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자전거 출근 10.6km
🎉 2020년 누적 자전거 주행거리 869.9km

1.
환갑 잔치. 요즘 누가 잔치라고 하나요? 그럼에도 인생의 한 갑자를 살아온 세월의 무게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축하를 위한 자리는 다양하게 펼쳐지겠죠. 엊그제 아내의 오랜 은인이었던 분의 환갑을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어쩌면 그분의 환갑이라는 인생의 역사적인 날을 핑계삼아 함께 모여 안부를 묻는 자리였죠.

2.
그분의 사무실 한편에 각자가 마련한 음식들을 펼쳐놓고 나누어 먹었습니다. 예전 사진들을 슬라이드로 보는데 2002년 이후의 여러 사람의 모습들을 보면서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음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그때의 사진 속 아이들은 벌써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고 있고 그때의 청년들은 18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중년의 아줌마아저씨들이 되어 동지의 환갑을 축하하고 있다니...

3.
가끔 페이스북이나 구글 포토가 과거의 오늘을 보여 줄 때가 있죠. 그때의 내 아이는 이제 엄마 키만큼 커버렸고 나는 그만큼 나이를 먹어가는 걸 느끼죠. 과거는 참 아름답게 기억됩니다. 과거의 어느 매력적인 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만났던 이들이 그런 분들이었네요. 한때 뜨겁게 시대를 달궜던 사람들, 그 온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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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자전거 출근 10km
🎉 2020년 누적 자전거 주행거리 859.3km

1.
오늘은 정말 버스 타려고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 앞 횡단보도까지 갔지요. 근데 어제의 술자리 때문인지 만원 버스를 타는게 갑자기 피곤하고 두려워졌습니다. 마침 길건너 따릉이 주차대에는 밤새 비를 맞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따릉이들이 손잡이에서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고, 안장에는 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도 없어 저는 달려가 따릉이를 붙잡고 앱을 열고 말았네요. 그렇게 오늘도 따릉이 출근을 하고 말았다는...

2.
비온 다음에는 도로 곳곳에 물지뢰(물웅덩이)가 펼쳐집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곳을 지나가면서 쫙 퍼지는 물보라가 멋져 보이긴 했는데요. 오늘처럼 갈아입을 옷도 없이 나온 날에는 물웅덩이는 절대적으로 피해야할 공간이죠. 왜냐하면 등짝에 흙탕물들로 수채화를 그려버리기 때문이죠. 보기 좋으면 모르겠는데 그럴리 없다는 건 안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래서 살살, 빙판길을 달리듯이 천천히 왔는데... 아뿔사, 아침부터 고민한 시간에 자석 주행의 여파로 출근 시간을 못지킬 뻔 했네요. 내 자리에 온 시간이 8시 58분. 그래도 안 다치고 안 더러워진 상태로 왔다는 게 중요하겠죠. 자전거 신께 감사드립니다.



3.
어제는 회사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졌어요. 횟집에서 1차를 했지만 2차에서 먹은 닭똥집 튀김이 정말 맛있어서 소개해 드리려구요. 마포구 도화동에 "명동닭튀김". 여기 가시면 꼭 닭똥집 튀김을 드셔보시길. 배가 불러 더이상 먹을 수 없다고 했는데 똥집이 서서히 없어지는 마법이 일어났습니다. 사진도 찍지 못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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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자전거 출근 10.1km
🎉 2020년 누적 자전거 주행거리 849.3km

1.
나올 때부터 고민했죠. 자전거 탈까말까. 아주 약한 이슬비였어요. 내일부터 주구장창 비소식이 있을 것 같았어요. 오늘 못타면 이번주는 꽝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자전거를 탔습니다. 구간별로 이슬비가 좀 강하게 온 구간이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비 별로 맞지 않고 회사까지 왔습니다...만... 우려했던대로 뒷바퀴에서 튀어오른 흙탕물이 제 등짝에 흩뿌려졌네요.ㅠㅠ 운동복을 입고 탔어야했는데 에휴. 대충 물티슈로 닦아내고 그냥 일하고 있네요.

2.
영등포역 가기 전 토마스의 집(무료급식소) 앞에는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데 언제부턴가 거기를 아침마다 물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있어요. 물이 가득담긴 생수병 여러개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와서 그 물로 청소를 합니다. 매번 8시 즈음에 이곳을 지나가는데 왜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를 하시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시네요. 토마스의 집 근처에는 영등포 쪽방촌이 있어요. 아침에 여기를 지날 때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이나 장애인들, 노숙자들이 식사를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죠. 이곳도 한때 코로나 때문에 열지를 않았는데 최근에 다시 음식 냄새가 나는 걸 봐서는 식당을 다시 연 거 같네요. 아무래도 가난한 이들이 많은 곳이라 휴대폰 없는 분도 있거나 여러 이유로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도 그렇게 매일 물청소를 하시는 거 아닐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울 이들이 깨끗한 공중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면 희망은 더 커지지 않을까요. 새삼 그 아주머니가 만드는 희망이 남다르다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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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자전거 출근 10.1km
🎉 2020년 누적 자전거 주행거리 839.2km

1.
어제 저녁에는 이동진 선배님을 만나 술 한잔 나누었네요. 이런저런 세상사와 사는 이야기들이 고기를 굽는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옛 기억 속에서 소환되는 사건들이 저마다의 양념장에 버물어져 쌈싸먹기 좋게 입안에 들어갑니다. 어떤 기억은 알싸한 마늘처럼 입안을 얼얼하게 하지만 이내 달콤한 고기의 육즙이 풍미를 채우면서 술자리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오래된 이름들이 소환되었고 그네들의 안부도 오가고 잠깐 전화기도 들어보았어요. 2차 맥주집에서는 크림이 부드러운 생맥주로 들뜬 이야기의 파도를 덮어주어 차분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네요.

2.
코로나는 1년 이상 지속될 거라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해야 한다는 강한 경고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피로감 때문인지 모임에 초대한다는 소식도 자꾸 들려옵니다. 망설여집니다.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떻게 참석해야할까. 어제의 모임도 누구는 월요일부터 술이냐고 야단이겠지만 월요일이 가장 손님이 적기 때문에 잡은 것이죠. 덕분에 넓은 식당안에 테이블은 우리 포함 두 자리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2차 맥주집은 야외테이블이었고 손님은 우리만 있었으니 나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진 셈이죠. 이런 식의 모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보지만 매번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해도 다른 방역망에서 구멍이 뚫려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니 안심해서는 안되겠죠. 조심 또 조심...

3.
약간의 숙취가 남았지만 무사히 자전거 출근을 마쳤습니다. 제로 콜라와 아이스컵을 사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네요. 점심 때는 짬뽕으로 속을 풀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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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저녁 자전거 나들이 4.5km / 22일 아침 자전거 출근 10.1km
🎉 2020년 누적 자전거 주행거리 829.1km

1.
햇살이 뜨겁네요.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하고 나왔습니다. 6월도 이제 하순에 접어들었군요. 오늘 낮 최고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간답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2.
한강에서도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어요. 포식자를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숨을 쉬겠다고 뛰어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데... 수온이 올라가는만큼 물고기들도 이 여름을 나려면 고생 좀 할 것 같군요.

3.
2015교육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추후 평가도 나오겠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대면 수업 등으로 인한 교육 환경의 변화가 다음 교육과정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다음 교육과정이 대한 교육당국과 연구자들의 고민이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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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솔직히 말하면, 나도 경직된 인간이다. 그래서였는지, 경직된 인간들을 보면 난 항상 느꼈다. 어린 시절의 그늘들이 느껴졌다. 그 그늘을 만든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학창시절 만난 또래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대학 시절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그늘을 가진 후배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을 만날 때면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처럼 살아왔겠구나 라는 슬픈 예감이었다. 

이지안(이지은 역)에 대해 박동훈(이선균 역)이 느꼈던 감정들은 어쩌면 연민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 다른 이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몸으로 배워 온 이지안은 주위 사람들에게 냉랭하고 불친절하게 대하면서 자기를 가리고 보호한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찬 바람으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행동들이 박동훈에게는 안쓰럽고 불쌍하게 다가왔다. 

연민의 마음은 인간 본성이지만, 그 연민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연민은 또다른 연민과 맞닿을 때 의미있다. 때로 우울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길 때에도 가급적 감추고 함부로 꺼내 남에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럴려면 자존심이 나서서 머릿속에 수치심을 쏟아 붓는다. 그래서 연민은 동정과 다른 것이다. 연민은 연민을 알아보고 수치심의 수치를 낮추어 주며 자존심을 달래 준다. 나와 같은 인간, 나처럼 아픈 사람, 함께 아파할 사람...

박동훈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달려가지만 도저히 메꿔지지 않는 공허한 가슴 한쪽의 아픔들. 가족을 위해 살아오고 희생했다고 위로하지만 내 아들이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왔다는 자괴감. 다시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계속된 의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인생. 나름의 전문성으로 대기업 부장까지 올라왔지만 아내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고, 대학 후배가 대표이사로 발탁되어 들어왔다. 아내는 점점 일에 빠져서 가정이나 남편에게는 관심이 없다. 형과 동생마저 폐인이 되어 어머니 집에 의탁해 살아간다. 통장 잔고는 29만원밖에 없고,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형제들 분식집이라도 차려주자는 엄마를 만류한 그 때, 어디서 누가 보낸지도 모르는 5천만원 어치 상품권 뇌물의 유혹. 

이지안은 지칠 수가 없다. 할머니 요양원 비용을 대고, 빚 독촉을 핑계로 괴롭히는 광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밤낮을 제대로 누워보는 일도 없이 일을 한다. 접시닦이 일을 하는 곳에서 음식을 훔쳐와 저녁을 때우고, 회사 탕비실의 커피믹스를 훔쳐 불면의 밤을 만든다. 빚은 끝이 없고, 할머니 요양원 비용도 밀려서 야반도주를 해야 했다. 가난한 조손 가정이라고 도움을 주는 손길이 없었을까? 열심히 살아가는 지안의 모습을 안타깝게 봐준 이가 없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네 번까지. 이지안이 살인을 했었다는 과거를 알면 눈빛이 흔들리고 도망가 버렸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삶. 삼만 살을 살았는데도 자꾸 왜 태어나는지 모를 삶.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래 보여. 걔 지난날들을 알아보기가 겁난다.

 

많은 사람들의 값싼 동정에 시달려 보았던 이지안은 그녀가 불쌍하다는 박동훈의 말에 욕을 한다. 복수를 생각한다. 이지안에게는 월 오륙백만 원씩 받으면서 출근하는 박동훈의 그 말이 마치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처럼 고깝게 여겨진다. 부족할 것 없는 박동훈이 매일같이 지옥에 끌려가는 인상을 쓰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동훈에게 배달된 뇌물 봉투를 훔치고, 그를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도준영의 음모를 돕는 것도 이지안에게는 생존을 위한 지옥 같은 삶의 연장일 뿐이다. 박동훈의 삶은 그에게 의미 없다. 

박동훈은 우연히 만난 이지안이 홀로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억척같이 살아가면서도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이지안의 모습은 착하다. 싸가지없이 굴지만 지안의 깊은 곳에 있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박동훈이 알았다. 이지안을 돕고 그녀의 과거를 연민의 마음으로 알아간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지안이 사람을 죽였다는 걸 박동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는 척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모른 척 해 줄게. 너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모른 척 해 줄게. 약속해 주라. 너도 모른 척 해 준다고. 겁나. 너는 말 안 해도 다 알 것 같아서···· 
그러면 누가 알 때까지 무서울 텐데, 누가 알까····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람은 언제쯤 알게 될까, 혹시 벌써 알고 있나···· 어쩔 땐 이렇게 평생 불안하게 사느니 그냥 세상 사람들 다 알게 광화문 전광판에 떴으면 좋겠던데···· 

 

처음 이선균, 이지은 주연에 <나의 아저씨>라니! 오해받기 딱 좋았다. 드라마 안에서도 그랬지만 드라마 밖에서는 더욱 시끄러웠다. 아저씨와 어린 소녀의 사랑? <도깨비>가 대박을 내니 판타지가 아닌 현실 내용으로 재탕하려는 것이냐는 비난도 있었다. 나 역시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삐닥하게 본 것이다. 시리즈가 전개된던 시기에는 프로젝트 작업으로 한창 바쁠 때여서 못 보다가, 아내의 시청 평이 워낙 좋아 나중에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봤다. 이런 드라마를 지금에서야 보다니 내가 나쁜 아저씨다. 

좋은 이야기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드라마의 박동훈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고, 나는 박동훈과 박상훈(맏이)과 박기훈(막내)의 어디쯤에 있는 아무개라고 생각할만큼 인물들에 공감했다. 때로는 박상훈처럼 지질하고 눈물 많고 겁도 많은 데다 개저씨 같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개폼 잡으며 큰소리치고 싶은 박기훈 같은 면도 있다. 나름 회사 중간 간부라는 직책에 회사-집-회사 외에는 별 볼 일 없이 사는 박동훈 같은 면도 있다. 

하지만 박상훈의 인간성에는 부족하고, 박기훈의 용기에는 못미치고, 박동훈의 실력과도 거리가 멀다. 드라마는 판타지라지만 열패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럼에도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에 정신줄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 세 형제보다 못하다는 열패감은 깊어졌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것을 상쇄할 만큼 거대해졌다. 희망이 보이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른이 되면 홀로서야 한다. 행동에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처음 책임질 일을 맡아서 진행할 때의 그 두려움을 기억해 보자.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 두려움에 떨었던 일들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큰 프로젝트일들을 여러 사람을 지휘하며 해내고 있다. 그렇지만 두려움은 항상 등 뒤에 따라온다. 

게다가 비슷한 또래의 주위 사람이 실패를 맛보고 떨어져 나가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작은 실수들에 조금씩 내상을 입게 되면서 그런 두려움은 커져간다. 아무도 나에게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해 줄 사람이 없어진다. 홀로 섰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기댈 곳을 찾는 게 사람이다.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달리고 있지만 여전히 삶은 간당간당 외줄타기 같다. 마음도 지치고 몸도 지치는 나이가 되었지만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계속 달린다.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겁먹는다. 지쳐 쓰러지거나 실패해 쓰러지거나···· 

 

"너···· 나 왜 좋아하는 줄 알아? 내가 불쌍해서 그래. 네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나, 끌어안고 우는 거야."
"아저씬 나한테 왜 잘해줬는데요?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린 둘다 자기가 불쌍해요."

 

20대와 40대의 화해는 이렇게 서로의 슬픔과 고충을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로맨스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끌어안고 가야 할 슬픔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 주려는 작은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좀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 드라마에 감사를 전한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이보다 멋진 엔딩이 어디 있을까?

 


🏁 아침 자전거 출근 9.9km
🎉 2020년 누적 자전거 주행거리 814.5km



1.
넷플릭스에 tvN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올라왔습니다. 이 드라마할 때가 한창 바쁜 아니였고, 초반부터 <도깨비>처럼 중년의 아저씨와 소녀의 사랑 얘기냐는 비판도 드셌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가 보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드라마였네요.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드라마.

2.
현실은 크게 달라질 일이 없지만 한번쯤 내 삶을 돌아보고 어디쯤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내 주위에 누가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얼마나 귀하게 두고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이런게 희망이겠죠. 다시 삶을 추스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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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干證)  1.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 
               2. 예전에, 남의 범죄에 관련된 증인

 

타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타라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를 간증하러 다녔다. 타라의 가족에게 일어났던 사건은 아버지에게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사건은 책임져야 할 누군가의 무지에서 비롯된 비참한 사고였을 뿐이다. 타라는 이 책 <배움의 발견(원제 Educated)>에서 그 무지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아버지는 정부가 강제로 우리를 학교에 가도록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일곱 자녀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에게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료 기록도 전혀 없다.”

 

타라에게 아버지는 곧 하나님이었고, 아버지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학교에 가지 않았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폐철 처리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단 하루 만에 크레인의 조종간을 잡아야 했고 위험한 고철더미에 올라갔다가 큰 부상을 입기도 했음에도 병원 치료 대신 엄마가 만든 오일과 약초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주체적 자아로 성장할 수 없었던 막내딸 타라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모든 결정은 아버지가 내렸고, 그 다음의 권력은 오빠들이었다. 어머니는 순종했다. 나아가 딸들을 지키지 않았고, 아버지의 권력에 동조하였으며 오빠의 폭력을 은폐하면서 타라를 속였다. 아버지의 병력을 물려받은 오빠는 자신의 분노를 극단적인 폭력으로 쏟아냈다. 오빠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렸던 타라는 그 사실을 부모에게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모님은 오빠가 달라졌으며, 하나님에게 회계를 했다며 타라에게 용서를 강요했다. 하지만 오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빠의 폭력은 타라가 떠난 이후 그의 아내에게로 이어졌고 이를 알아챈 타라가 부모에게 다시 재차 경고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히려 타라가 오해한 것이며, 심지어 그것은 거짓된 환각이고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가족들은 타라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녀를 악마의 꾐에 넘어가 정부가 주는 돈을 받고 공교육을 받으며 타락한 여자라며 비난했다. 

 

“이제 ‘창녀’라는 단어는 행동보다 본질에 관한 묘사가 됐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뭔가 불순한 요소가 들어 있었다.”

 

어쩌면 타라는 그냥 순종적인 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오빠의 폭력을 받아내는 건 이제 그의 아내 몫이 되었으니 더이상 폭력에 시달릴 일도 없었을 거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내린다는 ‘축복’을 받았다면, 가족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어머니의 사업이 번창하였기 때문에 보다 풍요로운 삶의 공간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 산파가 되었을 것이고 산약초를 이용한 오일을 만들어 팔면서 살다가 어느 평범한 몰몬교 청년을 만나 결혼해 조용히 삶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라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였다.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OMR카드의 사용법도 모르던 16살 소녀가 혼자 독학을 시작했다. 17살에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통과하고 난생처음으로 학교(브리검 영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간 뒤의 그녀는 너무나도 다른 두 개의 세상에서 혼란을 겪었다. 하나는 몰몬교의 정신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다호의 산골 아이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와 철학을 탐구하며 세상의 지식을 탐하는 대학생의 모습이다. 산골 아이는 단순히 남자아이 앞에서 살짝 웃었다는 이유로 ‘창녀’라는 욕을 들으며 오빠에 의해 머리가 변기 속에 처박혔던 소녀였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아가고, ‘페미니스트’의 뜻을 탐구하면서 홀로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그 과정은 피부를 온통 벗겨내는 것처럼 아픈 과정이었다.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그 아버지의 막내딸로 살아온 자신의 이전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었다. 가족 모두가 그녀를 비난하고 그녀를 집단적으로 따돌려 버렸다. 타라는 자신이 가족을 오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시달리다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타라는 결국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독립적이며 존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이 ‘배움의 발견(원제: Educated)’인 것은 그녀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아이다호의 산골에서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무지와 폭력을 이겨낼 수 있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삶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무척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의 말대로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 실제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먹먹해 온다. 

이 책이 배움에 대해 생각해 보는 모든 이들에게 한줄기 찬란한 빛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배움은 세계와 나를 잇는 과정이며, 세계 속에 묻힌 ‘나’가 아닌 ‘나’ 안에서 세계가 이해되는 과정이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Photo by Adam Glanzman/Northeastern University

배움의 발견 - 10점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열린책들

 

책을 다 읽은 분들은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가 2019년 5월 3일 노스이스턴 대학교에서 한 졸업 축사도 읽어보기 바랍니다. 
링크: https://blog.naver.com/openbooks21/22185168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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