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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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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온 서명숙 씨는 각자의 공간에 ‘카미노’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고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 ‘제주올레’를 만들었다. ‘올레’란 ‘거리길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아무리 길이 흔하다고 하지만 걷고 싶은 길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이 있다고 해서 다 걷기 좋은 길도 아니다. 걷고 싶은 길에는 문화가 담긴 풍경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그 지역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순례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길 위에서 꽃핀다. 또 길을 만들어도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면 그 길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앞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고 뒷사람을 위해 함부로 발 디딜 수 없는 그런 길이 진짜 길이다.

제주도 여행 둘째 날은 바로 그 제주올레 첫 번째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6시간 이상 2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트래킹은 내가 넣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백두대간의 여운이었을까, 걷는 게 좋다. 트래킹이 없었다면 제주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첫번째 길의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는 먼저 성산까지 렌트카로 이동하고 그곳에 차를 주차한 다음 시흥초등학교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렌트카가 없을 경우 제주나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회선 일주도로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흥리에 내리면 된다. 1시간 좀 더 걸리며, 운임은 3000원 정도(변동 가능). 우리가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5분. 중산간 지역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걸까. 작은 규모이지만 깔끔한 잔디운동장이 마음에 쏙 든다.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을 것 같은 깨끗함이 느껴졌다. 시간만 된다면야 폴짝폴짝 뒤어다니면서 다방구 놀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날 가야할 길이 멀다.





▲ 뒤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말미오름(혹은 말오름)이다.
올레 첫길은 초등학교 옆으로 돌아서 그 오름을 오른다.


걷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단 육체적 건강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가. 경보 하듯이 걸어다니거나 심지어는 뛰어 다닌다. 대중교통이 1~2분만 지연되도 분노수치가 올라간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나머지 걷는 것도 잊어버렸다. 걸음을 못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주위 사물과 교감하고 하늘을 보며, 땅을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한번 더 살펴보고 관조할 수 있는 여유와 철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여행객들이나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목적지는 라싸나 산티아고가 아닌 바로 그 자신이다. 신 앞에 겸손해진 자아를 이끌어내며 걷는 것, 그것이 걷기의 철학이고 순례길이 담고 있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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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맞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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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길바닥과 돌담, 전봇대에 진행방향을 가르쳐 주는 안내 표시가 있다. 백두대간처럼 리본으로 길 안내를 하던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페인트로 칠해진 화살표가 낯설고 눈에 거슬린다. 조만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된다면 멋들어진 이정표가 사람들을 맞아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무튼 길 잃어버릴 일은 별로 없다. 단지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시흥초등학교 옆길로 해서 말미오름을 옆으로 돌아가는 돌담길이 나온다. 바닥에 나온 표시에 주의하면 길은 찾기 쉽다. 한적한 돌담길을 걷다보면 슬슬 땡볕이 거슬린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주면 좋겠지만, 산밑이라서 아직은 덜 시원했다. 여름에는 덥더라도 반드시 긴팔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제주도 햇살을 쉽게 봤다가 지금 팔뚝이 허물을 벗고 있다.

그래도 고즈넉한 제주도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밭일 마치셨는지 망태기 들고 점심 드시러 가는 할망(할머니의 제주도 방언)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도 드리자. 반갑게 웃어주는 할망의 주름진 얼굴도 제주가 주는 선물이다. 환국은 배가 고팠는지 돌담 옆에 버려진 감자에 관심을 가졌다. 얼마전까지 밭에는 감자가 심어져 있었나보다.



 

말미오름을 본격적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시흥리 청년들이 내건 현수막도 눈에 띈다. 제주올레를 방문하신 분들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오름에 오르는 길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 있어 편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기도 하겠지만, 제주올레를 만드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관심이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20분 정도 오르니 목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제주올레 팸플릿에는 걸쇠를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걸쇠가 아닌 끈으로 묶여 있었다. 넘어가면서부터는 목장이다. 말이나 소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문을 잠가 놓는데, 이후에 나오는 다른 문들은 걸쇠로 되어 있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오름에서 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연무 때문에 아주 멀리까지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오름 아랫동네와 성산 앞바다까지는 아주 잘 보였다. 예전 한라산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가 보다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선 듯한 느낌이다.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하게 불어주던지, 여기 오면서 흘렸던 땀을 순식간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 제주의 검은 흙이 녹색과 대비되어 두드러지게 보였다. 밭을 갈아 놓은 뒤 아직 작물을 심지 않았다.

▲ 멀리 희미하게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까마득하다.
그러니까 이날 걸어야 하는 거리는 저기를 넘어 그 다음 섭지코지다.




▲ 여행객들을 위해 벤치도 마련해 놓았다. 목책을 따라 가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 가능하면 카메라를 가져가자. 휴대전화 카메라까지 동원됐다. 각자가 담은 풍경들은...


설마 클릭하는 건 아니지?

말똥. 목장은 지뢰밭.

우리가 걸었던 길은 목장길이다. 목장길이니 말이 뛰어다니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는 소보다 말이 많았다. 말들이 뛰어다니고 힝힝거리며 발을 구르는 모습을 텔레비전이 아닌 목장에서 보는 재미도 좋다.

단, 발밑을 조심하자. 말똥이 천지다. 유감스럽게 아무도 똥을 밟지 않았는데, 나만 두 번이나 밟았다. 풀들을 먹고 사는 놈이라 똥이 냄새도 없고 또 오래된 똥은 흙색과 비슷한데다가 풀속에 숨어있어서 잘 보고 다녀야 피할 수 있다. 경치 좋다고 둘레둘레 다니다가 똥을 두 번 밟았지만, 소똥 밟으면 재수가 좋다는 말에 빗대어 히히덕거리며 좋아라했다. 똥 밟는게 좋을리 없지만 경치나 바람, 그리고 걷는다는 것에 취했던 것이다.

천연거름 덕분인지 야생화가 참 많고, 그에 어울리는 갖가지 나비들이 춤을 춘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름모를 야생화들 틈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목가적 풍경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멀리 펼쳐진 제주의 들판과 바다를 보는 재미가 합쳐졌다. 원경과 근경 모두가 즐겁다.

 





▲ 말미오름을 잠깐 내려와서 오름과 밭 사이로 난 오솔길.




▲ 초지에 길표시가 없다고 걱정할 것 없다. 땅에 있는 돌맹이 위에도 표시가 있고, 나무에도 표시가 있다.




▲ 배가 고프다며 쳐지기 시작한 환국.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배고파 산딸기도 따먹었다고 한다.











▲ 말들을 풀어 키우고 있고, 목장 한곳에는 제주도식 무덤도 있다.



▲ 좋댄다.



▲ 내 앞에 간 죄로 뒷모습만 찍혔다. 물론 의도적으로 현상이는 사진찍히는 걸 피했다.



▲ 사람들이 오니 경계를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다.



▲ 이렇게 해서 오름 걷기는 끝났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름에서 준비한 간식을 먹었다. 미리 감자와 샌드위치를 좀 만들어 왔는데, 아주 요긴하게 먹었다. 간식거리는 시흥리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많이 걸을 때는 수시로 먹는 일이 중요하다. 모두가 배가 고파 혼났고, 무엇보다 환국이는 지쳐버렸다. 그래도 감자 하나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오름 여행을 끝낸 시간은 12시 반 정도. 약 1시간 반의 여행이었다. 짧지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장을 나와 다시 시작되는 길은 시멘트 길과 중산간도로인 아스팔트길이다. 뜨거운 지면을 따라 걷는 일이 목장길을 걸었을 때보다 좀 힘들다. 시멘트길에서는 간간히 빗물이 고인 곳이 많아서 까다로웠고, 아스팔트 국도길은 가끔씩 지나다니는 차량에 신경을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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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에서 성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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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감동과 재미 때문인지, 종달리 마을까지 가는 길은 좀 지루했다. 다들 점점 더 뜨거워지는 태양에 조금씩 지쳐갔다. 마침내 종달리 마을 앞 표지석에 도착했고, 더위도 식힐 겸, 입구의 매점에 잠시 들렸다.

처음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보았던 밝은 미소는 발갛게 달구어진 뺨 때문에 지워졌다. 서영 선배는 다시 선크림을 발랐고, 나는 매점 앞 수도꼭지를 틀어 등목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밖에서 등목을 해본 게 까마득하다.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들어가서 옛소금밭을 지나서 종다리 해안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시흥해녀의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것이다.

 

▶ 종달리 폭낭.
종달리 마을길에서 만나는 나무.
우리가 지날 때도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표지석에는
종달리 소금밭의 유래가 적혀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 종달리 소금밭 사잇길. 물론 지금은 소금밭의 흔적만 남았다.


▲ 지금 소금밭은 이처럼 무성한 잡풀들이 점령했다.



종달리 마을을 지나면 곧 해안도로가 나온다. 2006년 나는 이 도로를 달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갔다. 그때는 엄청난 바람 때문에 힘겹게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날만큼 바람이 제일 고맙다. 걷는 걸 방해할 만큼의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시원하게 쌩쌩 불어주어 땡볕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전거조차 가기 어려운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길도 나있지 않은 오름은 물론 해안가 바위들 사이나 모래사장은 자전거라도 가기 어려운 길이다. 이런 길을 걷는 재미는 자전거와 다른 맛이 있다.
제주도 여행하는 내내 자전거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젊은이들이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겹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 예전 내 생각이 나 코끝이 찡해진다. 자전거 여행도 좋지만, 제주올레도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는 크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누는데, 종달리와 시흥리는 바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다. 종달리와 시흥리는 인접해 있지만 전자는 제주시에 속해있고, 후자는 서귀포시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해녀들이 많고, 일제시대에는 이 지역 일대 해녀들이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정책에 거세게 저항했던 역사가 서려있다고 한다.



▲ 종달리와 시흥리의 경계지역.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이다. 이때가 막 2시를 넘어 갈 때였다.



▲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에서는 직접 오징어를 파는데, 맛이 괜찮다.



▲ 완전히 마른 오징어가 아니라 반건조 오징어를 살짝 구워주는데, 짜지 않고 쫄깃쫄깃해서 먹을 만하다.
한마리에 1000원~1500원 한다.


▲ 종달리 해안도로에서 찍은 바다사진. 맑고 투명했으며 해초가 많았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나도록 먹은 게 없으니 다들 힘들었다. 2시가 넘어서야 시흥리로 들어섰는데, 시흥 해녀의집이 눈앞에 보이자 그제서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계획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흥 외에도 오조리나 섭지에도 해녀의집이 있다. 모두 그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지역 해녀분들이 따온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내놓고 있어 맛있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싸고 질좋다고 한다면 여기 음식은 그야말로 천상의 음식이라고 할만하다. 시흥 해녀의집은 제주올레에서 추천한 맛집으로 조개죽이 일품이다. 우리 일행들도 이곳에서 조개죽과 전복죽을 시켜서 먹었다. 죽이라고 해서 얕보면 큰코 다친다. 커다란 사기 사발에 하나 가득 나오고 반찬거리로 나오는 지짐도 부족하면 더 가져다 주어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나는 반찬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것도 지역의 맛과 멋을 알아가는 재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개죽에 조개가 참 많았다. 물큰 씹히는 조개와 살살 녹는 쌀알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입안에 맴돈다. 전복죽도 하나 시켰는데, 그렇게 덩어리째 들어간 전복죽 구경은 처음이다. 보통 서울시내에서 전복죽을 먹으면 전복이 그 실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썰어져 있는데, 이곳 해녀의집 전복은 모양 그대로 살려 듬벙듬벙 죽속에 빠져있다. 전복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전복죽도 추천할 만하다. 맥주 한 병을 시켜 똑같이 나누어서 마셨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벽에 달린 선풍기를 무색하게 했다. 조개죽은 6,000원, 전복죽은 9,000원이다.


▲ 이런 전이 나오는 식당이 나는 정말 좋다. 우리가 너무 잘 먹자 아주머니가 하나 더 갖다 주셨다.

▲ 겡이 튀김이라고 부른다. 해안가 바위틈에 돌아다니는 게를 잡아서 튀긴 것으로 바싹하니 맛이 좋다.


▲ 조개죽. 먹다 보니 사진찍은 걸 잊었더랬다. 조개의 시원한 해물맛이 일품이다. 입에 착착 붙는다.


시흥해녀의집 맞은편에는 조가비박물관도 있다. 조가비박물관을 보고 갈까 했으나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지났다. 천천히 쉬엄쉬엄 구경하자는 취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시흥리해녀의집을 나온 시간은 3시 반경이었다.

식사가 달콤했던 탓일까. 다시 힘차게 길을 나섰다. 성산이 이제 뚜렷하게 보였다. 바다 저 멀리 우도도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를 걷다가 물이 빠진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걸으면서 조개도 줍고 소라도 주웠다. 제주에서 주워온 조개와 소라는 지금 우리집 어항에 들어가 있다. 어항이 한결 더 예뻐졌다.






▲ 해안가를 거닐었다. 썰물 때라서 걷기가 좋았다. 바닷물이 빠지자 해안가는 여기저기 해초들이 어지럽다.








▲ 성산항에 정박해 있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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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에 올라 꽃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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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를 주차해 놓았던 성산봉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 경, 여기까지 5시간 반정도 걸린 셈이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좀 길었고, 매점에서 쉬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면 늦지 않게 온 것이지만, 성산봉을 올랐다가 다시 섭지코지까지 걷는다면 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성산봉 오르는 길도 쉽지 않으니 아마도 몇몇은 여기서 여정을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제주올레도 여기서 성산봉을 오르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만큼 힘든 이들은 그 길을 선택해도 되겠다.

생각해 보니 성산봉 꼭대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성산봉에 입장료 내고 들어와 본 게 대학 수학여행 때로 기억되는데, 그때도 꼭대기는 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술먹고 힘들어서 포기했을 거다. 술이 웬수다. 하지만 오늘은 멀쩡한 정신과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 해주고 있다. 좀 지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백두대간 여행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다.

물론 성산봉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성산봉으로 오르는 길 좌우측으로 난 산책길을 걷는 것도 성산봉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성산봉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아마도 2~3시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입장권(2,000원)을 끊으면서 물어보니 왕복 40분 소요된다고 한다. 쉬엄쉬엄 1시간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성산봉 곳곳을 모두 둘러본다면 2~3시간 정도는 잡는 게 맞다.


▲ 완만한 비탈길이 끝나고 성산봉에 가까워 오면 줄기찬 계단길이 이어진다.







▲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졌다는 제주도와 성산봉의 증거.

▲ 성산봉 분화구.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다.









▲ 서영선배는 줄곧 머리에 꽂아 두었던 꽃을 여기 분화구로 던졌다.













▲ 성산봉 한켠에 마련된 매점 겸 식당. 밑에서는 해녀들이 갓잡은 회와 조개류, 해삼 멍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내려가서 소주 한잔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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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은 줄곧 계단길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분화구가 훤히 보인다. 성산봉은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생긴 화산섬이다. 오랜 세월 제주도와 성산봉 사이의 바다가 모래로 메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렵게 올라가자 아담한 분화구 너머 넓게 펼쳐진 바다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봉우리에 가려져 오지 않던 바람도 여기에서는 시원하게 이마를 쓸어주었다. 치마를 입고 온 젊은 처자도 있고, 샌달을 신고 올라온 총각도 보인다. 아이들은 더더욱 신났다. 힘든 것도 모를 때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온 아저씨 아주머니도 꼭대기에 올라서서 길게 한번 숨을 쉬어 본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살갗에 닿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다.

성산봉 꼭대기에는 토끼가 한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환국이가 신났다. 거북이가 토끼를 만났으니 아니반가울까.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토끼는 사람들이 익숙한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니 손길이 닿으면 토라진 여인처럼 돌아서서 멀리 뛰어갔다.

서영 선배는 길가에서 꺾어 온 꽃 한송이를 이곳 분화구를 향해 던졌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힘겨운 여정을 마무리하는 통과제의였을까. 꽃을 던지는 손이 곱다. 하긴 이렇게 오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다. 결국 서영선배와 현상이는 이곳에서 차를 타고 섭지코지로 가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멀리 섭지코지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까마득하다. 아마도 1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어림잡아 보았다(결국 2시간 정도 걸렸다).

이제 나와 환국이만 남은 길을 걷기로 했다.



▲ 수마포 해안. 잘 보면 동굴이 보인다.


섭지에서 지는 해를 보다

 

이렇게 되니 나와 환국이가 2004년 함께 지리산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4명이 같이 갔었는데, 서영선배만 다르고 3명이 이번 제주여행에 같이 온 셈이다. 비슷한 점은 당시에도 2명이 마지막 천왕봉을 오르지 못해 환국과 나만 올랐는데, 이번에도 2명이 빠지고 나와 환국이가 마무리 화룡정점을 찍으러 가는 것이었다. 묘한 우연이다.

위의 사진은 수마포라고 한다. 성산의 옆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로 대공포 기지가 있었다. 4.3 당시에는 이곳에서 토벌대에 의해 양민 학살이 자행된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뼈저린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나와 환국은 여기서 과감하게 바닷가로 내려섰다. 썰물 때라 바닷물이 꽤 많이 빠졌다. 샌들을 챙기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 순비기. 나무의 줄기가 모래땅 속으로 숨어서 뻗어나가므로 해녀들이 '물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제주어 '숨비기'라는 명칭이 붙었다.



▲ 모래사구.  간조 때 모래가 쓸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이용해 방책을 세웠다.



▲ 어느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나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외국인이 글을 쓰고 있었다.



수마포 해안을 지나면 광치기 해변으로 접어든다. 기나긴 해변이 멀리 섭지까지 펼쳐졌다. 종달리 해안가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거닐었는데, 성산봉을 나와서는 줄곧 바닷가로만 걸었다. 2시간 가까이 걷는 길이 지루하다고 보면 오산이다. 갖가지 바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해변가는 모래사장도 있고, 너럭바위 지대도 있다. 모래사구 언덕길에는 순비기 군락도 볼 수 있다. 바위지대에는 자잘한 이끼들의 색깔이 탐스럽다. 잘 짜여진 융단처럼 넓은 바위에 깔려 있는 이끼들이 좋다고 함부로 발걸음을 떼어서는 위험하다. 꽤 미끄럽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비기는 30~60cm정도 자라는 키작은 나무인데 바닷가에 이렇게 어여쁜 꽃나무가 자란다는 게 놀라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연두색 잎사귀는 작고 탐스러운데다가 연보랏빛의 맑고 투명한 꽃잎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지로 피어난 꽃들과 잎들을 만져보다 보면 길에서 만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라고 모든 곳이 해수욕장일 수는 없지만, 해수욕장이 아니라고 해서 해수욕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다. 이 길을 가다 보면 해수욕장이 아닌데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글을 쓰던 외국 노인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노년의 휴가로 제주를 찾은 듯하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상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영어로 '헬로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먼바다를 보며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은 내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환국은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틀림없이 지금 쓰는 글에 우리의 모습이 담겼을 거라며 의기양양이다.

모래사구 근처에서는 버려져 돌아다니는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기도 주웠다. 너럭바위 지대는 미끄러울 수도 있고, 모래사장은 푹푹 빠지니 지팡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잘 꽂혀 있는 모래사구 방책용 나무를 뽑지는 말자. 걷다 보면 버려진 대나무들이 천지다.

길을 걷다 보니 꽤 긴 거리다. 1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천천히 길을 가다보니 2시간이 다 되어갔다. 7시 반을 넘어가니 서녘 하늘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쯤 왔냐는 일행의 전화도 계속 왔다. 섭지에서도 계속 바닷가 길로 가라고 제주올레 팜플릿은 적혀 있는데, 우리는 그냥 시멘트 포장길로 해서 섭지코지로 올랐다.



▲ 해가 지고 있다. 섭지에서.



▲ 섭지코지 등대

▲ 저 봐라. 대나무 작대기에 모자는 삐뚤하고 바지는 둘둘말아 걷어 올리고, 얼굴은 맛이 갔네.
 물고기 잡으러 가나????(섭지코지 드라마 셋트장)


 

이로서 제주에서의 둘째 날, 제주올레 첫 번째 길 걷기가 끝났다. 생각 같아서는 두 번째 길도 걷고 세 번째 길도 걷고 싶다. 하지만 내일 들어가는 우도도 기대된다. 이날 내가 걸었던 길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주에 한걸음 더 다가선 듯하다. 제주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제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11시에 시작한 여행이 8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9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햇볕을 우습게 본 덕분에 숙소에 들어와 화끈거리는 팔뚝에 화상치료제를 발라야 했다. 지금 어깨의 살갗은 허물을 벗고 있지만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그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즐겁기만 하다. 다음에 제주를 갈때는 첫 번째 길을 다시 걷고, 두 번째 길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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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은 네 번째다. 방문의 횟수만큼 제주도의 즐거움도 배가 되고 있다.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은 대학 3학년 때의 수학여행이다. 일종의 패키지 관광이였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두 번째 여행은 금성출판사 차원에서 직원 모두와 함께 떠난 여행인데, 한라산 방문이 유일하게 남는 기억이다. 세 번째 여행은 2006년 자전거 전국일주였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서 제주도 일주도로를 달렸다. 날씨가 정말 훌륭했던 것, 그리고 바람이 징하게 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이번에 다녀온 제주도 여행은 잘 짜인 자유여행이었다. 트래킹과 우도 일주가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 완도여객터미널. 색다른 여행을 생각한다면, 완도로 가서 제주로 가는 배를 타자.


게다가 참 저렴하게 다녀온 여행이다. 한사람당 26만원이 채 안 되는 비용으로 3박5일의 제주도와 우도를 돌아다녔으니 나름 성공한 여행이다. 여행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교통과 숙박을 아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포-제주 간 왕복항공권의 가격이 유류할증료 포함 20만원에 육박하는 성수기, 4명이니까 약 80만원이다. 우리는 항공편 대신 완도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완도에서 제주까지 배편을 이용했다. 4명이서 차량과 배편으로 제주도를 찾아갈 경우(차량은 가스 차량이었다), 비용은 대략 350,000원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비행기 값의 절반으로 제주도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김포에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30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차량과 배편을 이동할 경우 최대 11시간(서울-완도 6시간, 완도-제주 5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밤 11시에 안국역 근처에서 만났다. 서울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보니 그나마 모이기 쉬운 장소로 택했던 것이다. 차량은 내가 준비했다. 가스차량으로 좀 오래된 SM520이다(아직 10만km도 뛰지 않았다). 면허증이 있는 세 명이서 번갈아 운전하기로 했다. 먼저 목포까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2번국도를 이용해 완도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첫배는 7시30분에 있다. 이 배를 놓친다면 오후 3시 이후에 배가 뜨므로 반드시 이 배를 잡아야 한다.

번갈아 운전한 끝에 우리는 6시를 조금 넘겨 완도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 도로가에 차를 주차하고 터미널에 들어갔다. 완도에서 제주도를 가는 배는 하루 세편있으며 각각 오전 7:30분(한일카훼리 3호, 3등실 요금 23,350원) / 오전 10시 40분(한알카훼리2호, 2등객실 23,350원) / 오후 3시 30분(한일카훼리 1호, 2등객실 23,350원), 이렇게 마련되어 있다. 시간은 한일카훼리 3호가 5시간 정도 걸리고 나머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한일카훼리 3호에 탑승했다. 위 정보는 성수기 기준이며 2008년 7월 말 요금이므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꼭 전화로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다.




▲ 승선개찰권.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편의 3등식 객실 요금은 23,350원. 성수기라 할증이 붙었다.



▲ 해상의 짙은 안개 때문에 배는 30분 이상 늦게 출발했다. 배편으로 제주를 찾는다면 날씨에 주의하자.

 

▲ 제주-완도를 오가는 한일카훼리 3호선의 2등객실과 휴게실 모습.
휴게실에서는 맥주와 음료, 컵라면과 스낵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 3등객실에서 피곤하고 지루한 일행들. 대부분 잠을 청해보지만 깊은 잠을 자기는 어려웠다.


▲ 3등실 풍경. 잠이 장땡이다. 악조건에서 잠을 청하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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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항에 도착할 즈음. 그래도 한컷 찍어야... ^^

한일카훼리 3호는 추자도를 경유해 제주도를 간다. 시간 역시 5시간 정도로 많이 소요되는 편이다. 내부 시설 역시 1호에 비하면 꽤 열악하다. 게다가 3등객실 다운 소란함도 여행의 피곤을 부채질해 준다. 배가 작은 편이라 요동도 심하며 엔진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꽤 심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해상에 낀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시간도 늦어졌다. 이 짙은 안개를 뚫고 무사히 제주도를 갈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일찍 배에 탄 덕분에 구석자리를 잡아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했지만 추자도에서 다시 많은 손님들이 배에 올라타 객실은 만원이 됐다. 대부분은 잠을 청하지만, 한쪽에서는 화투판도 벌어지는가 하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는데, 워낙에 엔진 소리가 커서 제각각 고함을 지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지나자 안개는 옅어졌다. 제주항에 도착해 렌트카를 섭외하기 위해 미리 알아본 렌트카 회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계획은 3일 중 하루는 트래킹을 하는 만큼 48시간만 이용, 15만 원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참석하겠다는 수진선배의 일정이 바뀌어서 렌트카를 72시간 동안 대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참고로 완도에서 제주로 들어올 때 중형차를 배에 싣는다면 왕복 22만 원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렌트카를 72시간 대여할 경우 중형차의 경우 약 25만원이 넘을 테니, 이런 경우에는 배편에 차를 싣고 오는 게 좋았다.

좌충우돌 끝에 차를 렌트했다. 미리 렌트 예약을 하지 않아서 좋은 차를 빌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내려올 때 몰고 왔던 차량과 똑같은 SM520을 렌트해 몰고 다녀야 했다. 차를 렌트 한 다음에 찾아간 곳은 제주에 있는 대형마트, 장보기다. 서영선배가 잘 준비해서 메모한 대로 장을 보았다. 장도 간소하게 보았다. 술과 김치, 생수와 국거리와 카레 등등 돌아보니 장도 참 소박하게 보았다.

장보기까지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하니 2시가 넘었다. 서귀포에 있는 한국콘도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해수욕장 한군데 정도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먼저 들린 곳은 협재 해수욕장.

▲ 자, 나도 한컷 찍어보자. 표정 좋고~




▲ 나름대로 하이-로우 컷.


▲ 이번에는 반대로 로우-하이 컷.




▲ 작품 제목은 하늘을 나는 거북이. 우리의 제주도 바닷가 의식 중 하나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 현상이는 당최 바닷가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산속에 사는 놈이라 그런지 바다와는 친하지 않나 보다.




▲ 협재 해수욕장의 모래가 좋아서인지 여기저기 아이들의 모래성 놀이가 자주 눈에 띄었다.

 


협재 해수욕장은 모레가 가늘고 은빛이 난다. 게다가 수심이 낮고 완만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다. 제주도의 해안에 첫발을 담근다는 의식을 치렀다. 의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저 우리끼리 정말 제주도에 왔다는 기쁨을 누렸다. 한쪽 넓은 바위 여기저기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줍고 있다. 아마도 조개를 줍고 있을까. 꼬맹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모래놀이를 한다. 집 근처였다면 한소리 들었겠지만 여기는 제주도의 바닷가다. 아이들은 신났다.

아이들만 신이 났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바닷물을 밟으며 한참을 들어가도 어른 허리까지 들어가려면 한참이다. 물이 빠지면 저 멀리 비양도까지 헤엄쳐 가는 담대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좀 과장된 말이다.

날이 흐리고 안개가 끼어서 비양도의 모습도 흐릿하다. 해가 서녘하늘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게 보일 때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발가락 틈에 끼인 모래가 서먹서먹하지만, 제주데 있는 동안은 익숙해져야 할 것들이겠지.

▲ 제주의 어느 항구였다. 환국이의 꿈이 무산됐던 곳이다.

 

▲ 문제의 지저분한 말.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정말 말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만지지 말자. 손이 더러워지는 것이 상관없다면 괜찮지만...

 



▲ 차를 타고 가면서 서쪽 바다로 일몰의 기운이 퍼질 즈음, 현무암 해안가 바위틈에서 일몰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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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환국이가 말한 곳을 찾아 헤매는데 결국 못 찾았다. 밀물 때 물이 들어차게 해놓고 썰물 때 물을 가두었다가 조금씩 빼서 갇힌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곳이라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 얘기로는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환국이의 인터넷 정보가 어긋나고 말았다. 다시 콘도로 가는 길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들이 보이고 경치가 수려한 곳이 나와서 차를 세웠다. 말의 고삐에는 줄이 메어져 있었는데, 묶여 있지 않아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꽤 목가적이다. 서영선배가 조심스럽게 말에 다가서는데, 오히려 말이 먼저 사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기겁을 한 서영선배가 도망가는데, 성큼성큼 쫓아오는 말이 신기하다. 내가 앞에 서서 말쪽으로 손을 뻗으니 이 녀석이 이제 나에게 다가온다. 아주 천천히 말의 콧잔등을 쓸어주니 가만히 서 있다. 조금씩 옆으로 다가서 말의 볼도 쓰다듬어 보고 말머리와 갈기도 만져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손이 무척이나 지저분해졌다는 것, 바닷바람과 먼지를 옴팡 뒤집어 쓴 채 목욕도 시키지 않아서인지 말을 좀 쓰다듬었다고 손에 시꺼먼 먼지가 묻었다.

콘도에 들어오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밤새 운전해서 오고 배를 다섯 시간이나 타서 그랬는지, 다들 피곤해 보였다. 항공편으로 제주에 온 수진선배를 맞이하러 현상이가 차를 가지고 나간 사이에, 서영선배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준비했고, 나는 환국이를 도와 카레를 마련했다. 첫날 상차림은 간소하게 준비했다. 나와 서영, 수진 선배, 환국이와 현상이 이렇게 다섯 명이 제주의 밤하늘 아래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하다지만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술상은 이어졌다. 설레는 제주의 첫날밤은 그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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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17일)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을 다녀왔다.
창덕궁은 목요일만 자유관람이 가능하며 다른 날은 제한관람이다.
창덕궁의 진정한 멋을 느끼면서 천천히 즐기고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목요일 자유관람을 추천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대인 15000원) 4시간 동안
즐거운 고궁산책에 상응하는 행복을 줄 것이다.



낙선재. 평일에는 특별관람 시간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는 곳.
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가 이곳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어야 생기가 있는 것이라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다른 궁과 달리 낙선재가 가지는 멋은 그런 사람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낙선재에 오면 항상 마루에 한참동안 앉아서
나무의 결도 만져보고 한지문을 통해 전해져 오는 바람도 느껴본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처마밑에 있다보면 느껴지는 여름 향기가
이곳에 잔향처럼 퍼져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인접해 있다. 저 문은 창경궁과 연결되어 있는 문으로 보인다.




원추리. 어디가나 이꽃이 한창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본 야생의 원추리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참 어여쁜 꽃이다.
우리 동네 공원(고척근린공원)에도 이 원추리가 기다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더랬다.  


창덕궁의 아름다운 연못, 부용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연못에 구현하고 있다.
부용정 맞은 편 언덕에 자리잡은 주합루는 정조 즉위년에 지어졌으며 1층은 규장각이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
어수문이라고 하는 데 물과 물고기는 곧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허리마저 휘어진 채 문을 지키고 있다.




한여름이다 보니 여기저기 풀이 무성하다.


아래 사진은 연경당에서 있었던 공연 사진이다.
연경당은 원래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 집 역시 궁궐 안에 있지만 낙선재처럼 단청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공연이 열린다.
유감스럽지만 이날이 목요일 정기공연으로는 마지막 날이었다.
더위가 가시면 새로 한다고 하니 가을에나 다시 열릴까.



궁중음악을 연주했다.



박적무(?)라고 했던가. 역시 궁중무용이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금산조. 좀처럼 듣기 어려운 대금 산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옥류천. 물이 많이 흘렀으면 했는데, 물이 적어서 아쉬웠다.
옥류천 역시 특별관람 지역이라서 평일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 중의 하나다.
옥류천을 나와 나가는 길 역시 울창한 창덕궁의 숲을 지나는 길이라 좋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고즈넉한 숲이 있고 그곳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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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을 찾았다. 자동차로 찾아갔더니 대략 50여km가 넘는다. 숲을 사랑한다면서 나홀로 자동차족이 되어 적지 않은 양의 오염물질을 길에 쏟아낸 것이다. 숲을 가면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숲에 가서 깨닫는다.






 

광릉숲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숲이다. 그래서 서울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울창한 산림이 뿜어내는 산소의 양이 엄청나다. 동서로 4km 남북으로 8km에 이르며, 경기 남양주, 포천, 의저부시 등 3개 시에 걸쳐 있다. 1468년 세종 때 '능림'으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비가 한참 왔다. 비가 왔는데도 가게 된 것은 이곳이 인터넷 예약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취소할 수도 있고 토요일까지 개방하니 남는 시간에 갈 수도 있었다. 굳이 취소하지 않은 이유는 비오는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오는 수요일의 수목원이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나? 혼자 개폼 잡기 좋은 날이다.






 

개폼은 개폼이다. 한손에 우산 들고, 한손에 카메라 들고, 카메라 가방은 엇메고 다녔다. 비가 세차게 칠 때는 카메라에 물들어갈까봐 잠바떼기로 가려줘야 했다. 내가 비 맞는건 상관없지만 카메라가 비를 맞아서는 안된다. 그러니 그 개폼이 얼마나 우습겠나. 그것도 나이도 어리지 않은 아저씨가 혼자 그러고 있으니...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장마를 맞이한 광릉숲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도 애초부터 계획했던 거니 몰골이야 어떻든, 남의 시선이야 어떻든 그저 내 길 열심히 가면 그뿐이다. 다행히 비가 오고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도 매우 적다.


광릉수목원, 정확히 얘기하면 국립수목원은 예약을 해야 방문할 수 있다. 보통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고 있는데, 하루 5천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5천명 이하면 당일 전화예약도 가능하다고 한다. 입장료는 1000원(성인), 주차료는 3000(승용차, 경차 할인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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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분노하는 부분이지만, 몇년전부터 식목일은 이제 공휴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제 나무를 심는 일보다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물론 이제 '산에 사는 메아리' 아저씨는 돌아왔다. '벌거벗은 붉은산'은 없다. 하지만 도심의 숲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특별/광역시민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평균  6㎡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당신에게  6㎡의 숲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 다른 나라 도시들의 녹지수준은 어떨까. 런전 27㎡, 뉴욕 23㎡ 파리 13㎡다.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이 9㎡이니 우리는 거기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도심 숲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산림과학원은 우리나라 산림 1ha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6.82t에 이른다고 한다. 일반가구 4가구가 연간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 또 승용차 1년간 몰았을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기도 하다. 숲이 부족한 도시에 숲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환경친화적 실천인 것이다. 그러자면 아파트를 짓는 것만큼의 숲을 조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비는 징하게 왔다. 기어이 렌즈에도 물이 묻었다. 내 카메라(Canon 400D)는 주인 잘못 만나서 개고생한다. 재작년 지리산에서도 그렇고, 얼마전 설악산에서도 그랬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전천후 기후에 적응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여직까지 별 탈 없이 잘 버텨주니 고맙다.







 

사람들은 지금 아프다. 단순히 얘기하면 기침감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몸이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숲을 찾는다. 광릉숲은 일종의 자가치유 병동인 셈이다. 아픈 자들이여 숲으로 가자.






 

이미 숲 선진국에서는 숲을 치유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독일은 의사의 처방에 의해 숲을 의료 목적으로 이용하면 예방의학의 치료행위로 간주해 건강보험에서 보험처리를 해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숲의 건강생리학적 효과를 본격 연구중이며 나가노현과 기후현은 산림건강증진센터를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7년까지 54억5천만원을 들여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은 자연휴양림을 비롯한 여러 숲에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휴양림 통나무 집에서 3박4일을 쉬는데 의료보험을 헤택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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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산림욕의 의학적 효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피톤치드는 한마디로 항생물질이다. 즉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화학물질인 것이다.


피톤치드는 특정한 균을 선택적으로 죽이고 인간의 신체에는 부드럽게 흡수된다.


또 피톤치드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 준다. 실제로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지표호르몬인 혈중 코르티솔 농도를 70%까지 저하시키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장맛비를 맞아 흠뻑 적은 숲에서 피톤치드 향기와 함께 물큰한 비 냄새와 낙엽냄새가 섞여 있었다. 새들도 비를 피해 나무둥지로 들어갔는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하다.


그래도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 밑에 서면 기분이 좋다. 나무그늘이 살가운 보살핌의 손길을 뻗어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듯하다. 그것이 피톤치드이든, 또는 다른 그 무엇이든 나무는 인간을 사랑하고 있으며, 반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광릉수목원은 유감스럽게도 많은 곳이 비개방지역이다. 온실도 오늘만큼은 열지 않아 아쉬웠다. 그나마 비를 피하고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던 터라 그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다행히 수생식물원의 그림 같은 풍경이 관람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게다가 비도 얼추 가늘어져 우산을 들 필요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봉오리를 틔고 있는 연꽃들과 연못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가 비에 흠뻑젖어 한폭의 수채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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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한창 내릴 때 왔는데, 막상 떠나려하니 비가 그쳤다. 그루터기에 앉아서 혼자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지 못한 점,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나무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 한점을 즐겨보지 못한 점, 맑고 청명한 새들의 노래를 듣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온 숲을 두들기며 내리는 빗줄기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바닥까지 훑고 힘차게 흘러가는 숲속 계곡물도 보았다. 여기저기 맺혀 있는 빗방울들의 영롱한 빛들도 아름다웠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숲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한명이 일생동안 쓰는 목재는 55㎥에 이른다. 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나무는 500그루나 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무 한그루도 심어본 일이 없다. 그러면서 내딴에 아이디는 '구상나무'란다.


나무는 환경이다. 나무를 심는 일은 곧 자연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다. 내가 진 500그루의 나무의 빚은 살면서 열심히 갚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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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내려가면 으례 방문해야 하는 곳은 큰집, 작은집, 큰고모집, 외갓집이 있다. 앞에 세 곳은 구례에 모두 있으니 하루만에 다 방문할 수 있지만 외갓집만은 순천시 주암면에 자리잡고 있다. 구례에서 멀다면 멀고, 서울에 비하면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거리다. 6일 큰고모집에서 자고 7일 외갓집을 향해 나섰다. 


사실 아침 일찍 나섰지만, 기왕이면 화엄사와 송광사에 들려 구경이나 가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생신도 끼어 있고 해서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나들이를 제안해 본 것이다. 아버지는 바쁜 시기에 놀러다니는 게 못할 짓이라며 펄쩍 뒤셨다. 하지만 어차피 외갓집에 가도 외숙부나 외숙모 모두 들일 나가셨을 테니 좀 늦게 들어가는 게 좋다고 설득을 했다. 혀를 차시면서도 이내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화엄사는 구례군에 속해 있으며 지리산 중턱에 있다. 지리산에 열번 이상 드나들었으면서도 화엄사에 들린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는 감회가 새로우셨을까, 예전에 보았던 낡은 돌계단에 눈길을 오랫동안 던지셨다.


"나 어렸을 때랑 똑같이 그대로 있네. 참 세월 많이 흘렀는데 말이야."


화엄사는 유난히도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건물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는 사찰보다 더 유서깊고 기품이 넘친다. 게다가 2층식으로 지어진 대웅전 건물의 옆 기둥은 위태롭다 싶을 정도로 휘어져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화엄사 구경을 마치고 송광사로 차를 몰았다. 섬진강 옆 한적한 국도는 드라이브 코스로 이미 많이 알려진 곳이다. 맑고 고요하게 흐르는 섬진강과 오래된 숲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사이로 난 길은 여름에도 짙게 드리워진 그늘로 인해 공기도 상쾌하다.


한시간여를 달려 송광사에 도착했다. 송광사는 일전에 한국관광공사에서 보내주는 여행 이벤트를 통해 한번 다녀온 이후로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이곳은 외갓집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어머니에게 각별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할머니의 생신이었을 때 외갓집 식구와 어머니 아버지 모두 함께 송광사 나들이를 오셨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어머니에게 그 기억은 참으로 소중한 기억이다. 1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외갓집과 연관된 것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쉬시는 어머니에게 그래서 송광사는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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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구례의 화엄사와 순천의 송광사는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있어 오래된 추억의 한편을 가진 곳이다.


돌아보면 이날 참으로 뜻깊은 가족여행이었다. 난 두분의 기억을 되물림 받을 수 있었고, 두분은 새로운 기억의 조각을 만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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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들고,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 가는 것 같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내레이션


누가 영화보자고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도 내돈 내고 소장하고 있는 DVD가 하나 있다. 바로 브래드피트가 나오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포스터가 주는 풍경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플랫풋 강변에서 플라이낚시를 하고 있을 자신을 상상해 보지 않을까.

여행은 참 좋아하면서도 낚시 여행은 단 한번도 없었다. 친구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좀처럼 같이 낚시하러 갈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럴만큼 마음 한편에 여유를 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사실 낚시를 썩 내키지 않은 여가라고 여기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친구 녀석이 평일날 시간이 되어 낚시나 가자고 했다. 이것도 경험이 아닐까. 낚시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볼 수 있듯, 낚시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여가다. 자연 속에 있는 나를 느끼고,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속성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오래전에는 낚시가 먹고 살기위한 행위였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시간일 것이다. 또 세상과는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낚시의 궁극적인 재미는 바로 자연과의 교감이며 나와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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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낚시꾼을 빗대 '강태공'이라고 한다. 무릇 기다림과 인내의 상징으로서 강태공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난했다. 그 가난 때문에 아내가 떠날 정도였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 미끼 없는 낚시대를 강물에 드리우고 세상을 낚았다. 

백수생활 3개월이면 그 생활에 안주하게 된단다. 곧 태만과 게으름이 생활 깊숙이 자리잡는다는 것일게다. 그말은 경험적 사실일 게다. 나이 80에 세상의 중심에 나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강태공의 그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평소에도 물왕리 낚시터를 자주 찾았다던 친구는 내가 쓸 낚시대도 가져왔을 뿐아니라 손수 설치해주기까지했다. 낚시에 대해서는 'ㄴ'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지켜볼 뿐이다. 초심자를 데리고 나서는 낚시일테니 선배로서 이런저런 근심도 있기 마련이라 그런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찌가 살짝 움직이는 걸 '입질'이라고 해. 그건 아직 물지 않은거야. 붕어가 물면 찌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불쑥 올라오거든. 잉어는 반대로 찌를 쑥 물고 들어가. 그럴 때 잡아채야해."

"떡밥은 너무 꽉 뭉처도 안되고 너무 흐물흐물해서도 안돼. 역시 너무 무겁게 해서 찌가 안보일정도가 되서는 안되고, 반대로 너무 가볍게 해서 물고기가 모이지 못하게 해서도 안되겠지."


안되는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낚시 하는 내내 이런저런 신경도 많이 써준다. 직접 준비해온 버너로 물을 데워 컵라면도 내주었다. 가끔 커피를 끓여 내오기도 했다. 이런 대접도 이만하면 상전대접이다.








 

물왕리 저수지는 붕어와 잉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바닷물을 막아서 호조벌 곡창지대에 농수를 대기 위해 1946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전용낚시터이기도 했던 이곳은 지금도 커다란 붕어들이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곳이다.


낚시를 하다보면 물위로 폴짝 뛰어오르는 물고기들과 수면을 스치며 지나가는 새들을 자주 본다. 멀리 숲속에서는 두견새도 울고 있다. 수면에서 부서지는 햇살을 보다보면 그저 정신이 멍해진다. 자연속에 머물 수 있는 즐거움, 이것도 낚시의 하나다. 플라이 낚시를 즐겼던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폴 퀸네트는 그의 책 <인생의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에서 이렇게 밝혔다.



‘맑은 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항구성이 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을 하든 플라이낚시는 항상 거기 있다. 삶의 여정에서 이렇게 한결같은 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이 낚시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위에서 캐스팅하는 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플라이낚시만 그럴까. 모든 낚시가 자연이 만들어 준 고독 안에서 나와 신이 대면하는 자리가 아닐까.





 

물론 이런 낚시 예찬에도 불고하고 낚시터와 낚시꾼은 수질오염의 주범이다. 오죽하면 한강 상류에서는 낚시를 금하고 있을까.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미끼(떡밥)와 납추다. 이날 내가 뿌린 떡밥의 양도 엄청났다. 이 떡밥들을 물고기들이 다 먹는게 아니기 때문에 썩게 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찌 아래에 달게 되어 있는 납추(사진)도 문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민물낚시에 사용된 뒤 버려지는 납추는 연간 1억5910만개로 무게만해도 715.5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양의 납이 우리 강과 저수지에 버려지고 있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이 좋아 등산을 하는 이들로 인해 산이 오염되듯이, 강이 좋아 낚시를 하는 이들로 인해 강이 오염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납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캐나다는 국립공원 등에서 납추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생각해볼만하다.  




이날 결국 나는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내 친구도 허탕을 쳤다. 올때마다 최소한 4~5마리를 잡았는데 오늘따라 물고기들이 도망다녔던 것일까. 옆에서는 팔뚝만한 붕어들이 척척 올라왔으니 우리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친구는 꽤 실망한 듯하다. 일전에 왔을 때도 45cm 짜리 붕어를 낚아올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낚시의 손맛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럼 또 어떤가. 햇볕에 그을린 친구 얼굴의 까만 웃음이 반갑고, 빈어망에는 밝은 달빛이 가득한데 무엇이 부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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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자주 나오는 글귀다. 사실 이 글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먼저 실렸던 글귀다. 이 짤막한 글귀만큼 당시의 초라하고 궁색했던 조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난 그말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저께 ‘나는 남한산성에 있었다.’


우리 삶도 언제든 ‘독안의 든 쥐’처럼,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왕’처럼 초라해질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에게 길은 있을까. 나가서 항복을 하는 길도, 안에서 굶어죽는 길도, 길이 아니면서 길이 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있다. 김훈은 썼다. “그해 여름,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남한산성은 김훈 덕분에 유명세를 탔고, 숭례문의 희생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 유명해지면서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남한산성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과 정비사업에 나서고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를 비롯해 방연방재 장비와 시설이 갖추어질 전망이다. 병자호란 직전에 난리를 예감했던 인조가 성벽을 더 튼튼히 했었다.


'아껴서 빈틈없이 다져놓은 성이었다. 급경사로 치고 올라간 구간에서 성벽의 기초가 뒤틀리지 않았고, 급히 굽이진 구간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 성벽은 산의 높낮이를 따라 출렁거렸고, 성을 쌓은 자의 뜻에 따라 더불어 노는 형국이었다. 기울거나 주저앉거나 돌의 이빨이 빠진 자리가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성벽 여기저기에 잡풀이 자라고 곳곳에 금이 가 있는 모습은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시간이 훑고 간 흔적이고 시간 자체가 유산의 일부다. 치욕의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경계였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성 안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도망가다 죽고,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그들이 맞서 싸웠던 만주족은 지금 역사 속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나갔던 이들의 후손들은 이 땅에 살아남아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 경계는 모호해졌고, 삶은 분명해졌다. 청과 싸울 것을 주장했던 김상헌은 죽어서 사는 길을 모색했다. 전쟁이 끝나고 윤집, 오달재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했다. 그들의 위패는 남한산성 현절사에 모셔져 있다. 청과의 화의를 주장하는 최명길은 살아서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만주족이 사라진 지금,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인가, 아니면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일까. 다시 김상헌과 최명길의 두 길은 결국 포개져 있었다.




김상헌, 윤절,오달재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현절사. 6월의 신록이 우거지고 있다.
그들을 우리는 '순절'했다고 말한다. 죽어서 산 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남는 건 중요한 과제다. 우리 사회도 먹고 사는 일의 중요성을 따져서 지금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 참담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시민들은 ‘먹는 문제’로 거리로 나서서 새벽까지 거리집회를 하고 있다. 경찰들은 불과 20여년전에 있었던 방식으로 배후를 잡겠다고 드잡이를 나섰지만, 애꿎은 시민들만 닭장차에 싣고 있다. 2MB정부에게 분명한 길을 가라고 국민은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길은 2MB가 죽는 길이니 쉽게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알까, 어차피 그가 가야할 길은 미국이 원하는 길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참으로 비루하고 고단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고기 한점 먹느냐 마느냐 가지고 죽자 살자 5월의 뜨거운 거리로 나서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하지만 이북이나 이남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냥 거기 일개의 삶으로 멈춘다면 그것은 그냥 생물학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리로 나오면 달라진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의 이남 정권도 분명히 두려워해야 할 문제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지난달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이제 40일이 지났다. 인조는 47일 동안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 이제 7일 남았다. 과연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2MB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청계천 광장에 나와 국민들 앞에 삼배를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살 길이고 국민이 살 길이다.


대통령은 지금 중국에 있다... 국민은 지금 청계천에 있다.

하도 쇠고기 문제로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글이 이렇게 새나간다. 게다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청계천과 종로 일대에서 싸우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모습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했다. 글로 위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나도 반드시 거리에서 연행될 각오를 할 것이다. 내 성격상 무임승차는 싫다.


아무튼 남한산성은 걷기도 좋고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복잡하고 고단한 인생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다. 남한산성 성벽길은 한바퀴 천천히 돌아도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는 것을 즐기는 이에게 남한산성은 최적의 사색장소가 아닐까.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서 9번 버스를 타고 산성로터리까지 갈 수 있다. 자동차로 온다면 주차료 1000원이다. 남한산성 관리사무소에서 산성지도를 얻을 수 있다. 갑갑한 마음 산성에서 달래 보자.


 



 ^ 현절사로 오르는 길목에서



^ 6월이 내일 모레라 그런지 녹음이 한창이었지만
봄바람이 불어줘서 산성걷기는 참 좋았다.








^ 현절사에서 산성에 오르는 길
























^ 남한산성 군포지의 흔적. 일종의 초소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산성에 남아 있는 군포지는 없고 이렇듯 흔적만 남아 있다.












^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 이날은 준비없이 한 방문이었다.
현절사에서 출발해 여기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려왔다.
한시간여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제대로 한번 돌아보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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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전 다녀온 양수리, 길을 잃은 사람이 찾을 곳인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거짓된 약속에 기대어 두물머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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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초에 최과장님을 만났다. 그는 전에 일하던 여행사에서 알게된 이다. 나보다 한살 많던가. 작은 몸에서 나오는 풍부한 인심과 넉넉함이 인상적인 분이다. 그분이 제안했다.


"양수리나 갈까요? 출사 겸 같이 가시죠. 제 카메라가 너무 오랫동안 잠자고 있네요."


잠자는 카메라를 깨우기 위한 출사 여행. 실상 우리 스스로를 깨우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가는길에 망향 비빔국수집에 들렸다. 이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한 집인가보다. 번호표를 뽑았는데 앞으로 50여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50여명에 놀랄게 아니다. 우리가 먹고 나왔을 때 번호표를 뽑았던 사람들은 100명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보통을 시켰는데도 양이 푸짐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으면서도 진땀 깨나 흘렸다. 달달하면서도 독특한 매운맛이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사람들의 기다림에는 끝이 없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최과장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출사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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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지명 이름도 알 수 없다. 강 옆으로 호수가 생성되어 있는 곳이다. 별장 같은 단독주택들이 즐비하다. 기찻길이 있고, 건널목도 있다. 호수에는 산책하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 이것저것 독특한 소품들이 있다. 최과장님 말로는 예전에는 아주 잘 꾸며져 있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두물머리 쪽으로 손님들을 다 뺏기고 이곳은 찾는 이가 없어서 버려진 것일까. 아니면 주위 동네 분들이 낯선 이방인 관광객들을 꺼려서 일부러 버려두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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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렁과 강둑길을 걸었다. 어차피 길이 제대로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지 오래된 길의 흔적이다. 내 뒤로 많은 길을 지나왔다. 그 길이 내 앞에 다시 새롭게 길을 만들고 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 앉을 수 없다. 걸어온 길이 밀어주는 그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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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어쩌면 고장난 물레방아에 물길을 내기 위해 애쓰며 사는 것. 따뜻한 강물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아쉬워할 수 있는 것, 그것이다. 저 물레방아도 허허로운 벌판에 물을 대며, 꿈틀대는 생명들이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는다고 물레방아가 아닐까, 이제 영원의 나라로 돌아가 잠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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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돌보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들이 있고, 돌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민들레는 스스로 세상을 향해 꽃씨를 띄운다. 난 지금 문이 닫혀 있다고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둠속에서 홀로 흐느끼며, 열리지 않는 문은 벽이라는 좌절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성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내 등 뒤에서 또 다른 문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난 벽을 더듬어 문고리를 잡으려 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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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깡통처럼 요란하고 녹슬어버렸다. 다시 벌거벗고 길을 나서야 할 거다. 옛길이 언제 새길을 보여주었나, 뒤로 지나온 길에 연연하지 말자. 여기 두물머리, 내 앞에 서서 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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