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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사무실 자리 이동과 가구 재배치가 있었고, 남자 5명이서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일을 했다. 녹초가 된 몸을 그냥 집으로 끌고 가기에 어려워 술을 한잔 하자는 제안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오니 9시가 다 되어갔다.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지하철을 이용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11시 반이 되어 도착한 고속버스터미널. 토요일 심야에 광주로 향하는 사람은 많았다. 애초에 새벽 1시 차를 예약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1시 45분 차를 예매했다. 함께 가기로 한 김차장님은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둘이 함께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차를 기다렸다. 모두 피곤했다. 무사히 산을 마칠 수 있을까를 걱정했고, 농담이었지만, 그냥 집에 가자는 말도 나왔다. 의자에 잠시 누웠는데도 금세 잠이 들었다. 시간이 되어 나가보니 새벽에도 버스들이 줄을 서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서려 있었지만, 터미널은 분주하기만 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임시 운행되는 버스도 꽤 있었던 모양이고, 대부분의 버스가 만차로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세상은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나 보다.

새벽 1시 45분 버스를 탔다. 타자마자 창의 커튼을 치고, 모자를 꺼내어 얼굴을 덮고 수면모드로 들어갔다. 버스 안의 선잠, 그것은 달콤하면서도, 만성 신경통 같이 끊임없이 나를 깨운다.

5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광주에 도착했다. 곧바로 영암 가는 시외버스표를 끊고 지체 없이 버스에 올랐다. 내가 서두른 이유는 산행을 빨리 마치고 내려와 4시 반에 있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영암까지 가면서 몇몇 터미널에 서는데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고, 기사님이 직접 "○○이요"라고 알려주는데, 발음 때문인지, 사투리 때문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내가 이방인인 것이다. 기어이 '신북'을 '영암'으로 착각해 내리려 했으니 말이다.

영암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6시가 넘어서다. 벌써 몇 번째 찾아온 것이지만, 여전히 낯설다. 터미널 안의 매점 노인은 그 이른 시간에 이미 가게를 열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예전에 구수한 사투리로 월출산 자랑을 하셨는데, 피곤하신지 조용히 손님을 맞으신다. 매점에서 물과 음료를 비롯해, 산에서 마실 캔 맥주와 육포, 출출할 때 먹을 찹쌀떡을 샀다.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사면 싸겠지만, 지역의 경제를 위해 이 정도의 사려는 필요하다고 본다. 월출산 지도를 찾았으나 없다.

터미널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월출산 천황사 매표소까지는 택시로 5,000원. 택시 기사에게서 농촌의 흙냄새가 났다. 구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좋았다.

아침식사는 월출산 입구 식당에서 해결했다. 백반정식인데 6,000원을 받는다. 아침을 먹고 짐을 다시 재정비하고, 등산화 끈을 다시 묶었다. 출발하는 일만 남은 시간은 오전 7시. 매표소를 지나면 곧 야영장이 나온다. 집에 묵혀두고 있는 텐트가 생각났다. 여기서 야영을 하면 되겠구나 싶으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야영을 하게 될까 싶다.


 







천황사지 갈림길에서 매번 다니던 천황사 방향을 버리고 바람계곡 쪽으로 길을 잡았다. 낯선 길은 또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두려움이 없다면 설렘도 없을 것이다(07:45).


 







바람계곡. 구름다리. 월출산의 이름을 풀면 달이 나오는 산. 월출산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은 인간의 세계를 묘사한 이름이 아니다. 마치 어느 무협지에 나오는 신선계를 대표하는 이름들 같다. 바람계곡은 양옆의 바위산들이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세찬 바람이 오가다 보니 붙여진 이름이겠지. 바람계곡 삼거리에 도착했다.(08:10) 여기서부터 꽤나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철계단 끝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곳에 응급처치를 위한 구급상자도 준비되어 있다. 바람계곡으로 오른 이들은 여기서 한번 다리쉼을 한다. 천황사길은 바람계곡보다 약간 완만하지만 거리가 더 길다.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함께 다리쉼을 하면서 간식을 챙겨먹었다. (08:40)





 

까마득한 다리 밑을 보았다. 지상 120m 정도 높이에서 바라본 계곡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찔함보다는 아득함이 더 어울리겠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월출산 전경도 한폭의 진경산수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보면 왜 월출산을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구름다리를 넘어 다시 천황봉으로 가는 길은 끝도 없는 거친 오르막길이다. 지루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천황봉은 그 얼굴을 드러낸다.







 

영암에도 경포대가 있다. 영암 경포대는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도 멋진 계곡이라고 한다. 경포대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월출산은 오르내림이 심한 산이라 관절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산이다. 다만, 월출산의 절경을 보고자 한다면 구름다리까지만 올라가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는 있다.





경포대 삼거리를 지나면 곧 통천문이 나온다.(10:15) 통천문은 철계단 끝에 바위틈에 나 있는 작은 통로를 말한다. 통천문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천황봉이 있는 게 아니다. 다시 한참을 가서야 천황봉을 만날 수 있다(10:45).




 

월출산 종주코스(천황사-도갑사)에서 천황봉은 불과 1/3정도 왔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 뒤로 저 멀리 우리가 가야할 구정봉이 보인다. 여러 번 월출산에 왔지만 구정봉에 올라보지 못했다. 매번 체력이 부족해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한참을 쉬고 다시 출발했다(10:55)




바람재 삼거리 도착 11:30분. 멀리 큰바위 얼굴이 보인다. 물론 내가 붙인 이름이다. 아마 저 바위도 여기서 부르는 정식이름이 있을 거다.


 

구정봉을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고 위험하기도 하다. 정작 정상에 있는 웅덩이에는 좋지않은 냄새까지 나서 오래 머물기에 마땅치가 않다. 그러나 사람 한명이 통과하기도 힘든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묘미는 독특하다. 힘들더라도 꼭 들려볼 만한 이유다.


 






 

구정봉을 내려와 억새밭에 도착했다.(12:55) 점심도 거른 채 계속되는 강행군에 김차장님은 약간 치진 듯했다. 그래도 산행안내서에 나온 시간을 충실히 지켜낸 것을 보면 아직 팔팔한 것이다. 억새밭은 내가 처음 왔을 때의 그 억새밭이 아니었다. 이제는 관목들도 많이 자랐고, 작은 나무들이 어느새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숲은 자신을 스스로 가꿔간다는 것을 나는 몇 년에 걸쳐 학습하고 있는 셈이다.

억새밭을 내려온 이후 사진이 없다. 내려오는 데 너무 정신이 팔린 게다. 땀을 많이 흘렸는데도 소변이 마려웠다. 뒤쳐진 김차장님과의 간격을 염두해 두기는 어려웠다. 도갑사 경계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고 나와 20분 정도 기다리니 김차장님이 도착했다. 하산 완료 14:20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셈이다. 식사도 걸러서 배가 몹시 고팠음에도 굳이 영암터미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혹여 서울 가는 차편이 매진될까봐 미리 끊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고, 터미널 근처 곱창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김차장님은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지치고 피곤하고 힘드셨을 게다. 토요일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은 한산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넘었다. 무박2일의 월출산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 교통비 : 133,800원
  • 서울→광주(심야우등) : 26,100원×2인=52,200원
  • 광주→영암(시외버스) : 6,000원×2인=12,000원
  • 영암→천황사 매표소(택시) : 5,000원
  • 도갑사 매표소→영암(택시) : 11,000원
  • 영암→서울 고속버스터미널(우등) : 26,800원×2인=53,600원

○ 음식 : 56,200원
  • 초코바 2개 + 영양갱 2개 + 스카치캔디 1봉지 = 3,600원
  • 터미널 라면 2개 : 6,000원
  • 육포, 캔맥주(2), 찹쌀떡(2), 물, 음료 : 14,100원
  • 아침식사(백반) : 12,000원
  • 늦은 점심(영암 국밥)과 소주 : 13,000원
  • 국수와 햄버거(고속도로 휴게소) : 7,500원

※ 월출산 무박2일 여행팁
  - 금요일 밤에 집을 나서 토요일 새벽 차를 타고 광주로 간다. 광주로 가는 심야고속은 새벽 2시까지 있다.
  - 광주터미널에서 영암 가는 버스는 강진이나 해남 마량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고 가격은 6,000원(2009년 6월 기준)이다.
  - 영암가는 첫차는 4시 40분부터 있다.
  - 상경할 때에는 영암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게 좋다. 3시 5분, 4시 30분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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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내가 체험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육체적인 고통도 있었지만, 그 환상적인 체험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매번 고민이다. 제일 앞에 놓을 사진을 생각하다가 법환포구를 지나 서건도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보았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돌을 정리해 가꾸었을 저 길에서는 땀냄새가 났다. 그것은 짭쪼름한 바다냄새와는 달랐다. 그 순간 내 모든 감각기관들이 짜릿하게 정전기를 일으켰다.

등산이든 트래킹이든 첫날 걷는 것이 힘들다. 더군다나 숙소 문제로 꽤나 고생을 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피곤했던 하루였다. 둘쨋날은 새로 숙소를 잡고, 차를 렌트하느라 오전 시간이 바빴다. 4월의 제주는 비수기라서 매우 저렴하게 차를 렌트할 수 있다. 아반테를 30시간 렌트하는데 6~7만원 정도.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는 택시가 3만원 정도하는 걸 생각하면 차를 렌트하여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레이싱걸? 뭐 차 옆에 있으면 레이싱걸이고 운전대 잡고 있으면 카레이서다. 멋대로 생각하고 즐기자. 여행이란 나를 낯선 곳으로 보내 낯선 나와 마주하는 것.





위의 사진은 숲터널로 가기 전 삼나무 숲길 사진이다. 실제 숲터널은 나무들이 도로 위를 덮고 있는 모습이다.(숲터널 사진 보기) 지도를 놓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관통하는 길(5.16도로)에 있다. 차를 렌트한다면 한번쯤 드라이브 코스로 잡아도 좋다. 제주에서 서귀포방향으로 가다보면 사진처럼 삼나무숲길이 먼저 나오고 이후 나무들이 지붕을 만들어 왕복 2차선 도로를 덮고 있는 길이 나온다. 그곳이 숲터널이다. 제주의 해안도로도 좋지만 한라산의 숲터널도 추천할 만한 드라이브 코스다.






오늘 일정은 다시 찻집 솔빛바다에서 시작했다. 마침 제주 올레길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에 설문조사에 잠깐 응하고 기념펜을 선물로 받았다. 출발하며서 만난 숲에 내리는 아리한 아침햇살이 어여쁘다.





7코스는 바다 산책로에서 시작된다. 조금만 가다 보면 외돌개를 만나고 일명 '폭풍의 언덕'에 도착한다. 왼쪽으로는 절벽 아래로 쪽빛바다가 넘실거리고, 오른쪽으로는 숲이 아름답다.








사진에 우뚝 솟은 바위가 외돌개이다. 그리고 외돌개 오른편 툭 튀어나온 곳이 일명 폭풍의 언덕. 이렇게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외돌개 주변은 남주해금강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유명해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다.








외돌개는 화산이 분출할 때 형성된 것으로, 바다에 외로이 서 있는 바위라고 하여 외돌개라고 불린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제주를 강점하고 있던 몽고인 세력 묵호를 평정할 때 이 외돌개를 장군으로 치장해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돔베낭길 가기 전.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자운영?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들판에 꽃들이 가득하다. 그 위로 바람이 지나는 흔적이 사진에도 보일까?  










어제의 사건과 사고, 피곤함도 금세 잊혀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길이 피로회복제다. 다리에서는 다시 힘이 나고, 발바닥은 금방 달아올라 가볍다. 인생의 목표는 길 끝에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지혜는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배움은 내 발자욱 밑에서 자라는 것이며, 많은 길 위에 더 큰 배움이 있다. 
 






 


돔베낭길. 제주 말로 '돔베'는 도마이고, 낭은 '나무'다. 즉, '돔베낭길'은 '도마나무 길'이라는 말이다. '도마'는 입이 도마처럼 넓은 나무를 일컫는 말인데, 이곳에는 그런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외돌개에서 돔베낭길까지 약 2.5km의 길은 올레길 전체를 통틀어서도 멋진 길 중의 하나로 이곳만 걷는 관광객들도 꽤 많을만큼 풍광이 좋기로 소문났다. 구간마다 해안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어 해안의 자연이 빚은 조각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했다.




어제도 보았던 나무들이였는데, 이렇게 지천으로 자라 천지를 피빛으로 붉게 물들여 놓았다.



어제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가는 길도 쪽문을 통하더니 이날도 돌담을 약간 허물어 튼 길을 만났다. 선명하게 나 있는 파란색 화살표가 이곳이 올레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미라 키가 훌쩍 커진 듯^^. 뒤에 주차된 차량만 아니었으면 꽤 좋은 사진인데 하는 아쉬움이...



호근동 위생처리장. 공공기관이지만, 이렇게 항상 문을 열어놓고 올레 여행객들을 반겨 주고 있다.
이런 친절한 배려의 안내판이 참 반갑고 고맙게 여겨진다.



 


속골 휴양지 가는 길에서.



속골휴양지 입구. 열대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 삼나무숲이나 플라타너스 나무 길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묘한 감정을 자극한다.



길이 아닌데 미라는 개만 보면 사진에 담겠다고 다가섰다. 미라가 다가서는 그 길에도 개가 몇마리 묶여 있었다. 미라에게는 예전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결혼하기 전에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지금도 그 강아지(이름은 '동이') 얘기만 하면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올레길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길은 차도 옆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다. 길이 주는 피곤함은 거기서 배가된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니 그런 길은 사진으로도 담지 않았다. 다음으로 돔베낭길처럼 잘 가꾸어진 길도 길 자체로만 보면 위 사진의 길 보다는 하급이다. 그냥 경운기나 달구니들이 다녔을 법한 정다운 길이 좋다. 흙기운 때문인지 발도 덜 피곤하다.



스모루 소공원의 징검다리. 미라 앞에 가는 올레꾼의 모습. 돔베낭길을 벗어나서는 다시 사람이 별로 없다. 이날도 수녀 두분과 홀로 가는 저 앞에 남자 분, 그리고 젊은 여자 두 분 이렇게만 볼 수 있었다.







안내서에는 많은 지명들이 나오지만, 정작 해당 지역에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속골휴양지-스로루소공원-철다리-징검다리 언덕길-바위를 뚫고 지나는 길-수봉로로 가면서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수봉로는 염소가 지나다니던 길을 2007년 김수봉 님이 손수 삽과 곡괭이로 돌을 놓고 길을 다듬어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이의 정성과 배려를 느낄 수 있을 길이지만 정작 정확한 지점에 안내된 표지가 없어서 안타깝다.



공물해안길.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다.



법환 포구 마을 진입 전. 포구마다 있는 마을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바다로 내려와 삶의 터전을 일구어 만든 곳, 포구. 포구들마다 하나둘씩 있을 만한 사연이 궁금하다. 그물을 다듬고 있을 어부나 망태를 들고 마을길을 돌아나오는 할망을 보면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만나는 마을에서 눈이 맑고 미소가 아름다운 그이와 함께 걷다보니 풍경들 하나하나가 가슴을 흔든다.
















 

서건도 바다산책길. 안내서에는 서건도로 나와있다. 시간이 좀 남는다면 서건도에 들어가 볼 수도 있었겠지만, 갈길이 바빴다. 올레길이 그리 만만히 볼 곳이 아님을 실감했다. 돔베낭길에서도 바닷가에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길을 재촉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꾸며놓은 조형물들이 제주의 뛰어난 풍경과 제법 잘 어우러졌다. 실상 제주는 잘 꾸며놓은 관광지보다 이렇게 자연이 빚은 예술품들을 감상하며 자신만의 예술품을 창작해 보는 것도 여행의 큰 기쁨이 아닐까?



차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그 길. 올레길의 매력이다. 걷는 것의 즐거움, 내 어깨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일까? 아니 제 흥에 겨워 꽃들과 함께 어우러지다.







제주 청보리(일 거다). 제주의 밀인가 해서 찾아보니, 제주에서는 밀이 재배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정보가 있다. 아무리 봐도 난 사진발 정말 안 받는단 말이지. 





다시 바닷가 길로 접어든다. 곧 악근천을 만난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걸을 때 쯤 우리들 그림자도 많이 길어졌다. 꽤 시간이 흐른 것. 뒤에서 사진을 찍자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뭘 하려 하나 보니 그림자 사진을 찍자고 한다. 녀석들도 우리 쫓아 오느라 고생이 많다며...


사진에서 멀리 끝 쪽에 악근천이 있다. 악근천을 바로 넘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악근천을 돌아 풍림리조트 후문으로 가는 길의 초입은 비닐하우스촌이다. 마을길을 좀 지나다보면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그리고 얼마 안가 풍림리조트 후문이 나온다.



풍림리조트 안으로 악근천이 흐른다.





풍림리조트 안으로 난 올레길. 예쁘게 꾸며져 있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친절한 안내표지도 잘 되어 있어 반갑다.



주상절리대. 풍림리조트를 나가는 쪽의 우측 절벽 모습이다. 인공적으로 꾸민 것처럼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자연의 손이 빚은 예술이다. 내일 8코스에 주상절리를 가는데 여기서 가까이 보니 좋다.



풍림리조트를 나와 얼마 안가면 화훼단지를 지난다. 옆으로 있는 비닐하우스가 화훼단지. 그리고 강정마을과 강정포구를 지나는데, 이 구간이 한창 공사중이었다. 7코스는 모두 좋았는데, 마지막에 트럭들이 내뿜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주민들의 편의와 삶을 위한 개발이라면 그도 인정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이 아닌 투자라는 명목의 개발이 이 땅에 만연해 있다. 그런 개발들은 꼭 강의 흐름을 막고, 산의 지형을 변화시킨다. 제주에서 오래 살았던 노인분들은 개발되기 전의 제주도가 훨씬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우리가 올레길에서 본 제주의 풍경들 중에서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길들이 더욱 정감이 갔다. 이중섭 화가나 김영갑 사진 작가가 자신의 캔버스와 프레임에 담은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월평포구. 포구라고 부르기에는 웬지 쑥스러울 정도로 작은 포구였다. 저 작은 포구도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 때면 자기 안으로 숨어든 배들을 포옥 안아줄 것이다. 모든 포구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이로써 7코스도 마무리됐다.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할만큼 늦은 시작이라서 서두르다 보니 사진도 많지 않다. 돌아보면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게 많이 아쉽다. 그러나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추억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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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중략)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칼릴 지브란


제주의 4월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월요일 하루 내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후라 그런 것일 게다.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한 기운이 넘친다. 걷기 좋은 날이다. 흙도 부드럽게 발을 감싸준다.

제주올레길을 걷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말렸다. 결혼 준비며 손님 접대며 이래저래 피곤할 터인데, 여행만은 편하게 쉬다 오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그렇고, 직장 다니면서 장기간 여행가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특별한 여행지를 찾아 가는게 좋지 않느냐는 친구들 말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는 마음만 먹으면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니 굳이 고집피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편하게 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가만히 차려놓은 차림표대로 이곳저곳 데려다 주면 의미도 모른 체 구경하고 똑같은 사진 찍는 일은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외 자유여행을 꼼꼼히 계획하고 실행할 시간과 여력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한 제주올레길 여행. 참 잘 다녀왔다. 지금도 제주의 하늘과 바람과 사람들이 우리 사이에서 춤춘다.




6코스는 쇠소깍에서 시작해 제지기오름을 오르고, 칼호텔과 파라다이스 호텔 앞을 지나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고, 다시 천지연폭포 생태공원을 둘러본후 외돌개로 오는 코스다. 아스팔트길이 많아서 첫날코스로 잡는다면 좀 힘들 수도 있다. 또 중간에 식사를 하겠다면, 정확한 장소를 잘 파악하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뽑은 올레코스 지도에 나온 식당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미리 김밥이나 간식거리를 준비한다면 좀더 수월할 것이다.




 
바로 엊그제 결혼을 한 우리는 사실 피곤하기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하자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결혼식이란 게 어디 그리 편하겠는가. 긴장감으로 굳은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으로 하루는 짧은 감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저 호텔방에 죽치고 앉아 멀뚱멀뚱 먼 바다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언제나 창조는 시작에서 비롯되고, 그 시작은 결단에서 나온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면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길을 나서니 봄꽃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쇠소깍은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효돈천 끝에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깊은 소이며, 쇠소깍의 '쇠'는 '효돈'의 옛이름이고, '소'는 연못, '깍'은 제주 방언의 접미사로 '끝'을 의미한다. 이곳은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으로 빼어난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신분의 문제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이곳에 육신을 내던졌다는 쇠소깍 전설은 여느 이름 있고 아름다운 소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물은 생명과 죽음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니,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소에 몸을 던져 죽은 이들이 이승에서 못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구전된 것이리라.





위 사진에서 보면 오른편에 파란 화살표가 보이고 왼편 위쪽 나뭇가지에 걸린 천쪼가리가 보인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표지이다. 궁색하기 그지 없지만,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길을 헤맨다 싶을 때면 나타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제주의 풍경에는 집들도 한몫한다. 평범한 서민의 집들도 그렇지만, 부유한 사람들의 별장이나 여행객을 유혹하는 펜션들은 그림 같다. 옆의 사진의 집 입구는 저렇게 나무를 인위적으로 휘어서 꾸며놓았다. 대문을 대신하는 나무의 그늘이 들어서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겠지만, 웬지 나무들이 서글퍼 보인다.
























 
제주를 삼다도라고 한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한다. 사진 한장에 담아본 돌과 바람과 여자. 돌담길은 정겹다. 거기에 얼키설키 담쟁이 덩쿨들도 반갑다. 바람이 불어 준다. 돌담길을 따라 흐르는 바람을 맞아 활짝 웃었다.




제지기 오름 초입.
옆의 이주일 별장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코메디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주일 씨가 말년 폐암과 싸우던 그 집이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금연 광고에 출연한 이주일 씨의 말은 웃음을 앗아간 무서운 담배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주일 별장을 옆으로 끼고 제지기 오름으로 오르는 길이다.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피곤하던 차에 다시 산길로 들어서니 반갑다. 흙길이 좋다.



제지기 오름.
제지기 오름은 야트막한 오름이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쉬지 않고 간다면 15~20분이면 충분하다. 정상에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있고, 전망이 좋은 곳은 잘 정비되어 있어 다리쉼을 하기도 좋다. 여기서 우리는 가져온 맥주를 하나 나누어 마시고 쉬었다. 바닷가 공기와 숲의 바람이 어우러져 나른한 봄날을 전해주었다.




제지기 오름에서 바라본 보목항구. 오밀조밀한 집들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오름길에서 만난 오름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여력이 된다면 꼭 올라보길 바란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재미다.


보목항구의 집들. 대문 대신에 있는 줄, 돌담 위의 빨랫줄, 햇볕 좋은데서 말리고 있는 해초... 작은 항구 마을에서 목격하는 정다운 풍경들이다. 여행은 평범한 것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은 평범을 향한 다가섬이어야 한다. 일상의 다정함을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보목항구 근처에서.
모든 자연이 하늘과 바람과 물과 대지의 기운에 힘입어 꽃을 피운다. 담장 위에도 아스팔트 사이에도 들판에도 산에도 꽃들이 활짝 피어난다. 누군가가 그랬다. "여행이란 '여기 아닌 어딘가'로 가는 것이며, '어제 같지 않은 내일'을 확실하고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이다"라고. 겨울의 문이 닫히고 봄이 생동하는 지금, 이 길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길은 끝나지 않으리라.





















 


4월의 제주도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북적인다. 웬만한 관광지에는 학생들의 생기발랄한 떠들석함으로 시끄럽다. 지방 여기저기서 모여든 아이들의 귀여운 사투리를 듣는 재미를 안다면 그리 불쾌하진 않으리라.


유채꽃도 다 졌겠지, 싶었는데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여전히 화려하게 잘 피어나고 있더라. 멀리 보이는 외로운 섬과 바닷가에 피어난 유채꽃이 아름답다.































비닐하우스 안을 기웃거리니 어여쁜 꽃들이 또한 지천이다. 아마 난꽃이 아닐까? 잘 아시는 분 있다면 코멘트 부탁드린다. 색깔이 고왔다.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지난해 여름(7월)에 왔을 때는 해안가에서 한라산을 보기 어려웠다. 아마도 너무 습한 기온이 연무현상을 일으켜 한라산을 지운 것 같았는데, 요번에는 어디서나 가리는 것만 없다면 내내 한라산이 우리와 동행했다. 사진처럼 항상 꼭대기 부근은 흰구름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보목항구에서 서귀포칼호텔로 가는 중.
멀리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이중섭 화가도 저 섬을 배경으로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자연이 주는 영감은 옛사람과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게 해 준다. 

보목항구를 나와 보목 배수펌프장과 구두미포구를 지나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간다. 보목항에서 칼호텔까지는 좀 지루한 길이다. 내내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해서 발도 아프다. 이런 길은 자전거로 달리면 제격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가는 입구. 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틈새에 길을 낸다고 했을 때 적합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도 호텔로 들어가는 길이라서 그럴까. 어릴적 골목길에서 놀다가 옆집으로 넘어간 공을 찾으러 몰레 남의 집에 갈 때처럼 설렌다.

























 


서귀포 칼호텔의 호수 풍경. 칼호텔은 제주시에도 있고 서귀포에도 있다. 서귀포 칼호텔은 이처럼 넓은 정원과 멋진 풍경을 가지고 있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반면 제주 칼호텔의 경우 제주시내에 위치해 있어 공항과 가깝게 위치한 편의성으로 업무차 방문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 둘다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다. 여행, 특히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시골을 좋아하며, 자연을 향한 동경도 비슷하다. 이번 여행도 어쩌면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 단 한번의 투덜거림도 없이 항상 씩씩하게 다니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건강함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서귀포 칼호텔 내부의 야자나무길. 중문관광단지 안에는 많은 특급호텔이 있는데, 저마다 아름답고 거닐기 좋은 정원을 잘 꾸며놓았다. 이곳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의 내부가 올레길에 포함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마음껏 날아보는 이유다.
















 







 



 




몇몇 관광지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제외하고 올레길 대부분은 정말 조용히 단 둘이 걸을 수 있었다. 아주 간간히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보기는 하지만 한코스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수에 불과했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제주올레가 널리 알려졌고, 웬만한 택시기사들도 올레길을 다 알고 있을만큼 보편화되었다고 하지만 주중에 올레길을 찾는 여행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즐거운 여행이었을 것이다. 마치 우리 둘만을 위해 온 세상이 꽃길을 가꾸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호텔을 벗어나 소정방폭포로 가기 전. 돌담을 약간 허물어 일부러 길을 낸 것 같았다. 길은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말이다.

6코스에서는 보목항구를 벗어나 칼호텔까지의 길이 좀 지루하다. 그리고 호텔들을 벗어나면 정방폭포로 향하는데 이 길은 지루하지 않지만 관광지라서 소란스러움이나 번잡함은 각오해야 한다. (물론 길에서는 한적하다, 관광지 가서 그렇다는 말이다.)

사진은 파라다이스 호텔의 대지였을 것이다. 제주 특유의 돌로 만든 계단과 옆으로 가늘게 뻗은 대나무들이 자여스럽게 그늘을 드리워주었다. 봄날의 따가운 햇볕을 시원하게 녹여준다.


















 

 


소정방폭포. 올레길에서 정방폭포 전에 있는 소정방폭포. 정방폭포는 입장료를 받지만 이곳은 그냥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한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저 밑에서 폭포수 안마를 받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올레6~7코스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잘 꾸며놓은 길들이 참 많다.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이 보기는 좋지만 자꾸 보니 실증도 나기 마련. 어떤 이는 이런 6코스가 가장 재미없다고도 한다. 인공적인 맛, 마치 미원으로 맛을 낸 것 같은 느낌이라서가 아닐까.



정방폭포. 유명 관광지인만큼 사람들이 많다. 결혼 시즌이라 그런지 커플들도 눈에 많이 띄지만, 그래도 아이들만큼은 아니다. 단체관광을 온 노인분들도 보인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는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모르지만, 장관이었다.





정방폭포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해산물들. 이게 만원어치이다. 한소쿠리에 2만원씩 하는 거 우리는 사정해서 만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소주도 팔고 있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정방폭포 옆에 있는 서복전시관. 우리가 갔을 때는 내부 공사중이라서 구경할 수 없었다. 서복전시관은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와 관련된 서귀포 지명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잠깐 시간내서 읽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정방폭포를 나와 소낭머리 전망대를 지나 서귀포 초등학교로 갔다. 관광지에서 내내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과 비명 소리를 들었음에도 여기 초등학교에서 듣는 아이들의 소음은 정겹기만 하다. 피시방 등에서 보면 아이들이 쏟아내는 욕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데 어른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경쟁의 세계로 내몰고 있다. 국제중학교에 일제고사에,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못난 어른들이다. 

서귀포초등학교를 지나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다. 여기는 시내길이라서 자칫하면 화살표를 잃을 수 있다. 안내표지를 잘 찾아서 이동하고, 가급적이면 시내 지도를 이용해 이중섭 미술관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이 좋다.

이중섭 미술관 일대는 이중섭 공원으로 만들어 이중섭 화가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섭 미술관 내 포토존. 강한 붓터치에 붉은색 톤의 소 그림이 방금 막 그려낸 듯 생생하다.

이중섭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서귀포. 멀리 보이는 게 아마 섶섬이 것이다.(틀리면 지적해 주세요^^) 즐비하게 서 있는 관광버스들. 서귀포의 풍경이다.




























 




이중섭 공원을 나와 천지연생태공원. 보이는 붉은 잎들은 처음부터 붉게 나지는 않은 듯하다. 녹색이었던 잎들이 마치 단풍이 들듯이 불게 물들었다. 봄날의 단풍구경하는 듯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꽃은 이미 져서 저렇게 골목길 담장 아래에서 마지막 붉은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봄은 매우 짧다.


6코스의 막바지에 있는 어려운 코스 삼매봉이다. 물론 여길 오르지 않아도 되지만, 산사람 미라와 나는 이 길 또한 놓치지 않는다. 기어이 또 오르기 시작했다. 한때 제철을 만나 흐드러지게 피었을 꽃잎들이 길 위에 뿌려져 있다.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피곤할만도 한데, 어디서 그런 체력이 샘솟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짧은 언덕길에 불과하지만 등줄기를 흐르는 땀은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 멀리 한라산을 바라본다. 이번 여행에는 한라산을 넣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꼭 저 산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삼매봉 언덕에 있는 체육공원.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잘 된 편이다. 설치 뿐만 아니라 보존 및 관리도 중요하다. 부디 흉물로 방치되지 않기를...




사실 이 날 10시 30분에 시작한 올레길 여행은 삼매봉을 올랐을 때는 4시를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이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점심식사도 하지 못했다. 기껏 준비해 간 육포와 맥주, 과자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제주올레 웹사이트에서 추천한 식당은 여간 꼼꼼하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당초 계획했던 식당을 놓치니 그대로 끼니를 거르고 만 것이다. 게짬뽕을 간절히 부르짖어 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왔다. 지금 이 시간도 제주의 게짬뽕은 어떤 맛일까 무척 궁금하다.




삼매봉을 내려오면 외돌개로 길은 곧장 이어진다. 잘 가꾸어진 길이라 반갑긴 하지만 차라리 저 나무판 길이 없었다면 어떨까 싶다. 그냥 풀과 흙과 돌들이 어지러운 길을 따라 간다고 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만든 작은 오솔길도 걸을 만하다. 굳이 이렇게 아까운 나무들을 또 베어냈을 것을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외돌개 가는 길. 바다 빛깔이 참 좋다.




외돌개 초입의 해안가. 당일날에는 여기가 외돌개인 줄 알았다. 다음날 외돌개라는 명칭의 뜻을 알고, 진짜 외돌개를 보았지만, 이곳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다. 바람과 파도가 빚은 온갖 형상들이 청록색 바다빛깔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전부터 짐작은 했지만, 미라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개구장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을 것이다. 왼쪽 사진의 경우 나도 오르기 힘든 바위 위를 어떻게 올라갔는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웃고 있다.



























6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솔빛바다 찻집. 많은 올레꾼들이 여기에 모인다. 주인장이 추천한 여러가지 차로 여행의 피로를 달래고 여행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즐거운 추억을 나누는 재미도 좋다. 시내로 나가는 택시를 불러달라면 주인장이 친절히 직접 전화해서 불러 주니 도움을 요청하자. 



 


 


이로써 제주 올레 6코스 여행을 마쳤다. 안내서에 따르면 15km로 나와 있지만 관광지에 들어가고 삼매봉에 오르고 한 것을 생각하면 족히 16km 이상은 걸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침 한끼 먹고 10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 30분에 끝났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여행 내내 함께한 동행이 있어서 가능했다. 길은 우리 뒤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길을 만들고 언제나 나아갈 힘만 있다면 길은 우리 앞에서 계속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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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관계의 추를 가지고 있지요. 그것이 흔들리는 것은 어찌보면 불안해 보이지만, 일정한 간격과 시간을 두고 있다면 평형 상태의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일정하게 움직이는 시계추처럼 말이죠.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라는 아주 희귀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일 수도 있지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임에는 분명하지만, 희귀하다고 해서 오직 한번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장소가 어디이든, 그리고 언제가 되든 다시 그 희귀한 시간을 불러 올 것입니다. 그 열쇠는 삶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겠지요.


















어른이 되면서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누구나 나이듦의 두려움이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젊을 때가 아니면 못한다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하기 어렵다는 그 많은 것들(사랑, 공부, 노동, 오락, 운동 등등)에 대한 욕구들 말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나이듦은 따지고 보면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사랑도 공부도 노동도 낡아 퇴색되어 갈 때,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시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이와 함께 나이듦이 무섭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아니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대로 상처는 상처대로 기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다가도 깔깔대며 즐거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 세상 떠날 때에면 염치없을지 모르겠지만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만큼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그래서 매일매일 그대와 만납니다. 일상을 일상으로 만드는 것은 평범한 시선에 있으며, 일상을 일상 그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조그마한 관심과 배려에서 시작됨을 알기 때문에, 매일매일 보지만 언제나 새롭게 그대를 만납니다.

언제나 우리 사이에는 넓은 들판이 있고, 거기서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작은 들꽃과 나무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대지의 모든 것들이 우리를 자극하며 마음을 설레게 하는군요.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게 설레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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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김유정 문학관에 다녀왔다.
안타깝게 일찍 요절한 김유정을 그리워했다.

국어시간에 한참 졸았어도 김유정의 <봄봄>이란 작품은 웬만하면 안다. 김유정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봄봄>은 이야기 자체가 워낙 재미있고, 해학적인 면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봄봄>은  점순과 혼인하고 싶어 머슴살이를 하는 주인공 '나'와 혼인을 핑계로 '나'를 이용해 먹는 교활한 장인어른이 나온다. 혼인 문제로 티격태격하며 반발해 보지만 끝끝내 이용만 당하고 끝내 이용만 하는 교활한 장인 어른이 나온다. 혼인을 핑계로 주구장창 4년을 밤낮으로 일을 했지만, 장인은 성례시킬 생각을 안한다. 맨날 졸라보지만 키가 더 자라야 한다며 고개를 젓기 일쑤다. 그러다가 마침내 장인과 대판 싸움이 났고, 자기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했던 점순이마저 아버지 편을 들면서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게다.
길게 길러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장인 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 놓고 장인 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
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그는 젊은 날에 요절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농촌 소설들이 가진 묘사와 해학 풍자는 당대를 넘어섰다.
농촌의 꾸밈없는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사랑과 미움에 담긴 자잘한 감정들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세세하게 전개된 농촌의 삶을 묘사하는 곳에는 은근히 당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재치도 숨어 있다.
이 작품에서도 많지 않은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딸을 이용해 노동을 착취하고
작인들에게 부당하게 압력을 넣거나 행세를 하는 장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김유정이 젊은 날에 요절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 김유정 탄생 100년이었던 해란다.
그래서 이곳 실레마을(김유정 문학관이 있는 곳)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었나 보다.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김유정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김유정 탄생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에서 만든 사이트
<봄봄스토리페스티벌>에 가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봄봄> 외에 <동백꽃> <만무방> <안해> <금따는 콩밭> 등등의
원본과 개정본 모두를 볼 수 있다.





문학관을 나와 김유정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빈논에 눈사람이 덩그러니 있다.
지금의 쓸쓸한 겨울농촌의 모습을 보면서 김유정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저런 눈사람을 만들며 헛헛한 웃음을 짓고 있진 않았을까?





김유정역이다. 원래는 '신남역'이었는데,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을 복원하고 가꾸면서
2004년 12월1일부터 역이름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플랫폼에도 나가 구경해 보고 싶었지만 평상시에
문은 잠궈놓고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간이역 풍경을 즐기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김유정역
주소 강원 춘천시 신동면 증리 859
설명 당역의 소재지가 춘성군 신남면이었기에 지명을 따라서 신남역으로 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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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장에서 산타기






























스키장에서 산을 탄다면 우습게 들리려나? 어떤 이는 스키 때문에 겨울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스키를 못타는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사부작사부작 걸어다니면서 천천히 유람이나 하는 등산이 최고다. 폭폭 썩어가는 낙엽 냄새도 좋고, 등줄기로 또르르 굴러가는 땀방울의 느낌도 좋다면 비발디파크에 가서도 등산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원래는 팔봉산 등산을 하려 했는데, 입산 금지라 할 수 없이 비발디 파크의 오크동 뒷편으로 해서 두능산 산책길을 걷기로 했다. 그야말로 산책길 정도로 제일 킨 코스가 고작 3.5km에 불과해 천천히 걸어도 2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작은 산인데도 리조트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다양한 산책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거창하게 자연 휴양림을 붙였지만, 휴양림이라고 하기에는 숲이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앞에서 말한 3.5km의 A코스는 두능산 정상을 오르는 길이다. A코스는 두능산 정상을 오르는 만큼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이 좋다. 구름이라도 낮게 깔리는 날이면 그 풍경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날이 아주 맑았기에 그 풍경을 만날 수는 없었다. A코스와 달리 B와 C코스는 2.5km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고 하며, D와 E코스는 각각 1.5km와 1km의 짧은 코스로 아침 산책이나 식사 후 산책 코스로 즐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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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유격장은 이제 그만


역시 맨 뒤에서 쫓아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번에 함께 두능산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 대부분을 잘 모르는 사람었지만, 등산은 그런 어색함을 덜어주는 데는 그만이다. 초입에서는 마치 유격장 같은 시설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회사나 단체 단위의 단합대회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일일 군입소 체험이니, 해병대 체험이니 하며, 여러 형식의 군사훈련을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 함께 하는 모험과 도전에서 서로간의 우정과 사랑이 더 돈독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모험과 도전이 아니라면 그것은 의미없는 노동에 불과하다.

우리 중 아무도 그 구조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저 나만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스키장이라서 그런지 두능산 정상까지 오르려는 사람들은 우리 외에는 볼 수 없었고, 푹신한 낙엽들이 고스란히 발끝에서 차이고 있었다. 


 



두어번 쉬면서 올라왔는데도 금새 두능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조망은 좋았다. 퇴색되어 가는 붉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겨울이지만, 마치 가을의 끝자락을 보는 느낌이다. 멀리 홍천강 굽이길도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의 산세는 역시 꽤 거칠다.






정상에 다다를 즈음 길은 약간 질퍽거렸다. 날씨는 그정도로 따뜻했던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끼가 다복하게 자랐다. 옹기종기 모여 작은 이파리들을 부대끼며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끼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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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가 없는 산


하산길에는 잘 만들어진 숲속 카페도 만날 수 있었다. 겨울이라 열지 않았다. 여름이였다면 여기저기 사람들이 시원한 얼음을 띄운 차 한잔을 마시면서 산등성이를 넘어온 바람을 만나고 있었으리라. 여름에는 햇볕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지만 겨울철에는 햇볕을 쫓아 야외로 나오고, 등산을 하는 것이다. 우리 신체는 겨울철 등산을 하면서 방에 웅크려 있으면서 쌓였던 노폐물을 땀으로 배출하고 햇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타민 D를 얻는다. 즉 겨울 등산을 하면서 몸을 청결히 할 수 있고, 뼈와 근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들도 집을 비웠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사람들이 만들어 준 집에서 살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조트가 들어서고 여기저기 스키장과 골프장이 만들어지면서 새들은 이곳이 지겨워졌는지도 모른다. 새들이 찾지 않는 산, 새들이 떠난 산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걸음 소리도 죽이면서 내려왔다. 새들이 떠난 이유는 멀리서 들려오는 스키장의 요란한 음악 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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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

 

으슬으슬한
저녁답, 가랑잎 부서지는 소리가
자꾸 발밑에서 들렸네

가을의 초입이라 하늘이 아슬아슬하다. 야근은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 살떨리는 주말 근무는 힘겹기만 하다. 휘어져 가는 볼펜꼭지가 불안하게 종이 위에 멈추어 서면 난 옥상에 나간다. 거기서 낮이든 밤이든 가을 하늘은 보면 좋다. 그곳에는 피곤을 달래주는 청명함이 있다. 이 가을의 서늘한 바람소리도 사무실 문앞에서 머뭇거린다.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병 때문일까. 사람들은 후끈 달아올라있다. 여기에 가을은 없다. 그래서 자연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흔적들을 지우는 곳이다. 인간의 몸이 자연과 동화하여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곳. 기계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는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시간이 우선인 곳. 배고픔처럼 강렬한 욕구가 나를 자극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강물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아까보다는 훨씬 더 깊어져
불빛도 안 켜진 사람의 마을 쪽으로
그렁그렁 흘러갔네

함허동천 야영장에도 밤이 찾아온다. 가을은 더 깊숙이 옷깃을 파고든다. 오래만의 한기다. 겨울이 되면 시인의 말처럼 바람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차갑지만 반갑다. 야영장 곳곳에 세워진 텐트에서도 밤의 적막이 찾아온다. 우리 옆에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아직은 이야기꽃을 끌 때가 아니다.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때로는 한밤의 정적을 가르기도 하고, 때로는 별들처럼 소곤대며 끝이 없이 이어진다. 불빛도 시나브로 졸고 있는 이 텐트의 마을에서 밤은 점점 깊어졌다.

- 내 눈에는 왜 모래알이
서걱이는지 몰라, 눈을 뜰 때마다
눈 못 뜨게 매운 연기가
어디서 차오르는지 몰라,

1397년 세종대왕으로부터 촉망받던 성균관생이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최고의 학부에서 연구를 하던 이가 모든 걸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유수이, 휘는 기화(己和)이며 어릴 적부터 지혜가 남달라 일찌감치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고, 그곳에서도 두각을 보여 세종의 눈에 자주 띄었다. 그런 그에게 둘도 없는 지음이 있었다. 그렇게 함께 학문을 닦고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젊은 날에 갑자기 생을 놓고 말았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던 유수이는 성균관을 떠난다. 매일 같이 친구를 위해 연서를 쓰고, 그리워하지만 끊임없이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치 눈에 모래알이 들어온 것처럼, 아니면 눈을 뜰때마다 연기가 찌르는 것처럼 눈이 아팠다. 아니 마음이 아팠다. 자꾸자꾸 눈에 차오르는 눈물의 이유를 물어서 어디에 쓸까.

잘못 살아왔다고, 너무
아프게 자책하지 말라고
갈 곳 없는 새들은
물에 잠긴 옛집 나무 그림자를 흔들며
석유곤로에 냄비밥을 안치는
독거獨居의 마음속으로 떼지어 날아들고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를 알아주고 내가 알아준 그 이가 세상에 없는 슬픔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할까. 유수이는 그 길로 속세를 떠난다. 다시는 그런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시는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러나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옛우정의 흔적 앞에서 흔들렸다. 정처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 마침내 닿은 곳은 마니산의 한 계곡. 신라 선덕왕 때 지어진 정수사를 끼고 있는 곳으로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으면서도, 태고의 질서에 순응하듯 물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나 보다. 그는 곧바로 좌선에 들어갔다. 너무나 아픈 자책도, 갈 곳 없는 외로움도, 물에 잠긴 쓸쓸함도 모두모두 저 황해바다에 풀어버리리라.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녁답, 나는
집에 안 가려 떼를 쓰는
새끼염소나 달래면서

마침내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없다. 무녀무상. 곧바로 일어나 바위에 네 글자를 새긴다. ‘함허동천’ -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 친구여 이제 잘 가라. 내 마음 속에서도 너는 편안히 잠들라. 한 점의 번뇌도 없이 맑은 마음으로 내 이곳에서 머물겠노라.

늦은밤에 도착한 함허동천. 모두가 고요히 잠든 숲길에서 고즈넉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 친구를 잃은 슬픔을 승화시킨 한 스님의 일갈이 들리는 듯하다. 슬픔이 슬픔을 키운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기른다. 쓸쓸함이 쓸쓸함을 돌본다. 다시 좋은 삶이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 제목과 시는 전동균 시인의 시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이며, 안의 험허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인 사실을 나름대로 상상해 엮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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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우도. 처음 제주도를 가는 이에게 이구동성으로 “우도를 가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우도는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제주도 셋째 날에는 이 우도를 들어가보기로 했다. 1997년 대학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방문했을 때 우도를 한번 들어가 봤으니 11년만에 들어가보는 셈이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참 좋았다’는 인상을 주었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아침 9시에 숙소를 나왔다. 전날 저녁에 제주 흑돼지로 늦게까지 거나하게 술을 걸쳤더니 아침이 버겁다. 그래도 우도의 해변가에서는 본격적으로 해수욕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숙취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아, 해수욕이라니, 난생 처음이다. 바닷가를 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발목이나 종아리 정도 적시는게 전부였던 내가 이제 해수욕을 하겠다고 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수영복도 챙겼다.











우도로 들어가는 차량이 꽤 많았다. 저 조그마한 섬에 이렇게 많은 차량들이 오전부터 들어간다면 길이 남아나겠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제주도는 7월1일부터 차량총량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섬으로 들어가는 차량의 최대한도를 605대로 제한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11시 30분. 어수선한 성산항을 출발해 우도로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배타고 다니는 일이 참 많다. 배 꽁무니에서 일어나는 하얀 포말은 떠남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갈매기들이 포말 위에서 날아다니며 우리 뒤를 쫓아왔다. 잠시 여행의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배는 우도항에 들어가고 있었다.

차를 몰고 나와보니 우도항에는 스쿠터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한여름이라면 차라리 스쿠터로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수진선배가 운전대를 잡았다. 우도에서는 자기가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우도 모두 드라이브를 하기가 참 좋다. 막상 운전대를 잡고서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다가 결국 해안선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첫 번째 찾은 곳이 검멀레였다.


▲ 검멀레




▲ 멀리 보이는 짧은 해변이 검멀레 해수욕장. 실상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 바람이 무지 거셌다.


 

검멀레는 우도의 유일한 봉우리 우도봉 아래의 기암절벽이다. 이곳에는 해수욕장도 있다. 독특한 이 해수욕장은 폭이 불과 100m에 불과하지만, 검은 모레 때문에 유명하다. 해변끝에는 고래콧구멍동굴 동굴이 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바다로 향한 바위에 앉아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의 포말을 구경했다. 수만년동안 이렇게 바다는 육지를 사모했고, 파도는 바위를 향해 구애를 펼쳤다. 바위 뒤편에서 수진 선배는 바닷속 바위에 붙어있는 소라새끼들을 구경했다. 소라껍질 속에 들어간 게도 잡아 보여주었다. 자연은 이렇게 신기하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검멀레를 나와 다시 시작된 드라이브, 구불구불 해안가라 속도를 내는 것도 어렵지만 궂이 속도를 낼 이유도 없다. 덥지만 창문도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람을 차안에 가득 싣고 다녔다.



▲ 비양동 등대. 환국은 여기서 춤을 추더라.





▲ 바람이 보이나? 사람과 바람이 담긴 풍경.



▲ 현상이와 파란 셔츠와 바다가 잘 어울렸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우도 안의 비양동 등대. 섬 아닌 섬이다. 시멘트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물이 찰랑찰랑 파도가 넘실거린다. 바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한번 건너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역시 어제 하루 쉰 수진선배의 기분이 최고다 서슴지 않고 발을 적셨다. 환국도 여전히 제일 신났다. 사진 찍고 작은 언덕에 올라서니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에 앉아 쉬었는데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하지만 그늘 아래라 그런지 시원하기만 하다. 제주도에서는 바람도 즐겁다.

비양동을 나오니 한시가 넘었다. 배가 한참 고플 때다. 하지만 바나나로 해결했다. 왜 그렇게 가난하게 다녔는지, 아마도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나절만 있다가 가려니 시간이 아깝다. 다시 차를 몰아 찾아간 곳은 우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서빈백사에 들렸다. 여기서 본격적인 해수욕을 했다. 처음에는 옷을 벗는 것도 주저했는데, 물에 들어가니 아주 신났다. 해수욕을 해 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매번 바닷가를 가도 발이나 잠깐 적셨을 뿐 물에 들어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반드시 해수욕을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던 터였다.



▲ 서빈백사 해수욕장. 가운데 모래찜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와 환국이.
옆에 아가씨는 굉장히 불만있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럴만하다. 해수욕장 물 우리가 다 흐려놨다.




▲ 그래도 좋단다. 박현상 촬영.


▲ 서영선배는 물에 빠지고 나서는 아주 바위에 눌러 앉았다.



▲ 평영으로 수영 중. 입만 벌리면 짠 바닷물이... 생각만해도 짜다 으으~



▲ 물에 빠진 서영 선배.


서빈백사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산호초 해변이다.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동남아의 어느 바닷가가 연상된다. 해변가는 자잘한 산호초들이 은빛색깔로 반짝였고, 바닷물은 그 투명한 색깔을 맑게 드러내고 있었다. 서빈백사는 그 아름다움으로 우도 8경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나와 환국이는 수영복을 준비해 왔기에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배운 수영을 열심히 해 보았는데, 역시 잔잔한 파도 속에서는 쉽지 않다. 게다가 입안으로 들어온 짜디짠 바닷물 때문에 도저히 제대로 된 수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바닷물을 아랑곳 하지 않고 현해탄을 수영으로 건넜다는 조오련 씨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즐거움을 나와 환국이만 즐긴다는 게 참 미안한 일이다. 수진선배는 몸이 안좋아 안된다고 하지만 현상이는 발만 적시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다. 전생이 고양이었을까. 하지만 서영선배는 그래도 바닷가라고 모래사장에서 파도와 장난치고 있었다. 이런 즐거움은 나눠야 하는 법, 환국이와 함께 서영선배를 물에 빠뜨렸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는 한시간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래찜질을 하면서 산호해변의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물속에서 오랫동안 잠수를 하면서 바다속 풍경도 감상했다. 그 한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낌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즐거움을 서빈백사에 묻어두고 나오려니 아쉬웠다.

우도봉을 들려보지 못한 점이 좀 아쉬웠다. 해보진 못했지만 우도봉 등대박물관 구경을 하면서 우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한 지역을 알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한달이 될 수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불과 한나절의 시간으로는 우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도를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오후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오쯤에 나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번 우도 여행은 나에게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해수욕장에서 시원하게 수영을 해 본 경험은 그 어떤 일보다 재미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횟집에 들려 횟감을 사들고 들어가 마지막날 만찬을 즐겼다. 제주의 밤에 수진선배와 서영선배는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밤산책을 나선 우리는 롯데호텔 주변 산책길과 중문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마지막날인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내 카메라 배터리도 나갔다. 바다 저 편에 고기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바닷가에서는 밤늦게까지 밀어를 나누는 젊은 청춘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제주의 밤은 깊고 푸르게 익어갔다.


▲ 롯데호텔 뒤편.


▲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 중문해수욕장에서





다시 언제 제주도를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다음 제주 여행은 이번보다 훨씬 재미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제주는 그동안 나에게 별반 매력이 없는 휴양지에 불과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됐기 때문이다. 올 가을에 한번 더 제주도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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