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인 8표다. 마음에 드는 후보들 이름 외우는 데도 한참 걸릴 것 같다. 얼마 전에 집으로 온 선거 공보물을 전부 펼치니 작은 방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래서 투표 당일에는 후보들 이름을 메모해 갈 생각이다. 내 소중한 한 표가 허투로 찍혀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부터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은 정책 선거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후보자들이 거짓 공약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공약을 유권자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민주 국가의 기본 의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와 함께 투표 장소에 대한 차별성을 배제하려는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인들의 선거 편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종교시설에 설치된 투표소도 인근 공공기관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한몫했다.


2004년 11월 10일 국가인권위는 선거방송에서 수화 통역이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장애인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기타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므로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청각장애선거인의 선거권 행사의 편의를 위해 각종 시설 및 선거권 행사에 관한 홍보 등에 대해 자막 또는 수화 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현장에서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안은 헌법재판소까지 갔지만 아쉽게도 8:1로 기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김종대 재판관은 청구인들이 문제 삼은 법률조항들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방지의무 및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준바 있다.


“점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자 선거공보 규격 제한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   - 2005/04/15


집으로 오는 선거 공보는 본격적으로 후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때문에 시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이 보는 선거 공보 책자보다 더 적은 내용을 수록할 수밖에 없다. 2005년 4월 15일, 국가인권위는 “점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자 선거 공보 규격 제한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라는 권고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점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 묵자(黙字: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자)에 비해 글씨 크기를 조절할 수 없는 게 점자이다. 게다가 점자 하나가 각각 하나의 자음과 모음을 표시하는 등 그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묵자의 약 3배 분량이 필요하다. 또 점자는 종이가 얇을 경우 글씨가 지워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120g/㎡ 이상의 종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선거 규정은 120g/㎡ 이내의 종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서 점자책을 배려하지 못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 7월 30일에는 “투표소 선정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시각장애인에게 투표보조용구 제공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발표했다.


중앙선관위가 18대 총선이 끝나고 발표한 선거백서에 따르면, 투표소의 1층 설치율은 1990년대 80%에서 훨씬 높아진 95.7%에 이르고 활동보조인(2541명), 투표보조용구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활동보조인은 1000명당 1명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게 장애인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지난 초대 교육감 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경우 문턱이 높거나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투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거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장애인을 위해 다른 투표자나 선거관계인의 호의적 도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쉽게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로 장애인의 접근이 곤란한 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하였다면 임시 경사로 등의 필요한 설비를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투표도우미가 직접 들어서 이동시키는 방법에 의한 인적 서비스는 앞서의 다른 모든 실현가능한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 및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의 편의 제공 역시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기표행위를 한다는 것은 민주 선거의 기본원칙인 비밀선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된다. 따라서 시각장애인도 독자적으로 기표를 할 수 있도록 특수 투표용지 또는 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해야 하는 게 민주국가의 의무다.


투표소 관련해 특색 있는 권고도 있다. 지난 2008년 3월 19일에 발표한 ‘종교시설내 투표소 설치 금지’ 권고이다.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총 투표소 13,178개소 중 1,172(8.9%)개소가 각각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의 경우 2,210개 투표소 중 종교시설 투표소가 511개소(23.1%)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는 특정 종교 시설에 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일부 유권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 종교의 자유를 침해 받는 일이 일어난다. 또한 이로 인해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한다면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결과가 되어 더욱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의 선거 관련 권고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소수자들일지라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1표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차별적인 제도와 규정, 조항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여전히 자신이 주권자로서 가지고 있는 참정권을 법제도와 규정, 조항들로 인해 제대로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국가인권위는 앞으로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참정권을 아무 제한이나 장애 없이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유엔인권위원회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권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문자 의식 능력 결여, 언어상의 장애 등을 가진 유권자가 투표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투표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원조가 각각 독립적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 국가라면 당연히 한번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010.05.30. 국가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반응형
반응형





순전히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거지만, 아기가 우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배고프면 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게 생명의 본능. 아기는 이것을 우는 걸로 표현한다. 둘째, 밑이 불편하면 운다. 즉 기저귀가 젖어 있거나 똥을 싸놓았는데 갈아주지 않으면 운다. 불편하니까 깔아달라는 얘기다. 셋째, 신체적 변화가 오면 운다. 열이 있거나 속이 안 좋거나 하는 경우다. 몸이 자기가 원하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주사 같은 경우는 처음 맞을 때만 울 뿐, 잘만 달래주면서 놀아주면 금방 울음을 그친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대책 없다. 아기가 끊임없이 울어대는 경우는 그래서 병원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잠투정. 잠이 온다고 운다. 아이를 안 키워본 사람은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궁금하면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잠투정'을 쳐 보라. 아기 잠투정 때문에 속상한 부모들의 사연들이 줄줄이 뜰 것이다. 아기는 잠이 오면 자야 한다는 사실에 익숙지 않다. 눈꺼풀은 무겁고 정신은 몽롱하고 하품은 나오는데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기의 편안한 잠을 위해서는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다.





아기가 잠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눈을 부비거나, 하품을 하거나, 눈을 자주 깜박인다. 이때 잠자리 의식을 치루지 않는다면 아기는 칭얼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바로 아이를 재우는 의식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아기가 더 놀고 싶은 욕심이 많거나 충분히 졸리지 않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엄마아빠가 자기를 억지로 재우는 의식을 하면 아기는 싫어하고 놀아달라고 발버둥치는 거다. 그럼 또 놀아주어야 하는데, 아기와 놀아주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이 빨리 지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다가 아기가 다시 졸음이 오면 또 하품을 하고 눈을 부빈다. 다시 잠자리 의식을 치른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길게는 한시간 이상 울고 보채는 아기와 싸워야 한다. 더군다나 졸린 아기이니 그냥 놔두지 못하고 안고 서성이며 다독여 줘야 잠이 올까 말까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은 우는 아기를 달래겠다고 한밤중에 동네를 한 바퀴 돈 적도 있다.

민서는 순한 아이다. 누가 안아도 낯가림도 없이 잘 안긴다. 물론 안는 자세가 서툴거나 어색하면 칭얼대는 건 모든 아기와 다르지 않다. 허나 잘 안아주는 사람에게는 그냥 잘 안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민서가 순하다고 한다. 민서 재우는 걸 안 해본 사람들 말이다. 한번은 시골에서 아기를 재우는 데, 아기 잠투정을 처음 본 어머니는 아기 어디 아픈 게 아니냐며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아기는 아픈게 아니라 잠투정을 하는 거였다. 그날따라 2시간 가까이 잠투정을 했으니 집안 어른들이 다 놀라고 말았다.

잠투정은 딱히 방법이 없나 보다. 지금으로서는 적당하다 싶을 때 누워서 젖을 물리면서 재우다 보면 잠이 들면 다행이다. 젖을 빨지도 않고 떼를 쓸 때가 문제다. 아기 키우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며 밤잠을 설치면서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실감하는 바다.





그래도 아이는 쑥쑥 큰다. 지금 민서는 한창 뒤집기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한쪽 다리를 직각으로 세우고 힘을 주어 허리를 튕겨서 엎어지기 직전까지 왔다. 가끔 민서 엄마가 아기를 엎어 놓으면 고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곧추 세운다. 아직 기어나가는 단계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뒤집으면 곧잘 기어갈 것 같다는 예상이다.

책을 읽어주어야겠는데, 마땅히 방법도 모르겠고 시간도 쉽지 않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나면, 아기 목욕 준비하고 목욕 끝나면 젖을 먹이면서 잠잘 준비를 한다. 잠잘 준비라는 게 보통 방안의 불을 모두 소등하는 거라서 책을 읽는 게 어렵다. 잠투정이 없으면 10시 정도에 잠이 들지만, 어느 날은 11시 전후에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난다. 나 스스로도 책 읽을 시간이 쉽게 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마트에서 유모차를 한대 샀다. 아직 내 차도 없지만, 아기차는 꼭 있어야하지 않나. 그리고 어제 드디어 유모차 외출을 해 보았다. 유모차를 끌고 다녀보니 장애인분들의 고충을 새삼 느낀다. 사람이 안전한 길, 유모차가 편안한 길, 휠체어가 자유로운 길은 어렵겠지만 놓쳐서는 안 될 사회적 약속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 앞의 목감천을 따라 안양천까지 약 30분 정도의 도보길, 그리고 샌드위치로 하는 점심식사와 이야기. 5월의 평화로움이 삶에 배어들었다. 잠든 아기와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세상의 모든 행복이 이곳에 내려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저 평화로운 잠과 아름다운 웃음에 빠져 그 험한 세상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반응형

반응형


김영하 작가의 글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
여러분은 문학을 '배우'셨습니까?


이미 공공재로 돈을 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글을 교과서에 실린다고 반대한다는 건, "내 글은 돈 내고 볼 수 있으며, 어떠한 비평이나 교육, 보도, 연구의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일까? 이름 있는 작가가 생각할 깜량은 물론 아니다. 그의 글의 내용의 주는,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자신의 작품이 가진 상상력의 세계와 작가의 의도가 교과서의 편저자에 의해 왜곡되거나 곡해되는 것, 나아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생각해야 할 학생들의 생각을 시험이라는 잣대에 따라 일관되게 만드는 것 등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또, 지금의 문학 교육이 가지는 모순에 대한 불만과 지적도 엿보인다.

아동의 배울 권리는?

이야기에 앞서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정 교과서 체제에서 문학 교육을 국가가 주도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검정 교과서의 현재 심사 기준은 문학의 세세한 해석까지 간섭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학생의 수준에 맞는 문학 지식이나 이해의 수준을 정하는 선에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가가 문학 교육을 주도하고 있다는 오해는 접었으면 한다. 또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작가의 권리를 지키는 과정에서 현 시대의 문학을 배울 권리가 있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권리 침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생각해 보자(아이들은 저작권법과 무관한 옛날 문학만 봐야 할까). 아동청소년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시행되는 최소한의 교육으로 문학은 배울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

문제는 대학지상주의에 있다.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실시하는 대학 수능시험 때문에 문학 교육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필요한 여타 다른 과목(예를 들어 역사나 윤리, 사회)마저 정량화되고 획일화되는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씩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수학능력 시험이 대학의 당락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대학 공부에 필요한 학습 능력을 시험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변화되고 있다. 수학 능력 시험에 대한 변별력이 약화되고 시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대학 입시에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가진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예전처럼 암기와 이해식 학습능력만으로 대학 가던 시대는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학생시절에 했던 다양한 활동이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문학에서 하나의 관점이나 해석을 강요하던 흐름도 바꾸어 놓았다. 중학교 1학년 학교 현장에서는 올해부터 새로운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로 배우고 있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시사점은 기존의 원론적 지식의 이해암기식 교육에서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학습자들이 학습 과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며,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학습 목표와 방법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활동에서도 토론과 토의 중심의 모둠활동을 강조하는 내용에서도 엿보인다.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내 의견을 조리있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의 정답에 맞추어서 똑같은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해석하여 답을 구할 수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지금의 검정 교과서는 이런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에 적합한 교과서들이 합격해 교육현장에 배포된 것들이다.

물론 교과서 하나가 교육이라는 거함을 움직일 수는 없다. 큰 배가 움직이는데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요하고, 또 설령 협업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큰 이동 궤적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를 생각하자


"문학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해 주고 싶다. 문학은 충분히 (학교에서) 배울 '가치'가 있다. 작가의 말대로 문학은 예전에 주요 과목이 아니었다. 지금도 고교 2,3학년에서는 선택 과목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양적 질적 성장을 거치면서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의 하나로 문학 교육이 기본 교육의 하나로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교양이 되었다. 작가가 예를 들어 설명한 만화로 말하자면, 불과 10년 전에 '만화 비평가'라는 말은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는 '만화 비평가'에 '만화 전문 학과'까지 대학에 생겼다. 언젠가는 만화도 교과서에서 다루어야 할 주요한 문화 장르의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문화적 학문적 가치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울만한 '가치'가 확보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새로 나온 개정교육과정에 만화 컷이 들어가지 않은 교과서가 있다면 말해주기 바란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은 실생활과의 접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목의 선정뿐만 아니라 그 과목의 내용 또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부딪히고 만나야 할 문제들을 어떻게 풀 것이며, 스스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젊은 작가이며 현존하는 작가의 최근 작품을 수록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수학은 지금까지 혼자 끙끙대며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면 지금의 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푸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물며 문학 교육은 소통의 가치를 배우며 인문학적 소양 기본이 되는 학문으로서 학생들이 배울 가치가 있는 학습의 하나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공교육은 최소한의 교육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최소의 기준에 맞추어서 이것만큼은 우리 세대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하는 공통의 과제를 선정한 것이다. 여기서 문학 교육을 빼야 할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다. 비록 그 방법과 내용이 마음에 안들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빼자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응형
반응형


국회에서는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오후 7시에 다양한 신작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달에는 <식객2>를 상영했으며, 지난달에는 <전우치전>, 2월에는 <셜록 홈즈> 등을 상영했죠. 이 날이면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즐거운 국회 나들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번에 글 쓰면서 처음 알게 됐으니까요^^

최근 들어 공공청사의 변신이 새롭습니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드나들기 쉽도록 입구를 개조하는 건 기본이 된지 오래죠. 공공청사가 배려할 것은 단순한 기능적 측면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많은 공공 청사들이 그 건립 취지에 맞게 여러 가지 행사를 청사 안팎에서 치루면서 국민에 보다 가까운 행정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공연을 비롯해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문화 강좌, 외국어 교육 등을 진행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죠. 불과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공공청사는 평범한 국민들이 접근하거나 출입하기 어렵고 꺼려지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찾기 힘든 자료를 찾을 때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 중의 하나가 국회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기본적으로 공공청사가 주민들의 세금으로 지어진 것이며, 따라서 주민들의 편의와 편리, 행복 추구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기본 이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죠.

공공청사는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지어진 만큼 관리에 대한 규정이 엄격하다고 합니다. 나아가 국가중요시설로 규정되어 있는 건물들은 여전히 드나드는 데에 있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규정에 대해서 한번쯤 의문을 품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입니다. 과연 그 규정은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규정은 합리적이고 적절한가.

지난 4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 사무총장에게 국회청사 출입통제와 관련된 ‘국회청사관리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출입금지 대상자 선정 기준과 절차 및 출입금지 기간을 명시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인권위 조사결과 ‘국회청사관리 규정’에는 “의장은 청사의 관리 및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청사출입의 제한 및 통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지만, 청사출입 통제 대상자의 선정 기준, 절차, 기간 등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 통제 대상자는 해당 국회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최대 4년 동안 국회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도 국회에서는 중요한 입법 활동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전개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다양한 토론회와 포럼, 발표회, 기자회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의가 집중되는 현장이 바로 국회인 셈이죠. 그런 국회에서 국민의 출입을 통제하고 제한한다고 할 때, 입법 기관 다운 과정과 절차 기준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공공청사로서의 국회는 민의와 가장 가까워야 하는 곳이며, 어떤 민의라도 들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2010.04.27.

반응형
반응형

기도하는 민서




4월 19일이 결혼 1주년입니다. 비록 아내와 딸은 멀리 전라남도 구례 산골짜기에 있지만, 저로서는 남다른 날을 남다른 방법으로 기념해 보렵니다. 불과 1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들떠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렀던 기억들이 이제는 아주 오래전 기억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 사랑하는 아내와 그만큼 또 사랑하는 딸, 민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는 금방 멀어지는 법이죠. 이렇게 저에게 1년 만에 사랑하는 여인이 둘이나 생겼습니다. 세상이 맺어준 인연 아내와 하늘이 맺어준 인연 딸. 둘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새벽 5시에 출발해 다시 4시간여의 먼 길을 달려 아내와 민서에게 갔지요. 여전히 운전은 서툴고 낯설지만(2007년에 면허를 땄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9시 반쯤 장모님 댁에 도착해 보니 아내와 민서는 곤히 자고 있었지요. 주말 아침의 늦잠은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거라 가만히 옆에 앉으려 했는데, 민서가 먼저 깨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네요. 그리고 아내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일어났지요.

민서는 일주일동안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4~5일마다 변을 보았는데, 시골에 와서는 거의 매일 황금변을 내놓았습니다. 스스로 손을 모으고 물건을 잡는 시늉을 하고, 가만히 물건을 쳐다보거나 손을 쳐다보는 행동을 합니다. 안아주는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고, 엄마가 움직이는 대로 자기 시선을 돌립니다. 옹알이도 많이 늘어서 민서가 가장 기분 좋은 아침에는 아주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말에 넙죽넙죽 대꾸를 잘하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지요. 상상력 부족한 저는 대답할 말을 못 만들어 내고 그냥 "어~ 어~"라고만 하지 말입니다.

이날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자동차로 지리산 성삼재에 오르려 했으나 계속되는 이상저온으로 대신 쌍계사길 드라이브만 다녀왔습니다. 쌍계사 벚꽃 길은 아내가 예전부터 꼭 가보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터라 저 역시 기대감이 컸는데, 정말 쌍계사 벚꽃 길의 아름다움은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 길에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벚꽃이 많이 지고 난 뒤였지만, 남아 있는 꽃잎과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 이전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쌍계사에서 아내와 민서




민서는 아직 자동차 여행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작아서 아기띠를 해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 않았지요. 그리고 콧바람 신나게 쐬고 온 하루였습니다. 나중에 아장아장 걷게 되면, 산과 들로 더 신나게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과 자연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아내와 나는 다시 한 번 민서와 약속하고 왔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놀아달라고 떼쓴
민서를 벌주기 위해서
바지 속에 팔을 넣어봤습니다.
녀석은 가만히 있더군요.
벌써 자기의 잘못을 깊이 알고
반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빠,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여러분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나요?

암튼 저렇게 만들어 놓고
전 자전거 타고 출근했습니다.
아마 민서 엄마가 제가 나가자마자
풀어주었을 겁니다.

윗집에서 쿵쿵대는 소리며,
옆의 계단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는
다세대 집구조이다 보니,
민서는 작은 울림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는 듯합니다.

아이를 보면서 새삼 도시의 소음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37년을 살아오면서 이제 이 도시의
시끄러움에 많이 익숙해졌나봐요.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았죠.
결국 엄마 아빠가 잘 때는 조용조용
놀때는 시끄럽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더군요.















민서는 지금 아내와 구례에 있습니다.
장모님 칠순 잔치를 앞두고
아내와 함께 미리 구례에 내려가 있죠.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공기 좋고 물 좋은 동네입니다.
최근에는 근처에 골프장 만드는 문제로
동네가 시끌시끌합니다만,
그래도 산수유,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동네죠.
거기서 아주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장모님 집이
인터넷도 안되고, 컴퓨터도 없어서
아내의 블로그도 멈춰버렸네요.
회사에서 하루에 한번씩 올라오던
아내 블로그의 민서 이야기가
저에게는 하루의 신성한 청량제였는데,
그게 없으니 무척이나 허전합니다.

4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춥네요.
그래도 지리산이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꽃샘추위를 잘 막아주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산후통이 좀 심한데,
(친정)엄마가 해시주는 밥을 먹으면서
많이 나아져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아플 때는 엄마가 해 주시는 밥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오늘 통화해 보니,
민서는 똥도 잘 싸고,
잠투정도 덜 하고
아주 잘 논다고 하네요.

역시 시골 공기는 아이에게 좋습니다.
누구는 아이 교육과 미래를 생각해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지만
맑고 밝게 키우려면 역시 시골에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저 생각만 이리저리 굴리며
역시 갈피를 못잡고 맙니다.

아내는 매일 민서 사진을 보내 줍니다.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주말에 예정에 없던
구례행을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민서 한 번 안아보지 않으면,
팔에 가시가 박힐 것 같아서 말이죠.


























반응형
반응형




민서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전 포스팅 "안녕, 저 민서에요"가 그만 다음 view의 포토·동영상 베스트에 뜨면서 육아 베스트에도 올라 하루만에 제 블로그에 1600명이상 방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거죠. 민사의 인사 한번으로 이렇게 블로그가 대박이 났으니 앞으로 민서가 말하고 걷고 학교 다니면 아마 수만명이 다녀가지 않겠냐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해봅니다. ㅎㅎ

그래도 민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이가, 어린이가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겠죠. 저 먼저 우리 아이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아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