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어제 점심 때의 일이다. 간만에 동료 직원들과 함께 식당에 들렸다.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식당이다. 주로 고기를 파는 집이지만 점심 때는 근처 셀러리맨들을 대상으로 점심 영업도 하는 집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대형 빌딩들이 밀집되어 있고, 사무직원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서 점심 때면 쏟아져나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만큼 식당들도 점심 반짝하는 시간 무척이나 번잡하고 소란스럽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점심 시간이 30분 늦는 터라 식당의 막바지 손님들이긴 하지만 인기있는 식당들은 꼭 줄을 서야 한다.

우리가 간 식당은 워낙에 큰 식당이라 그런지 줄을 설 일은 없다. 게닥 한바탕 손님들이 쓸고 지나가서인지 상당히 어수선하고 먼저 다녀간 손님들의 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 우리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건너편 식탁에서 나즈막하지만 압력이 느껴지는 말이 들렸다.

"일 처음 해봐요?"
"……"
"이런 일 처음해 보냐구요!"

크지는 않았지만 찍어 누르는 듯한 말이다. 손님들을 의식하여 크게 내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식탁에서는 아주 분명하고 또박또박 그 압박이 느껴지는 울림이 있었다. 씹던 밥알들이 고스란히 목구멍을 건드리는 걸 느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5000~60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도 10년째 그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값싼 중국산 식재료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밤늦게까지 식당일을 하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금도 한몫하고 있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나 권한은 법의 한계 바깥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겪는 모욕과 수치심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최저임금은 고작 시급 110원 인상됐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 착취해 그보다 잘 사는 사람들의 안락을 유지하겠다는 몰염치가 내재되어 있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정책은 그 반대로 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은 수치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 세상을 정상으로 봐야 할까.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고 모욕을 견뎌야 하는 노동은 언제까지 용인되어야 하나.

다시는 그 식당에 가고 싶지가 않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플 사절, 악플 환영~  (6) 2009.07.17
공덕시장과 롯데캐슬  (2) 2009.07.10
반가운 소식들  (2) 2009.07.01
트위터?  (0) 2009.06.30
사람이 되기 위하여  (2) 2009.06.30
반응형

1.
매번 광고 메일만 날아오던 네이버 쪽지로 반가운 내용이 도착했다. 20대 학생이 보내온 쪽지인데, 얼마전 TV 인간극장에서 상영한 '그 가을의 뜨락'편을 보고 보내온 쪽지였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홍영녀 할머니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내용을 보고 홍할머니가 쓴 책을 보고 싶던 차에 내 블로그에 올라온 글(홍영녀 할머니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을 보고 쪽지를 보낸 것이다. 나 역시 그 책을 어렵게 구했고, 책을 보면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과 철학에 큰 감동을 받았던 터라 흔쾌히 책을 빌려주기로 했다.

책을 빌려주겠다는 답장을 보내자 얼마후 다시 쪽지가 왔고, 자신이 이 책을 찾는 이유를 정리해 보내주었다.

"어제 새벽에 잠이 안와서 티비를 켜놓고 있었는데, 마침 방송을 하더라구요. 할머님의 일기가 몇편 소개됐는데, 다 헤아릴 순 없어도 23살인 저도 가슴이 찡하면서 할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저에게도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책을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제 한권의 책을 여행 보내야 할 것 같다.


2.
예전에 한국관광공사에서 하는 구석구석 이벤트를 통해 아주 저렴한 가격(1만~2만원)으로 국내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다. 최근에도 계속해서 보내오는 홍보 이메일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건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다가 6월 16일부터 시작된 '구석구석 모니터링 요원 모집' 이벤트가 눈에 띄었다. 월간지 편집 경력이며, 여행사 홍보 경력, 구석구석찾아가기 이벤트 참여 후기 및 사진찍기가 취미라는 말까지 넣어 응모했는데, 오늘 아침에 합격했다는 통보 메일이 도착했다.

2. 모니터링 활동요원 혜택
 ㅇ  모니터링비 : 1회당 8만원
 ㅇ 기본여행경비 : 4만5천원 (공무원 여비규정에 의거)
 ㅇ 교통비 (거주지역에서 관광지 지역간 이동 교통비 : 영수증에 의거 실비 정산
     - 단 시내교통비는 별도 지급하지 않음)
 ㅇ 관광지 입장료 1만원 초과 시 : 영수증에 의거 실비 정산
 
* 지급 기준 : 모니터링 사업 종료 후 최종결과물 확인 후10일 이내 지급

3. 모니터링 요원 미션
 ㅇ 기 간 : 7.5 - 7. 25 (기간 중 2회)
 ㅇ 활동방법 : 여행경로를 따라 지정된 양식에 의거, 관광객 맞이 환경 각 부문을 현장점검하고 여행경험을 평가
 ㅇ 결과물 제출 : 모니터링 점검표 및 여행일지(공사 제공), 현장 사진 15매 이상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 어느정도의 수입도 생긴다. 후기 작성의 부담이 있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모니터링 활동은 2회 정도 하는 것 같은데, 이번주 토요일 모니터링 교육이 있다니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덕시장과 롯데캐슬  (2) 2009.07.10
가난은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0) 2009.07.02
트위터?  (0) 2009.06.30
사람이 되기 위하여  (2) 2009.06.30
자전거의 고난 시대  (0) 2009.06.24
반응형


유행따라 트위터를 개설했다(http://twitter.com/eowls). 만들고 보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친구들끼리 하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이할 친구가 없다면 이거야 말로 군중 속 고독의 하나다.

누구 같이 할 사람???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은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0) 2009.07.02
반가운 소식들  (2) 2009.07.01
사람이 되기 위하여  (2) 2009.06.30
자전거의 고난 시대  (0) 2009.06.24
이메일을 바꾸다  (2) 2009.06.19
반응형



떡볶이
떡볶이 by eunduk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단군신화에 따르면,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참고 인내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신화적 상상력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떡볶이와 오뎅을 먹는 걸로 서민에게 다가선다는 것도 역시 상징일 뿐이겠다.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가진 분이 그런 상징을 하는 데는 그만큼 민심의 이반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떡볶이집 아줌마야 대통령이 왔다가니 좋아하겠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쇼임을 잘 안다. 정책과 내용으로 서민정책을 내놓아야 할 판인데, 용산 참사 가족에게는 구속을 남발하고, 노동자 서민의 지갑을 털어내기 위해 증세하고, 각종 공공요금은 계속 오르며,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올리면서 무슨 서민 대통령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재직기간 동안 내내 떡볶이와 오뎅만 먹는다면 그 정성만으로도 당신 서민인거 인정하겠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가운 소식들  (2) 2009.07.01
트위터?  (0) 2009.06.30
자전거의 고난 시대  (0) 2009.06.24
이메일을 바꾸다  (2) 2009.06.19
분향소 다녀왔습니다  (2) 2009.05.28
반응형


특정한 불운이 겹치는 날이 있다. 어제의 불운은 자전거다. 혹시나 지레 사고를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까 미리 말하지만, 걱정마시라. 아주 사소한 불운들이 찾아왔을 뿐이니 말이다. 예를 들면 그런거다. 평상시에는 전화도 오지 않는 휴대전화가 꼭 필요한 전화를 기다릴 때면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던가, 오랜만의 나들이에 가져간 카메라가 그날따라 말썽을 부린다던가 하는 기계의 고장과 사람의 운이 겹치는 사소하지만 불편한 사건들이다.

사고의 발단은 콤팩트3.0의 펑크에서 비롯됐다. 지난주에 펑크가 났고, 주말 내내 잡일로 정신이 없어 그냥 보냈다. 월요일날은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는데, 복잡한 버스와 전동차가 그날따라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어제는 아버지의 자전거(옛날 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 자전거도 워낙 오랫동안 험하게 타서 그런지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 문제다. 무사히 출근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등포를 지나 막 신도림역 앞에 도달할 즈음 뒷바퀴에서 둔탁한 느낌이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어 돌아 보니 바퀴가 펑크났다.

천상 신도림역앞에서부터 자전거포가 나올 때까지 걸어야 할 상황이었다. 매번 지나던 길이라 평소에 자전거 점포를 눈여겨 봐둔 것이 다행이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집에까지 가는 길에 2곳의 자전거 점포가 기억났다. 하나는 구로역 가기 전에 있고, 또 하나는 동양공전 앞에 있다. 그러나 이내 다가온 기가막힌 불운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했다.

신도림역에서부터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며 구로역 쪽에 있는 자전거 점포에 도착했다. 점포의 문 앞에는 23일부터 25일까지 휴가를 간다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고, 가게 가니 쉬는 날이다. 해는 점점 뉘엇뉘엇 지는 데 갈길은 멀다. 다음 자전거 점포인 동양공전 역 앞으로 향했다.

이놈의 자전거가 심술이 났는지 구로역 횡단보도를 지나자 마자 또 말썽이다. 푹 꺼진 뒷바퀴 휠에 끼우는 고무바킹이 빠져 덜렁거리면서 자전거 바퀴에 감기는 게 아닌가. 또 한참을 자전거와 씨름하다가 결국에는 고무바킹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삐꺽삐꺽,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의 처절한 울음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치 학교가기 싫어 꾀병부리는 아이의 투정같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동양공전 역 앞의 자전거 점포에 도착했다. 다행히 점포 문은 열었고, 주인 아저씨는 어떤 아가씨의 자전거에 예쁜 전조등과 후미등을 달아주고 있었다. 일을 마칠 즈음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어떻게 오셨어요?"
"네, 바퀴가 펑크나서요. 아휴 이걸 신도림에서부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가게 안으로 휙 들어간다. 그리고 점포 구석에서 펑크 떼우는 공구를 주점주섬 챙겨 들고 나타났다. 사실 바퀴에 펑크난 사실만 알면 됐지 그 사정이야 궁금할 리가 없는 거다. 어차피 그건 내 사정이고~~ 아저씨는 바퀴 떼우는 공구를 들고 나와 살폈다.

"아이구 이거 자전거가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네요."

그럴 것 같더라니, 그냥 펑크 떼우는 걸로 안 끝날 줄 예상했다. 이 자전거가 좀 예전거라서 지금 이 자전거에 맞는 부품이 없단다. 그러니 새로운 튜브로 갈아야 한다는 얘기. 거금 12,000원을 주고 튜브를 갈았다.

집에 들어온 시간은 8시 반... 집에까지 2시간 걸린 셈이다.


※ 오늘의 교훈 : 자전거 펑크 정도는 스스로 떼울 수 있어야 한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위터?  (0) 2009.06.30
사람이 되기 위하여  (2) 2009.06.30
이메일을 바꾸다  (2) 2009.06.19
분향소 다녀왔습니다  (2) 2009.05.28
내 기억 속의 노무현  (2) 2009.05.27
반응형



검찰이 7년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그네들은 7개월치만 보았다고 하는데, 7년치를 가져갔으면서 7개월치만 봤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교환하는 걸로 봐서는 이럴만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라고 관심법을 쓰는 검찰이니, 7개월치만 봤다는 말을 믿는다는 게 바보다. 시민의 자유로운 사상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어렵게 하는 것, 그것은 곧 통치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비판에 대한 걱정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곧 사나운 개를 목줄 없이 거리로 데리고 나가는 것과 같다. 시민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제 사람들은 유튜브 망명에 이어 이젠 이메일 망명까지 시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오늘 나도 구글계정과 구글 이메일을 개설했다. 사적인 이메일은 앞으로 구글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참고글 : 이메일, G메일 hot메일로 바꿉시다    <<< 미디어후비기
            검찰, '주경복 이메일' 7년치 통째 뒤져  <<< 4월 24일자 한겨레신문



덧붙여..
연세대 총학생회가 준비한 추모콘서트가 연세대측과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될 것 같다. 일요일 오후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이놈의 정권은 쉬지를 못하게 하는구나.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되기 위하여  (2) 2009.06.30
자전거의 고난 시대  (0) 2009.06.24
분향소 다녀왔습니다  (2) 2009.05.28
내 기억 속의 노무현  (2) 2009.05.27
추모의 시간  (0) 2009.05.25
반응형

어제 저녁 퇴근 후 대한문 앞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줄이 좀 길 거라고 생각되어 경향신문 앞에서 버스를 내렸죠. 잠깐 역사박물관 앞 분향소를 흘낏 쳐다보고 이내 정동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정동길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경향신문사를 끼고 정동길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캐나다 대사관 앞에서 조문행렬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2시간 반을 기다려 조문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짐은 좀처럼 벗어지지 않는군요. 분향소 주변에 완전무장한 경찰들을 배치해 놓고서 입으로는 예우를 한다는 이명박 정부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의 고난 시대  (0) 2009.06.24
이메일을 바꾸다  (2) 2009.06.19
내 기억 속의 노무현  (2) 2009.05.27
추모의 시간  (0) 2009.05.25
노무현의 눈물, 그리고 자살  (0) 2009.05.23
반응형



1.

노무현 후보 역시 사람이라 번번이 여러 유혹 앞에서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그런 유혹에서 건져낸 것도 건강한 상식과 믿음을 가졌던 많은 시민들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대선을 열흘도 남지 않은 2002년 12월 10일, 개혁당 구로지역 게시판과 대학 동문회 카페에 썼던 글 "이번 대선은 축제다"의 일부입니다. 선거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나게 즐겁게 선거를 즐겼던 적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전 1997년 대선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도 되었던 전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노무현 후보와 함께 했던 그 때가 제 생애의 최고 절정이었습니다. 이긴다는 확신도 있었고,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역사의 중심에 내가 서있다는 자랑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노무현은 나에게 위대함 그 자체였던 존재였지요.

그렇게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전 종로 바닥 한가운데서 '수립 민주정부' 노래를 목청껏 외쳤습니다. 누구 하나 손가락질 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시비걸지 않았고, 모두가 함께 노래 불렀지요.


2.

그러나 다음 해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합니다. 당시의 내 심정을 담은 글을 꺼내 보았습니다. 역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대통령이, 엄청난 거짓말을 해대며 전쟁을 벌이는 부시를 쫓아간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넘어 절망적인 심정이다. (중략) 요즘은 그래서 우울하다. 그래서 한껏 기대했던 많은 기대들이 현실이라는 화려한 수식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어쩌랴, 살아가는 일이 조금씩 허물어가는 일일텐데....

이처럼 나는 나의 적극적 선택을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지지세력들의 뜻과는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지요.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간 노무현의 결정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잠시 몸담고 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표명을 했습니다. 아쉽게 직접적으로 파병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국가기관의 하나로 그런 의견표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모험이었고, 그런 의견표명이 나오기까지 내부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넘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전쟁 반대 의견표명만으로도 국가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 뿐만 아니라 여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정부가 이미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에서 이런 의견제시는 부적절하다"고 평하고,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이 사실상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선동행위로 인권위원장은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성명을 발표했죠.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국가인권위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단 한마디로 정리했죠.

"인권위는 원래 그런 말하라고 만들어 놓은 기관이다."

국가인권위의 존재 목적과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인간 노무현의 결정과 대통령 노무현의 결정은 다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한국의 세계사적 위치가 어디쯤이며 약소국의 한계가 대통령의 짐이며, 그것은 곧 국민의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3.

그리고 그 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행사를 국가인권위에서 주관했습니다. 당시 기념식 행사 중에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인권을 위해 일생을 희생해 온 분들이 단상에 올라가 '세계인권선언문'을 차례로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고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단상에 선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분들(선언문 낭독하신 분들) 앞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으면 부끄러울 것 같다"며, 즉석 연설을 시작했지요. 소박하고 담백한 모습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연설이 시작되고 얼마 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묵 피켓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인권위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경호팀과 함께 즉각 제지에 나섰고,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지요. 이때 노무현 대통령은 "몇 분들이 제게 호소하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지 인권의 사각지대를 구경만 하는 것이 인권국가냐,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말보다는 저의 실천이 모자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말고 가자"라고 말하며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고, 피켓 시위는 축사가 끝날 때까지 줄곧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이 저 정도의 인권의식이라도 있었나 싶습니다. 스스로의 실천이 부족함을 성찰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돌아보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물론 그의 실천이 어느정도였는지 역사가 평가하리라고 보며, 지금의 감정적 평가와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그래도 '비판하면서도 믿음은 버리지 말고 가자'라고 하신 그 말씀이 지금에 와서 왜 이리 후회스러운지 모르겠군요. 


4.

노무현 대통령 취임 100일. 군대에서도 100일을 잘 견디면 3년을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100일 휴가도 보내주지요. 저 나름대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100일을 돌아보는 글을 썼었군요.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개혁 세력 전반의 목소리로 나타나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 주요 목표가 노무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무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는 지나친 꿈을 그에게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노무현을 인정한다. 그가 하는 작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시스템을 제대로 바꾸면 50년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시스템은 바로 미군정 5년간 쌓인 것임을 상기해 보자.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한총련 수배자 문제로 수배자의 부모를 만났는데, 경찰들은 보란듯이 그 부모의 자식을 곧바로 잡아들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통상적인 수배자 검거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학생은 평상시처럼 학교 바로 앞 길건너 식당에서 학교로 오다가 잡혔던 것이죠. 경찰이 이미 학생의 행동 습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잡지 않다가 법무부장관과 한총련 수배자 부모가 모임을 잡은 그 다음 날 잡아들인 셈입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그것은 시스템입니다. 노무현은 눈에 보이는 사안이 아닌 시스템과 싸워온 대통령이었습니다. 검사와의 대화 역시 그런 면에서 접근한 문제였다고 봅니다.


5.

그냥 미안타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말은 임시방편이고 어쩌면 우리 정치현실을 더욱 퇴보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중략)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투쟁가로서의 노무현을 보는 듯하다. 이미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순교 아니면 영광만을 향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무척 고심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결정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다시 개인이 아닌 구조를 생각한다.

위 글은 2004년 3월, 총선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그는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한 사건을 보면서 작성한 글의 일부입니다. 이 당시 그를 보면서, 이제 개인 노무현을 보지 않고, 구조 안의 노무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에 대한 생각은 잊어야 하는 시기였죠. 그러면서 탄핵 정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 촛불집회에도 나갔습니다. 노무현을 구하자는 생각보다는 후진적인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로잡자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길 바라지만 그렇게 물러나게 되어도 국민들의 탄핵반대 집회에서 발현된 에너지가 정치 현실을 한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찌 몰랐을까요, 당신의 순교(적절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지만)가 지금은 너무 가슴 아픕니다.


6.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 여당이 된 이후, 아이러니하지만 난 정치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개혁당 시절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며 민노당으로 옮기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보면서 그냥 중립지대로 남고 싶었습니다. 정치개혁을 향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지만 저는 점점 더 차가워졌습니다.

2004년 6월, 김선일 씨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해 8월 늙은 노동자가 고공 크레인에서 쓸쓸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5년에는 시위 농민이 사망했습니다. 2006년에는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졌고, 그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죠. 2003년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 라고 말했던 그가 시장의 폭력에 손을 들고 만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 기간 동안 10여명이 목숨을 끊었고,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으로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라는 말로 저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 세상에서 그 노동자들을 만난다면 적어도 그 말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저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시장은 인권위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7.

노사모가 노무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바람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투사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원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예전에 명계남 씨가 노사모에 대해 쓴 글의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노사모는 아니지만(그런데 왜 꼭 이렇게 밝혀야 하는지 참 답답하지만), 글을 약간 각색해 보면,
"내가 노무현을 통해 내 자신의 정치적인 바람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투사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원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에게 우리 정치를 보는 시각을 교정해 주었습니다. 또 열정과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재임 중 회한과 후회와 실망도 더불어 안겨 주었던 사람입니다. 돌이켜 보니,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시기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구조겠지요. 그런 것을 아시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 2002년 이전의 노무현은 제 기억에 영원히 남겨두겠습니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메일을 바꾸다  (2) 2009.06.19
분향소 다녀왔습니다  (2) 2009.05.28
추모의 시간  (0) 2009.05.25
노무현의 눈물, 그리고 자살  (0) 2009.05.23
결혼 한 달  (0) 2009.05.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