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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야유회를 다녀왔다. 사람들의 평점은 5점 만점에 4.18점. “참 잘했어요.”에서 “참”을 빼는 정도가 되겠다. 무난하게 끝났지만 스스로 평가해 보면 좋지 않다. 많은 사람과 함께 행사의 취지와 내용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안의 불만들을 받아 주고 서로가 다른 의견들을 하나로 모아가는 일, 야유회의 진행 과정에서의 부자연스러움 등은 나에게는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거기다가 갑자기 몰려든 교재 편집업무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진행된 것은 없었다.


돌아보면 사람들의 불만을 모으고 그 불만을 넘어 더 나은 결과를 내고자 했던 여러 실험들은 그다지 바람직한 결과를 내오지 못했다. 설문조사 자체에 대한 실험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으나 내용과 결과의 해석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소집단의 의견수렴은 설문조사보다는 심층면접이나 익명성을 강조한 의견서 작성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후 다른 사례에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충분한 시간과 지원은 꿈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로지 경험과 야근만을 강요하는 환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야유회 행사에서도 미숙한 진행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성격이 ‘다큐’에는 강해도 ‘예능’에는 젬병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게다가 너무 자만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남들 앞에 나서본 일이 없고, 하다못해 반장 한번 안 해 본 내가 뭘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유회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초기에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보이콧을 생각할 만큼 분위기는 무척 안 좋았다. 설상가상 설문조사 과정에서 팀장의 심기까지 건들고 만 일도 있다. 이때의 분위기는 험악하기까지 했었는데, 이런 과정을 무사히 넘겨 한 사람 빠짐없이 참여하는 야유회를 만들어 낸 것도 큰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유회나 워크숍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만드는 장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심지어 팀별 워크숍이나 야유회가 회사의 공식 행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회사의 앞날을 암울하게 한다. 어디까지 믿고 따를 수 있을까에 대해 조직원들의 의심은 깊어만 간다. 물론 다른 회사의 경우를 본다면 그나마 인간적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하지만 회사는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조직은 그 무엇보다 살벌하게 돌아가기 나름이다. 그런 조직이 애사심을 갖게 하기 보다는 다른 탈출구나 요령만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 회사의 리더십은 바닥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선한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좋지 않은 조건과 환경에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회사 생활을 엮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야유회는 그런 성심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멋진 작품이었다.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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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이제 됐어?"


끊임없이 홀로 전장터로 내몰리는 전사의 비애였을 것이다. 수없이 무찌르고 베어냈지만 여전히 몰려드는 검투사들, 끝나지 않을 원형경기장의 전투. 그렇게 원형경기장의 중앙에 우뚝 섰지만, 저 시체들 너머 더 큰경기장에서 더 잔인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알려줬을 것이다. 아니, 이미 중앙에 올랐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를 쓰러뜨리고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내 자리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다른 검투사들과의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이 피의 비는 언제 그칠 것인가.

사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경쟁 사회에 익숙해져갔다.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더 강한 자라고 자위하고 있다. 사실 원형경기장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대학을 나와서도,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 치열한 전투의 트라우마는 번번이 삶의 한가운데서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기 일쑤다. 그렇게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며 끝나지 않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더 큰 원형경기장에서 더 큰 어른들과 벌이는 전투는 그저 성적표의 성적이 좀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삶을 뭉텅이로 도려내고 나락으로 처박아 버릴 수 있는 잔인한 싸움이다.





어쩌면 그 아이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됐어?"와 "이제 됐어!" 그가 마지막에 썼다는 그 물음표는 오히려 느낌표 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그네들이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은 철저히 막혀 있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절규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안에서라도 아이들이 숨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을 이념 갈등으로 치부하는 저 몰지각한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 잔인하고 비열한 전투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단지 몇몇 한줌도 안되는 승자, 그것도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등극한 승자들을 위한 요식행위에 동원되는 그저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없는 패배자, 루저의 나락으로 내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꿈꿀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교육, 그것은 원형경기장의 담장을 허물어 버리는 시작이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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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한 사회 노회한 조직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나이를 참 많이 먹었구나 싶다. 물론 회사가 45년이나 되었으니 사람으로 쳐도 중년을 달리고 있는 셈이지만 가끔 보면 그 이상의 연배를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있을 때 손쉽게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회사의 행동을 보면 45세가 아닌 60대 후반일 것 같은 고루함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나이 듦에서 오는 신중함과 엄격함이 긍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시대에 뒤쳐지는 프로세스나 시스템, 직원 복지 정책이나 회사 비전 등은 동종 업계 그 어떤 회사보다 노후화 되어 있는 회사가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다.

2주 전부터 회사 워크숍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워크숍이라고 해서 어떤 중요한 이슈나 주제를 가지고 심층 토론이나 회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구성원끼리 하루 잘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는 모르는 비공식 워크숍이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회사는 팀별 워크숍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 워크숍도 마치 007작전 수행하듯 몰래 회사를 빠져나가 개별적 혹은 조별로 해당 장소에 찾아가도록 지시를 받기 일수다. 그러니 지원금 등은 애초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팽배했다. 워크숍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 몇달 전부터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워크숍은 절대 갈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회식도 아니고 토요일 오전까지 헌납해야 하는 워크숍에서 금요일 저녁 출발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사실상 저녁에 출발해 술이나 마시고 놀다가 뻗어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그야말로 별 무의미한 일정만 소화하는 일에 사람들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팀별 워크숍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긍정적 효과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한푼도 지원하지 않는 우리 회사에 대한 반발, 조직의 고루함도 사람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팀장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 지난 해 영종도 워크숍의 한 장면



하지만 여기에는 조직원들 사이의 오묘한 이해관계의 대립도 없지 않다. 각각의 담당자들이 각자의 일을 수행하면서 겪는 상급자와의 오랜 갈등, 각 담당자들 간의 갈등, 조직원들간의 묘한 오해 또는 서먹함 등이 두껍게 쌓여 있다 보니 조직원들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해 보려는 노력이 가치를 바랬다. 물론 1박2일 화려한 워크숍이 오래 쌓인 갈등의 때를 한번에 벗겨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속내를 편안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프로그램과 그것을 지원하는 회사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된 가치, 다양성의 회복                          


이렇게 부정적 분위기가 가득한 상황에서 워크숍을 준비하는 명을 받았으니 나로서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윗사람에게는 금요일 일찍 출발하는 워크숍 일정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직원들에게는 부정적인 워크숍 인식을 긍정적 인식과 기대로 바꿔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구글 문서를 이용한 설문조사였다.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 일반의 워크숍에 대한 인식을 윗사람들이 그대로 받아 안아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워크숍에서는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총 3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상처를 덧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과정도 부실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결국 1박 2일 워크숍은 무산되고 대신 금요일 저녁의 바비큐 파티로 진행할 예정이다. 워낙에 다양한 개성과 업무로 어우러진 팀이라서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통일하기 보다는 서로의 이해를 요청하고 최대한 모두가 편안한 일정으로 잡아보려 하였다. 무엇보다 술자리 외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일정이었다.

다양성은 조직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힘들고 답답한 좁은 문처럼 보이지만, 그 문이 제대로 열린다면 누구나 오갈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다양성을 버린다면 그건 윗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동료 직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그만큼 일의 편차가 커짐을 의미하고 조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자연히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에 대해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진행되는 워크숍(야유회)가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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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만나다                                




지난 토요일은 아내의 친한 동생네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멀리 남양주에서 열리는 돌잔치라서 이왕 나서는 길, 가족 나들이 계획까지 세웠더랬죠. 아침 일찍 나와서 쁘띠프랑스를 둘러보고 청평휴양림에서 산림욕을 즐긴 후 마석공원 미술관에 들렀다가 저녁 6시에 있을 돌잔치에 참여하자는 거창한 계획은 때아닌 장마 소식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대신 쁘띠프랑스만 둘러보고 돌잔치에 다녀왔지요.

쁘띠프랑스는 입장료가 대인 8,000원이었는데, 그 가격만큼 볼만한 게 있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여기저기 다채로운 행사를 하던데, 아기를 안고 다니기에는 사실상 어렵더군요. 그래도 좀 큰 아이들은 신나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설 <어린왕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텍쥐페리의 이상이 <어린왕자>에 드러나 있죠.

어린왕자는 장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 갔다.
그는 꽃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은 데가 없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누구 하나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어. 옛날엔 내 여우가 꼭 너희들같았지. 세상에 흔해 빠진 여우들과 뭐 다를 데 없는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지. 그러나 내가 친구로 삼았고 이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됐어."
그 말에 장미꽃들은 몹시 난처했다.
어린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어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는거야. 물론 나의 꽃인 내 장미꽃도 멋모르는 행인은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꺼야. 그러나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덮개를 씌워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나비가 되라고 두 세 마리는 남겨 놓았지만)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은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야."

나만의 장미, 나만의 여우, 저에게는 민서와 아내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기들여져 있어 그들 없이 세상을 건넌다는 게 저에게는 무의미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쁘띠프랑스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린왕자>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내가 아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제 곁에 항상 어린왕자를 두고 있어야겠네요.



동자승이 된 민서                                           


일요일에는 부모님까지 참석한 작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민서 머리 깎기'. 이전부터 머리를 한번 싹 밀어주자는 아내의 요청이 있었는데, 자꾸 미루어 오다가 어제 드디어 거사를 진행했죠. 민서가 숨넘어가는 울음을 울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민서는 머리를 깎는 내내 아주 침착하고 조용히 있더군요. 물론 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도리질 치긴 했지만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발기를 이용해 깎긴 했지만 너무 바짝 자르지 말라는 아내의 요청이 있어서 이발기에 보조기구를 대고 잘랐더니 밤송이 같은 머리가 나왔네요. 아내는 배냇머리를 잘 간직했다가 붓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아기의 배냇머리를 고이 간직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선물과 함께 준다고 합니다.

민서는 머리카락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얇고 숱이 적은 편입니다. 저를 닮았다면 무성하고 빳빳할텐데 말이죠. 깎아 놓고 보니 어느 절의 동자승처럼 아주 귀엽습니다.

아내도 민서 머리 깎은 기념으로 더불어 결혼 이후 줄곧 길렀던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머리가 기니까 아기를 업을 때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고, 무엇보다 머리를 다듬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다는 게 피곤하다는군요. 처음 만났을 때 짧은 단발머리였기에 오히려 전 환영했습니다. 아내는 짧은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이렇게 모녀가 함께 머리를 다듬은 날,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왼쪽은 before 오른쪽은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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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인들은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그 사람, 그 장소, 그 사건을 기억하고 감상에 젖어 듭니다. 어제(20일), 드디어 민서의 100일 사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나섰습니다. 사실 100일보다는 200일에 가깝네요. 요새 100일 사진은 100일에 찍지 않습니다. 아이가 엎드려서 머리를 가눌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이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 그리고 사진 촬영 중의 피로감을 좀 덜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한참 들고 있을 즈음이면, 새살도 부리고 웃을 때면 활짝 웃기도 하는데 지금은 제법 소리까지 내면서 웃습니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잘 안겨 놀 때입니다. 이럴 때 첫 100일 사진을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민서의 100일 사진을 찍겠다고 결정하고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름 사진 좀 찍어봤다고 셀프 스튜디오를 알아보다가 그만 때가 지나버린 거죠. 집 가까운 곳을 알아보다가 후배의 추천도 있고 해서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마이베베 셀프 스튜디오를 찾아 갔습니다. 대개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100/200일 사진 찍는 곳과 돌 및 유아 사진 촬영하는 장소로 나누어져 있더군요. 시간당 3만원, 카메라 대여는 1만원.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외에 처조카 셋이 도우미로 왔는데, 그렇게 복작거린다는 느낌이 없었죠. 게다가 다양한 소품들도 갖추고 있어서 다채로운 연출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캐논 5D 카메라도 대여해 줍니다. 조명과 카메라 세팅은 스튜디오에서 알아서 다 맞추어 줍니다. 아이 200일 사진은 보통 조명을 터뜨리기 보다는 은은하고 따뜻한 지속광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촬영의 관건은 아기에게 있습니다. 일단 환경이 낯설면 아기는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마 못가서 찡찡대기 시작하죠.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보챕니다. 잠이 오거나 배가 고파서인데, 2시간을 빌렸다면 잠시 재우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아이가 잘 노는 시간으로 예약을 잡는 게 가장 좋겠죠.

민서는 첫 번째 배경 촬영(맨 위 사진)을 마치자마자 계속 찡찡댔습니다. 촬영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처조카 셋이 동원되고 아내가 춤을 추어도 아랑곳없이 안아달라고 우는 데 방법이 없더군요. 당연히 촬영이 지체되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눈을 보면 눈물이 글썽거리죠. 싫다고 떼쓰다가 잠깐 촬영한 건데, 딱 성냥팔이 소녀 컨셉이 나오네요.^^




대개의 셀프 스튜디오는 다양한 소품과 배경을 촬영할 수 있고 의상도 여러 벌 준비되어 있어 아기 촬영에는 손색이 없게 꾸며놓습니다. 민서가 아직 앉는 게 불안한데, 아기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서 위의 사진처럼 앉혀서도 찍을 수 있죠. 그러나 민서는 저 의자가 어색한지 앉힐 때마다 울어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촬영 전에 미리미리 앉혀 버릇하면 잘 했을 텐데, 그게 또 아쉽네요.




시무룩한 민서의 모습이 그날 하루의 민서를 다 말해 주는군요. 잠시 젖을 물리니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네요. 젖을 떼고 다시 사진 촬영하겠다고 옷을 갈아입히면 싫다고 찡찡찡~ 안아달라고 찡찡찡~ 2시간의 한정된 사진 촬영 시간에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내고 싶은 부모 마음과 그냥 편하게 쭈쭈 먹고 잠자고 싶은 민서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힘들어 하는 민서 보면서 "이래서 부모 욕심 때문에 아이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는 카메라를 아내에게 맡겼어요. 아내도 꽤 사진을 잘 찍는 편이라서 안심하고 맡겼는데, 평소 집에서 엄마가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제가 하는 것보다는 더 편안한 사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좀 더 특별한 사진을 원했으나 특별한 경험도 덤으로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아기가 주인공이 된 첫 행사였습니다. 민서가 잘 웃고, 잘 울고,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럭저럭 좋은 결과가 나와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민서 엄마가 사진 촬영을 다녀온 후 민서 치장하는 데 부쩍 관심이 커졌습니다. 당장 민서 모자부터 예쁜 걸로 하나 사겠다고 하니, 앞으로 민서에게 들어가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아깝지는 않으나 제 수입이....






민서도 이번에 큰 일을 치룬 셈이죠. 온 가족이 다함께 공들여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흐뭇합니다. 아내는 민서의 사진첩을 준비하고 있지요. 민서가 혼자 버티고 설 수 있지만 아직 걷기는 힘들 때쯤에 돌 사진을 찍을까 합니다. 보통 돌 전에 아기가 설 수 있다고 하니까 빠르면 10월이나 11월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더 재미있고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죠.














셀프 스튜디오 촬영에 들어간 비용은 총 8만원. 물론 현상이나 인화를 하지 않고 룸 대여료(2시간 6만원)와 카메라 대여료(캐논 5D 2시간 2만원)만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면 또 지출이 생기겠지만 아이와 함께 한 셀프 스튜디오 나들이 꽤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이 100일 사진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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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아기들이 그러하듯 일단 뭐든지 입으로 갑니다. 안고 있으면 아빠 팔뚝이나 손등을 빨고 있고, 장난감을 주면 맛부터 보려는지 입으로 가져가는 거죠. 아기는 미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감각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민서는 요새 입에 침이 고이는 경우가 많아요. 입으로 "브르르르르"하며 고인 침을 가지고 장난도 치죠.


































민서가 처음에는 젖병을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어렸을 때 젖꼭지를 이용해서 비타민과 약을 좀 먹였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젖병의 꼭지를 물면 약을 먹는 줄 알고 혀를 내밀어 뱉어내려고 하거나 짜증을 내곤 했죠. 덕분에 처음에 사놨던 분유는 고스란히 애물단지로 남아버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점점 엄마 젖이 모자르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도 보채던 민서에게 분유를 타서 먹였더니 아주 잘 먹기 시작했어요. 젖꼭지를 아주 강하게 거부하던 민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왜 그동안 이 맛있는 걸 안주었냐며 쭉쭉 빨아 먹더군요.

지금은 민서 엄마가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가면서 주고 있어서 아주 건강해지고 살도 하루가 다르게 통통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젖병을 물기 시작하면서 제가 손수 먹일 수도 있고, 덕분에 민서 엄마는 좀더 자유로와질 여지가 생겼지요.





















젖도 잘 먹고 분유도 잘 먹으니 힘도 세지고 노는 것도 에너지가 펄펄 넘칩니다. 바구니에 앉혀 놓으면 모서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을 정도로 허리힘도 생긴 듯합니다.

바구니를 타고 바구니를 밀어주면 저 앙증맞은 손으로 바구니를 꼭 잡는 듯합니다. 오래 못가 잉잉거리지만 그래도 짧은 바구니 여행이 싫지는 않았나 봐요. 그나저나 아기랑 놀아주려면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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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아이를 안아 들어 본다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큼직한 사랑을 하나 들고 있는 무게와 같다. 아이가 무럭무럭 크다 보면 그 버거움은 아이의 몸무게만큼 더욱 커진다. 그런 사랑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게 또한 사랑이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경험인가.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아기가 함께 맞아주는데, 그때마다 민서는 활짝 웃어 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날 있었던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을 지워주는 미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래서 점점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회사에 묶어 놓은 말뚝을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묶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말뚝은 꽃을 닮았나 보다. 집안에서는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민서가 7kg을 살짝 넘어서고 있다. 2.02kg의 미약한 몸무게로 태어났지만 200여일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주 건강하고 활기차게 잘 자라고 있다. 민서를 들어 안는 일은 행복하지만 조금씩 삶의 무게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걱정스런 눈길을 느꼈는지 민서는 환하게 웃어 준다.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근심을 잊는다.


















요새는 뒤집기가 한창이다. 어떨 때는 잘 자다가 자기도 모르고 뒤집고는 끙끙대는 통에 나와 아내의 잠도 깨우고 만다. 그럼에도 아이가 뒤집는 모습은 경이롭다.

처음에는 허리를 활처럼 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와 뒷머리를 받쳐서 허리를 띄운다. 이러면 절반은 성공이다. 예전에는 여기서 힘이 딸려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요새는 다리 힘도 세지고 목의 근육도 단단해졌는지 끙끙 두번만 하면 어느새 뒤집고 엎드려 있다.

민서에게 엎드려서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가 보다. 무척이나 신기한 듯 고개를 둘레둘레 흔들며 주위를 살핀다. 자신이 한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곰곰이 뒤짚어 보는 듯한 멍한 눈빛으로 앞을 본다. 물론 그렇게 한 5분 정도 있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요새는 뒤집은 자세에서 발을 허둥대곤 한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기어다닐 것이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큰일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부모든 그럴 것이다. 아이가 다칠 거라는 생각은 그 어떤 악몽보다 무섭다.


그러나 이 세상은 비참과 무지, 불의와 폭력이 난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를 무력화시키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곳곳에서 터지는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은 것 자체가 원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음 세대에 걸어 보는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더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사회는 인간의 이런 유기적 욕망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면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꿈이다.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다. 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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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투표다. 누구에게는 20년만의 투표일 것이다. 아니, 어떤 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투표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소중하다고 하는 그 선거권. 어찌 보면 성스럽기까지 하지 않는가. 이 투표용지 하나 얻어 보자고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피들이 흩뿌려졌고, 1987년에는 넥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투표용지를 볼 때마다 거기에 서려있는 피와 눈물을 느낄 때가 있다. 적어도 투표라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있어 섬세하고 엄숙한 종교 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 드디어 집으로 선거공보물이 도착했다. 후보들의 면면이야 그동안 동네에 붙은 선거벽보를 통해 눈에 익어 있었는데, 내 눈에 가장 이색적으로 비친 것은 투표 장소였다. 이번 투표 장소는 이전의 종교 시설이 아닌 근처 경로당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경로당은 바로 집 앞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오랫동안 그 종교 시설에서 투표를 해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줄곧 한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동안 그 종교시설이 세워진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자원 봉사를 하는 청소년들의 친절한 안내를 동네 어귀부터 받을 수 있었고, 투표장 안도 적당한 넓이에 부산함 없이 줄을 서서 투표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종교시설도 번번이 투표 때마다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공간을 내어 주고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희생한 것인만큼 그 장소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일 기독교인이 절에 들어가서 투표해야 한다면? 만일 불교인이 성당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면? 만일 천주교인이 이슬람사원에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면? 물론 관광의 일환으로 절, 성당, 교회를 ‘구경’간다. 그러나 분명 엄숙하면서 즐거운 투표 행위가 종교적 신념과 다른 곳에서 치러진다고 할 때, 게다가 내밀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행위인 기표 행위가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이 있다는 종교시설에서 치러질 때 느끼는 모종의 불안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정말 투표가 그런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축제일 수 있을까? 굳이 배타적일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지 않는 투표소 설치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2005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은 절반을 넘는 53.6%라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선택할 수 있지만, 투표 장소는 선택할 수가 없다.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서울시만 해도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한 곳이 2,210개 투표소 중 511개소(23.1%)로 꽤 많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147조 제2항은 투표소를 “투표구 안의 학교, 읍·면·동사무소 등 관공서, 공공기관·단체의 사무소, 주민회관 기타 선거인이 투표하기 편리한 곳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서울시처럼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그런 공공장소가 없을 리가 없다. 물론 경로당이라는 공간을 투표 장소로 활용함으로써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투표일 하루만큼은 불편을 겪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선거를 계기로 노인들의 사랑방인 경로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경로당을 찾아와 그동안 소외된 공간이었던 경로당이 오랜만에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투표소 앞에서 사진을 찍어서 선관위로 보내면 추첨을 통해 경품도 준다고 하니, 경로당 앞에서 우리 세 식구 가족사진을 찍어봐야겠다. 이번 선거는 한결 더 신나고 재미있게 투표할 수 있어서 좋다.




2010. 5. 30. 국가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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