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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난 민서가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민서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 하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의 고통에 대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고통은 여전히 내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둘째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둘째를 가지는 것에 대해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내 재정 건전성이나 내 삶의 부자유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어 했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가 그것을 잊었을 리가 없다. 적지 않은 나이라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둘째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딸 민서가 홀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 고통과 힘겨움을 무릎쓰려는 엄마의 모정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째를 가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키워 보면 후회할 거라는 사람들의 말도 흘려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미래에 저당잡혀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아내와 나, 민서가 행복한 길을 찾는 게 정답이다.

아내가 둘째를 가지자고 한다. 아마도 잘 된다면 마흔 전에 아이 둘 키우는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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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저차원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차원적인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기계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죠. 어느 하나로 결론지어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듯이 아이들 역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바짝 쪼이면 잠시나마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주성과 창의성 등은 그 과정에 말살되기 쉽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대개는 대학과 직업의 동의어입니다)를 위해 서로가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합니다만 실상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을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밀고 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북돋우고,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같이 고민해 만들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학교 공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겠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긍정적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석차는 이 과정에서 교훈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석차는 사회가 필요로 해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고르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이 아이를 고르는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사망 이유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살의 이유는 가족 문제나 이성 문제 등도 섞여 있겠죠. 하지만 학교 및 학업과 관련된 자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신문지면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성적과 체벌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옥죄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권리와 자유도 주어져야 합니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며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위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이들을 험악한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만들어 옆의 친구를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드넓은 자연에서 모험을 통해 협력과 협치를 이해하며 책임과 의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기고한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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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지금 이건 너희들이 자초한 거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사고가 나지 않으니까.”

“역시 맞아야 제대로 돌아가지.”

“너희들한테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내 군대 시절, ‘집합’이라고 불리는 얼차려 시간에 고참병들이 늘어놓는 말이었다. 공식적으로 군은 병사 간에 신체적 폭력을 동반하는 얼차려나 기합을 금지하고 있다. 내 군대 시절도 벌써 10년 전 일이고 실제 군대를 다녀온 많은 후배들이 지금은 ‘집합’ 같은 건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거죠. 우리도 그게 좋아서 하는 거겠습니까?”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죠.”

“사랑의 매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감정 없는 체벌은 필요합니다.”


군대 내에서 들었던 고참들의 말과 다를 바가 없다. 학교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체벌은 강력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신체적 체벌은 아동에게 장단기적인 잠재적 피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개인과 사회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6년에 발간된 ‘UN아동 폭력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동은 시종일관 모든 폭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른들의 용인과 승인 하에서 이루어지던 폭력은 아동에게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피해를 가져왔다.”


전 세계의 아이들은 애타게 자신이 신체적․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권리이며, 아동청소년 역시 인권의 주체라는 점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가 헌법적․법률적으로 어떤 인간에게도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해 관대하지 않음에도 유독 아동에게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많은 어른들이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고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매를 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여성이나 일반 성인에게 행해지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폭력 수준이라는 기준점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아동 역시 그런 폭력의 허용이나 기준선 마련은 불필요한 것이다.


한편에서 법제정자들과 정부, 학교 당국자 등은 체벌과 관련한 기준선을 제시하는 규정을 통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상 그 규정이라는 것은 ‘아동을 때리는 방법, 나이에 따른 강도, 몸의 부분, 사용되는 도구’ 등을 정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을 세계에 내놓는다면, 선진화를 외치고 있고 G20 회의를 개최하는 나라로서 망신만 당하고 말 것이다. 이미 아동권리위원회가 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 체벌 금지를 권고한바 있다.


체벌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두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을 바라보는 전근대적인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또한 세계에 내놓기 부끄러운 규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해서 보편화되어 있는 체벌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는 2002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생활규정(안)을 검토한 뒤, 직접적으로 체벌 금지를 권고했다. 당시 교육부 발표 내용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구체적인 체벌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별도의 장소에서 제3자를 동반하여 실시, 체벌 도구는 지름 1.5cm 내외, 길이 60cm 이하의 직선형 나무, 체벌 부위는 남자 둔부ㆍ여자 대퇴부, 1회 체벌봉 사용 횟수는 10회 이내’ 등으로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국가인권위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체벌 금지를 권고했다.


체벌은 일시적으로 아동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체벌의 공포에 직면한 아동들은 불안감, 우울증, 학교강박증, 적개심 등 부정적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아동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어른들이 훈육이라는 논리로 아동을 때리는 것을 보아오면서, 자신보다 약한 다른 아동이나 동생들을 똑같은 논리를 이용해 폭력적으로 가르치려는 행동을 답습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일 ‘사랑의 매’가 있다면, 그 대상은 어른이 되어야지 아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해 3월 유엔아동권리협약 20주년을 기념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학생체벌 금지와 교육적 대안 모색’ 국제워크숍에서 기조연설을 한 피터 뉴웰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격적 신체적 존엄성을 아동들은 아직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것은 부모를 기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을 때리면 안 되는데 아동은 때려도 괜찮다는 인식과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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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CR의 친선대사인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영화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처음 안젤리나 졸리를 알게 된 것은 영화 ‘툼레이더’였다.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졸리는 섹시하고 지적인 여전사의 이미지를 한껏 풍기며 전 세계인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사라기 보다는 인권 천사가 더 어울린다. 그는 2001년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임명받은 이후 30여 개국의 난민촌을 누비면서 난민들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렸고, 그가 직접 기부한 금액만도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그가 캄보디아와 에티오피아의 아동을 입양한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권전문가들에게 졸리는 여전사이기 보다는 난민인권옹호가로서 난민들의 천사라는 점은 분명하다.

2001년 그가 처음 유엔난민기구(UNHCR)의 친선대사가 됐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의 영화 ‘툼레이더’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영화 ‘툼레이더’가 그가 영화배우로서 인기를 얻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를 촬영하며 본 캄보디아의 난민 상황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촬영을 마치고 2년 후인 2001년 7월 그녀는 UNHCR의 초청으로 다시 캄보디아를 찾았을 때, 아마 그녀는 이미 난민들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거기서 그녀는 난민 정착 운동을 펴고 있는 크메르 루즈 지역을 집중적으로 돌아보았고, 공산반군이 최후까지 저항한 안롱방도 방문했다. 이 방문은 여정의 마지막 날에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가 캄보디아를 방문한 다음 달 8월 21일 UNHCR은 그녀를 유엔 친선대사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유엔의 친선대사로 선정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유엔의 각 기구들은 친선대사 활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엄격한 조건과 자격 및 활동 기준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 꾸준한 관심과 헌신적인 노력을 필요하기 때문에 친선대사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후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캄보디아, 에콰도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고통 받는 난민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캄보디아와 에티오피아 아동을 입양했고,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난민촌 캠프를 찾아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 3월 미국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2년간의 친선대사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처음 2년여간은 어떤 일도 감정적으로 되지 않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눈물의 시간을 보낸 다음에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문제와 관련된 많은 책을 읽으면서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난민들을 진실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이성적으로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갔던 지적인 여인이다. 2002년 유엔 기자협회는 그녀에게 ‘유엔 세계 시민상’을 수여했고, 2005년에는 유엔이 ‘유엔 글로벌 인권상’을 전달하기에 이른다.

그가 영화 홍보 차 우리나라를 방문했음에도 기자 회견에서는 영화 내용과는 관계없는 탈북난민 문제에 대한 질의가 나오기도 했다. 그녀가 유엔 친선대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풍경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우리나라의 난민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에 국내에 거주 중인 난민 신청자, 난민 인정자, 인도주의적 체류허가자 등 3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및 심층 면접 조사 방식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국내 거주 난민들은 난민 신청 과정에서 법률적인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고, 난민 신청 후 인터뷰하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으며, 인터뷰 과정에서도 통역 서비스 등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난민 신청자 중 취업 등을 이유로 장기 구금된 경우도 있었으며,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의 지위 인정이 안될 뿐 아니라 아무런 사회통합 프로그램도 없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2005년 유엔글로벌 인권상을 받는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망명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큰 특권이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관용과 이해의 세계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보다 더 큰 임무는 없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박해와 탄압을 피해 자유와 평화를 찾아 우리나라로 찾아 온 모든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따뜻한 관용과 이해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난민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 에 기고한 글을 재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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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큰집 풍경



처음으로 큰아버지와 단둘이 함께 한 여행은 시제를 지내러 간 남해였다. 대학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2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다. 허물어져가는 종가집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종손이라고 해, 나만 유일하게 남해의 조상 묘소에 찾아간 것이다. 큰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낳은 자손이 지금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구례로 들어와 일가를 이룬 앞 세대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떠나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처럼 장대한 대서사시가 큰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 당시 나로서는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소립자 이론만큼이나 실체가 불분명하고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의 앞세대의 삶이 있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내 선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큰아버지의 조촐한 고희연이 지난 토요일 구례에서 있었다. 큰아버지의 동생과 그 자식 손자, 그리고 친척분들만 참석한 자리지만 식당 한켠을 온전히 차지하며 시끌벅적했다. 손자손녀들도 큰애가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는 정도이지만 제법 소리를 내는 터라 정신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가친척들만의 자리라 제법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돌아보면 나로서는 몹시 아쉬움이 남는다. 큰아버지가 가진 삶의 무게는 한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 전 세대의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큰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들을 녹취해 볼 생각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먼저 살다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들려주는 것도 삶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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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저차원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차원적인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기계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죠. 어느 하나로 결론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듯이 아이들 역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바짝 쪼이면 잠시나마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주성과 창의성 등은 그 과정에 말살되기 쉽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대개는 대학과 직업의 동의어입니다)를 위해 서로가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합니다만 실상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을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밀고 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북돋우고,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같이 고민해 만들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학교 공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겠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긍정적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석차는 이 과정에서 교훈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산물입니다. 석차는 사회가 필요로 해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고르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이 아이를 고르는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사망 이유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살의 이유는 가족 문제나 이성 문제 등도 섞여 있겠죠. 하지만 학교 및 학업과 관련된 자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신문 지면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성적과 체벌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옥죄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권리와 자유도 주어져야 합니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며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위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이들을 험악한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만들어 옆의 친구를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드넓은 자연에서 모험을 통해 협력과 협치를 이해하며 책임과 의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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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다. 이것은 꼭 속마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몸 상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이들이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병마는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의 몸에서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병마를 키웠던 것은 자신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다.


내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건강 검진이 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제공하는 일반 정기검진을 받았다.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제외하고 그다지 신통한 검사는 없었다. 그 결과가 오늘 나왔다. 키는 더 커졌고(응?) 몸무게는 약간 줄었다. 체지방과 허리둘레도 정상으로 나왔다. 다만 혈액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있었다.


총콜레스테롤은 178(200미만 정상)이 나왔는데, HDL-콜레스테롤은 42(60이상 정상)로 정상보다 적게 나왔다. 반면 트리글리세라이드 221(100~150미만 정상)로 정상보다 많이 나왔다. LDL-콜레스테롤 91.8(130미만 정상)은 정상으로 나왔다. HDL-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비정상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생소한 의학용어들은 대개 공포의 대상이 되기 쉽다. 더군다나 비정상 수치라고 찍혀 나오니 내 건강염려증을 부채질한다. 인터넷에서 각각의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일종의 중성지방으로 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이다. 반면 HDL-콜레스테롤은 관상동맥질환과 역의 상관관계가 있어서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이다.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은 적고 몸에 별로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은 높으며 아주 안 좋다는 콜레스테롤은 정상인 셈이다. 역시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결론이다.


HDL-콜레스테롤은 등푸른 생선이나 채소와 과일에서 많이 나온다. 과일과 생선을 즐기지 않은 내 식습관이 문제다. 중성지방이라는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주로 알코올이 수치를 높인다고 하는데, 일주일 1~2회 정도의 음주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확실히 많이 줄여야 할 이유가 됐다. 보통 이쯤 되면 “술이 웬수다”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음주 습관이 ‘웬수’인 것이다. 따라서 술을 없애거나 바꿀 게 아니라 자신의 음주 습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곧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고지혈증의 식이요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정보다.

1. 하루 3끼 식사는 규칙적으로 합니다. → 아주 잘 하고 있다.

2. 과식은 피하고 곡류(밥, 빵, 떡 등), 어육류(생선, 고기 등), 채소, 우유, 과일 등을 다양하게 먹습니다. → 생선과 우유, 과일 섭취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

3. 합병증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싱겁게 식사를 해야 합니다. → 아내의 음식은 좀 싱거운 편이다.

4. 술은 고혈압과 뇌졸중의 위험이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으나, 만약 마실 경우에는 주 1-2회 이내로 하고, 1회는 2잔 이내로 마시도록 합니다. → 주 1~2회는 맞으나 1회 1병 이상 마신다. 주 1회로 줄이고 1병 이내로 줄여야겠다.

5. 잡곡류 (콩, 보리, 현미), 채소류, 해조류 (미역, 다시마) 등 섬유소가 많은 식품을 충분히 섭취합니다. → 잡곡류는 충분히 잘 하고 있지만 해조류는 규칙적으로 먹어야겠다.

6. 햄, 소시지, 핫도그, 반조리 식품 등의 가공식품은 피합니다. → 이젠 또 하나의 낙이 사라졌다.

7. 과체중이면 체중조절을 하도록 합니다. → 아주 살짝 과체중이다.

8. 규칙적인 운동은 고지혈증의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입니다. → 일주일에 3회 이상 자전거 출퇴근(왕복 2시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게 풍부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식의 양과 질은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옛 표어를 빌려와 표현하자면, "무턱대고 먹다가는 돼지꼴을 못면한다"라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는 그저 한 개인의 건강관리라는 측면 보다는 보다 진보적인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필요한 기준이 된다. 3끼 건강한 식사와 꾸준한 신체 활동, 그리고 운동 등을 통해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이 지구를 사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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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통화 시간 : 86시간 27분 49초 4108통화
☏ 발신 통화 시간 : 48시간 18분 05초 2312통화
☏ SMS 발신건수 : 661건
₩ 구매 당시 가격 : 100원
@ 구매 년월 : 2008년 2월 경

액정에 얼룩같은 상처들이 꽤 넓게 분포해 있다. 
윗부분의 색은 이미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횟수로는 3년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화기라는 것이 통화만 잘되면 되는 거다,
라는 생각은 이제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 대세다.
굳이 대세를 따라간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기능들을 보면
나에게 참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여러 애플리케이션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안드로이드 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폰 4G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
어찌됐든 조만간 지금 저 핸드폰과는 이별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이어준 저 녀석과 이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짠하다.

아직은 그래도 내 곁에서 잘 살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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