몸을 구부린다. 물정을 안다는 몸짓이다. 문밖의 상황에 따라 순서가 정해짐을, 뒤집을 수 없음을 예감한 안색이다. 그마저 포기한 쑥갓 한 묶음이 구석에서 시커멓게 절망한다. 물러지는 전신을 바라보기만 한다. 

터주 노릇 하는 김치가 칸칸 일가를 이뤘다. 고춧가루와 젓갈에 휘둘린 배추가 겉절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말끔한 백김치는 도시 출신처럼 보인다. 밭에서는 제법 우락부락했을 총각무가 가지런히 통에 누워 순화되는 중이다. 억센 허리로 소금기가 스민다. 갓김치는 남도 출신답게 몸짓이 중모리로 늘어진다. 손가락으로 집으면 육자배기 한 자락이 묻어날 것만 같다. 종횡으로 잘려 한 무더기 깍두기가 된 무가 원래 자리를 찾느라 부산하다. 반투명 통으로 부석거림이 비친다. 묵은지는 길게 누워 풋것들의 살뜰함과 무력감을 보기만 한다. 겨울을 넘겨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다. 숙성이라 불리지만 자신들에게는 인내의 시간이다. 적멸로 가는 길은 짜고 맵고 종내는 시큼하다.

- 냉장고, 전영관, 69~70쪽



냉장고 안을 묘사한 표현이 찰지다. 




시인의 사물들

저자
강정, 고운기, 권혁웅, 김경주, 김남극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4-06-1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쉰두 명의 시인이 새롭게 빚어낸 쉰두 개의 사물에 대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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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6점
장영희 지음/샘터사



얼마전 돈키호테를 구매했다. 아주 오랜 기억 속, 그러니까 중학교 때였던가, 그때 즈음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던 그 이야기를 온전히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소개하려는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의 영향이 크다. 사실 우리가 본 고전의 대부분은 청소년을 위한 세계문학전집이나 교과서 등을 통하여 극히 일부분만 접하거나 각색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고전을 잡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알고 있던 내용의 반전을 기대한다면 나쁘지 않지만, 반대로 시대를 넘어 소통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전을 새롭게 접하는 일은 때론 비장한 마음가짐까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먹는 데에 위의 책이 도움이 됐다. 


비단 그뿐일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12월 중순부터였다. 한반도의 남쪽은 대통령 선거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인권변호사 출신의 후보가 독재자의 딸을 역전하여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세간의 기대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독재자의 딸이 투표자 절반의 지지를 받아내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저기서 다시 '멘붕'의 도미노가 시작되었고, 그 많던 SNS와 블로그의 페이지는 한참동안 잠잠해졌다. 이후 개봉된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 혁명적 내용 때문인지 시대의 '힐링 영화'로 등극하면서 멘붕을 당한 많은 이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 



출처: http://www.arte365.kr/?p=3203출처: http://www.arte365.kr/?p=3203



대선의 결과보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내 주위에 전해졌다. 대학시절 아주 절친했던 내 후배의 죽음이다. 그의 선택을 매번 존중해 주었으나 그의 마지막 선택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이 그에게 준 충격이나 슬픔, 아픔 등이 얼마만했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그를 아끼고 좋아했던 많은 선후배 동기들은 크나큰 슬픔 속에서 그를 보내야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보았던 이 책은 내 복잡하고 종잡을 때 없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길을 열어 주었다. 영문학자 장영희 씨는 영미 문학의 고전 작품들을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끌어주었던 매개체로 소개하고 있다. 항상 그래왔듯, 치유는 문학의 소명이자 임무이다. 문학은 항상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반영해 주었고, 그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다 보니 젊은날 꿈꾸었던 것들은 이제 저 멀리 추억의 한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살았던 내 후배의 삶은 언제나 자신을 먼저 일으키고 희생하고 용기 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기 전, 그를 붙잡아 줄 무언가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든다. 모두가 치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치유가 필요한 곳에는 그 빛이 닿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 문학이, 그리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한줄기 따뜻한 빛이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저자
장영희 지음
출판사
샘터사 | 2005-03-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칠고 숨가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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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부두로 가는길

저자
조지 오웰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0-01-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의 탄광 지대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담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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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2-08-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공지영이 이야기하는 또 다른 도가니!《도가니》, 《우리들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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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의자놀이"를 본 후, 요즘은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있다. 1930년대 한창 산업화를 달리면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을 휘돌고 있던 영국의 산업지대 노동자, 그 중에서도 광부 노동자를 다룬 그의 치밀한 시선과 지배계층에 대한 냉철한 비판적 시선은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날이 서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광부들의 삶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의 글은 뛰어난 르포 문학의 본보기로 자리잡고 있다. 대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없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공지영의 "의자놀이"가 1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진실과 접했으면 한다. 이땅의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대중을 속이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공포 속에서도 용기를 얻고, 절망적 슬픔 앞에서도 희망의 정수박이를 끌어내는 지혜를 품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의 피로 대신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기업이 노동자를 희생시키면서 소수에 부를 집중시키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함께 살자"가 아니라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잔인한 의자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도 한 가정의 가장이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기업이 살자고 2000명 이상의 가정을 파괴하였다면 그것은 또하나의 가정 파괴범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다 함께 살자"는 당연한 외침을 군화발과 최루탄으로 짓밟으면 우리 사회가 한걸음 더 나아진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모습이 자본주의의 막장일까? 아니면 바닥은 아직도 멀었을까? 희망을 기다리는 일은 괴롭고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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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내가 좀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일만 하다가 도살장에 팔려간 말 복서가 생각난다. 사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의 하나다. 때로는 '성실' 때로는 '희생'으로 떠받들어지지만, 사실은 '무기력'의 다른 말일 수도 있고, '대안없음', '출구없음'의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무지는 결국 우리에게 성찰 없는 '희생'과 비판 없는 '성실'만을
요구할 뿐이다. 이런 체제가 바라는 것은 저항 없는 '무기력'의 상태이다.

길가에서 걸인이 굻어죽어도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유죄다. 하물며 생때같은 어린 목숨들이 고작 성적 때문에 제 목숨을 아스팔트 위로 던져버려도 꿈쩍도 안하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지금 무기력하다.

선거로 사람을 잘 뽑자는 이야기도,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말도, 결국은 그 무기력 속에서 희망도 출구도 없는 세상을 향한 헛발질에 불구하다. 무지와 무기력은 결국 권력의 타락을 부추기고 방조하는 일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오가는 정치권력이 내온 결과는 처참할 뿐이다. 모든 불행한 일은 언제나 외부의 적(대부분 북한, 때때로 중국) 때문이라며 외치는 보수 언론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국민의 충견이 아닌 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는 검경부터, 체제에 순화되어 법의 정의를 고민하기 보다 승진과 권력에 욕심을 부리는 판사들, 빈곤의 그늘을 키우기에 여념없는 부자들, 교육의 숭고한 가치를 버리고 지식 장사에 나선 사학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안주하며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있는 정치가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당신이 만든 그 '성실'과 '희생'이 만든 댓가다.

권력을 탐해 그에 아부하거나 기생하려는 자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곧 전체주의 사회이며 파시즘 사회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무지에서 벗어나고 무기력을 깨지 않는다면 공포의 마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모두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끔찍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잇일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그 해답을 마련해 놓고 있다. 




동물농장(세계문학전집5)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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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면서 다시 책들을 정리했다. 이전에 아내와 책들을 합칠 때보다 더 정밀한 구분 작업을 했다. 시와 한국 소설 쪽은 출판사 별로 하거나 시리즈별로 해야 보기 좋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이는 보기에는 좋아도 실제적인 활용에서는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작가 이름 순서로 정리해 보았다. 동일 작가의 작품들이 가지런히 배열되니 책을 보는 느낌이 다르다. 시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시집이 7권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안도현, 김용택, 김남주의 순서를 나타냈다. 소설에서는 황석영의 소설이 5종으로 많았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아내와 내가 둘다 가지고 있는 시집이나 소설이 몇권 나타났다. 교양과학과 역사(신화) 관련 책을 한칸에 몰았다. 경제와 환경 관련 서적도 일단 하나의 칸에 몰았다. 사회비평은 홀로 온전히 한칸을 몽땅 차지했다. 취미실용 중에 여행과 사진은 따로 칸을 마련해 두고 나머지는 함께 몰아두었다.

뿌연 먼지를 날리며 반나절을 꼬박 작은 방에서 그 작업을 했다. 잃어버렸던 책꽂이는 발견했지만, 역시나 정체모를 돈 따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중복된 책들이 여러 권 발견됐다. 게다가 복잡한 책장에 자리가 부족한만큼 불필요한 책들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방한구석에는 노끈에 단단히 묶인 책들이 쌓였다. 마치 중죄를 지은 죄인처럼 포박을 당한 채 쪼그라져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까워 보였다. 책들은 이제 형장, 아니 고물상에서 이슬을 맞으며 사라질 일만 남은 듯하다. 물론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책들은 그럴 운명으로 분류되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이 문제다. 만일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이 있다면, 그 도시의 지하 세계에서 산다는 그림자 제왕에게 보낼 수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공룡 미텐메츠다. 이런, 사람도 아니고 공룡이 주인공이다. 아니 정정하자. 이 책의 주인공은 책이었다. 시종일관 책들은 주인공을 괴롭히고, 위기로 몰아넣고, 생명을 위협하며, 심지어 중독과 최면을 걸기도 한다. 책을 찾아다니다가 지하 세계 깊숙한 곳까지 떨어지고 고대의 룬문자로 쓰인 책들의 기운에 휩싸인 채 책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도망 다니다가 부흐링이라는 책을 먹는 종족도 만난다. 부흐링족이 책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들의 읽는 행위와 같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부흐링이라는 종족은 책을 읽어야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가 부르단다. 심지어 바로크 소설을 한꺼번에 세권을 읽은 어느 부흐링족 청년은 다이어트를 위해 수일간 하루에 시 3편만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런 세상에서 이야기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대부의 유언대로 부흐하임에 왔다가 온갖 일들에 휩쌓인다. 그리고 마침내 잊혀진 책들의 지하세계, 그 곳의 왕 그림자 제왕과도 극적인 만남을 가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 '책' 그 자체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장장 800쪽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책은 충분히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외쳐 나를 지하세계로 질질 끌고 내려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책을 즐기는 사람, 책을 사랑하는 사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책을 읽고 즐길 수 있다.


꿈꾸는책들의도시(전2권SET)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발터 뫼르스 (들녘,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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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방에 처박혀서 버려질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저 책들이 마지막에 닿을 저 세상은 부흐하임의 깊은 지하 세계이길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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