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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지인분들께 돌잔치 초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애초 돌잔치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고생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안한다고 했다가

주위 어르신들의 강권도 있고 아내의 바램도 있어서 결국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주변에서 우리 딸의 건강을 염려하고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고,
또 여러 방면으로 도움 주신 분들이 많은데, 따로 인사드릴 기회도 없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무리한 일정이나마 잡아보고 인사드리고자 하게 됐습니다.
늦게나마 이런 자리를 통해 인사드리게 된 점 죄송스럽습니다.

연말이라서 많은 연말 모임이 잡히고,
또 세상이 어수선하다보니 주말 같은 때는
가족과 오붓하게 지내는 시간이 훨씬 좋다고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다보니, 토요일 저녁 너무 어려운 걸음 하시는 분들에게는 또한번 죄송스럽게 됐네요.

아무튼 강민서 돌잔치 합니다.

축하를 받기 보다 감사하는 자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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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초대 이메일의 내용이었습니다.
자세한 시간과 장소가 궁금하신 분은 메일 또는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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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돌잔치에 초대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2.02kg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랑 헤어져 인큐베이터에서 스무날을 보내야 했던
그 아이가 어느덧 1년의 생을 넘기고 있네요.
그동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꼬물꼬물 거리며 바닥에서 버둥거릴 때만 해도 언제 커서 제 발로 걸을까 걱정했는데,
어느덧 혼자 일어서 걸음마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세월의 치유력을 실감합니다.

돌잔치라는 게 아이 생일 잔치인데, 그 주인공인 아이는 피곤하고 힘든 과정이라 생략할까 했지만,
이렇듯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이 아이에게 크나큰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셨던 것이며,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삶의 의지가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큰 힘이 되어 주었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하고 비범한 자리를 만들 능력은 없어서
사회 일반에서 행하고 있는 이벤트성 돌잔치를 열게 됐습니다.
엄마아빠의 부족한 능력을 탓하시는 말씀은 새겨 듣겠습니다만,
저희 딸의 건강과 안녕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따로 전화 연락을 드리지 못함은
따로이 잡고 계신 좋은 주말 약속을 저희의 미천한 행사에 참석하느라 놓치실까 두려워함이니,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강대진의 민서 크는 이야기: 블로그 링크
하미라의 민서 크는 이야기: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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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달력을 한 부를 샀다.
내년에는 부디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차별이 없애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도 백번씩 나는 나의 삶이, 살아있는 혹은 죽은 사람의 노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리고 받은 것 만큼 되돌려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만 하는가를 스스로 일깨운다."

우리는 단 하루 한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상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면서도 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돌리곤 한다. 내 지금의 안락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삶도 그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여기 최소한의 변화를 원하는 작가들의 카메라가 일을 벌였다. 무한도전의 달력 보다 재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사진 안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 토요일 저녁을 즐겁게 해주는 무한도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무엇에 빚지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사진들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존재 가치가 있다.

2011년 달력이 다 끝나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반인권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부디 작은 혹은 최소한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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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났을까. 인연이라는 것은 뜻하지 않게 다가오는 우연성 때문에 종종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운명은 길 위에서 시작된다. 삶이라는 것은 누구나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길 위에서 종종 길을 묻곤 한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길이 옳게, 바르게 가는 것일까.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평생의 반려자로, 그리고 동행자로 만난 그이와의 사랑에 또 하나의 작은 생명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사람을 얻는 것만큼 부유해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결혼이든 출산이든, 사람만한 재산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아지면 그만큼 부자유스러워진다. 인생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 그것이 크고 위대할수록 버려야 할 것도 크고 무거운 것들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처음에는 스스로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결국은 깨닫는다. 버리는 것이 얻는 것보다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문학의 길을 가기 위해 의사의 길을 버렸고, 대화가 반 고흐는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버리지 않고 다 가지려는 욕심이 사람과 세상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래된 친구와의 연락도 줄어들고, 슬픔을 달래주던 술친구도 없어지며, 내 고민을 들어주던 담배도 끊고, 식도락 여행 대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술이나 담배, 음식은 차라리 쉽다. 어려운 것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홀해지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금단 증상은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중했던 것을 버리고 포기하면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간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버리면서 나눔의 삶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의 가치는 소유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더 커진다는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겉으로 나누는 사람들은 결코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버리지 않고서는 나눔의 가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은 져야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모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화려한 과거는 있다. 열매 맺지 못했다고 꽃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삶의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얻고 버리고 나누는 삶의 모습은 그것 하나로 완전한 삶의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꽃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살아 있는 지금이 바로 화려하게 개화하고 있는 순간이다. 길게 피는 꽃이 100일을 가듯이, 우리네 삶도 길면 100년 동안 이어진다. 살아 있는 경험을 하기에는 충분하고 넉넉한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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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이 근심거리라고 말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 보도를 접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가장 씁쓸할 것이다. 근심거리까지는 아니지만, 풍년이 예전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지금의 딜레마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의 하나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쌀은 그 가치가 예전 같지 않다. 발전된 농업 기술로 쌀 생산량이 대폭 증가한 것도 이유겠지만, 쌀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바다 건너 들어오면서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30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남는 쌀에 대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부는 일단 햅쌀이 나와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우선 40~50만톤을 사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재고 쌀 149만톤 가운데 비축분으로 100만톤을 뺀 나머지는 가공용으로 처분키로 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북한에 대한 쌀 지원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현재의 남북 경색 국면을 타계할 수 있는 계기로서 대북 쌀 지원을 조심스럽게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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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북한의 사정은 어떨까. 당장 쌀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북한은 지금 절박한 상황일까? 이 에 대해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세계식량기구의 평양사무소 토벤 두에 소장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는 북한 신의주 지역의 홍수와 관련, “잠정 집계에 의하면 북한 주민 2만3천명이 대피했다”면서도 “아마도 북한 정부가 수해를 자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수해지역의 농작물 피해는 매우 심각하지만 전국적으로 (피해지역이) 좁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이라고는 것이다. 그는 이어 올해 식량 수확과 관련해서는 “9월 작황 상태를 평가할 예정이고 그것이 끝나봐야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이 정권 유지에 악용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세계식량기구를 통한 식량 지원은 군부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우리는 훌륭한 분배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토벤 두에 소장의 말을 요약하면 북한의 올해 수해는 그다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며, 농작물 피해는 좀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또 북한의 지금의 식량난은 2006~2007년의 수해 때에 비하면 견딜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한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결핍에 시달리고 있어서 세계 식량 기구에서도 평양 사무소를 두고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상황이 예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나 기아에 따른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8년 9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식량 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분리하여 추진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 권고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06년 ‘북한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본 입장’에서도 천명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은 정치적 사안과 분리하여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쌀이 남아돌아 일부 쌀은 사료용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한국 사회에서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베풀 쌀에 대해 인색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엔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ICESCR) 제11조는 “모든 사람은 배고픔에서 자유로울 기본적 권리가 있으며 적절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웃 주민의 굶주림에 아파하며 이웃을 돕는 시민의 인간적 존엄성이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예전 보릿고개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반도 북쪽의 주민들의 기아 상황에 대해 아무 대책도 없다면 이는 또 다른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남북관계 상황, 북한의 전반적인 식량 상황, 쌀 지원 문제에 대한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언론에서는 민간차원의 대북 쌀 지원은 허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간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인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수호하는 일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싸움 중의 하나다. 지구에 인류가 그 역사를 써 온 이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한 존엄성이며, 우리가 수호하며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가치였다. 남북관계 역시 쌀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통한 관계 회복의 노력이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다가올 미래의 통일 한국이 보다 인권적인 사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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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여승무원 승소 소식을 접하고서...


처음에 그들은 그야말로 빛나는 존재였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찬사도 들었다. 입사도 쉽지 않았다. 적게는 13대 1, 많게는 135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 시속 300km의 거침없는 속도처럼 내달릴 인생을 꿈꾸었을 것이다. KTX 홍보 광고에도 단연 돋보였다. 그들을 선발할 때 철도공사 임원이 배석하여 키와 용모, 나이 등을 따져가면서 사람들을 선발했다. 선발된 이후에도 교육과 업무 지시, 감독 및 평가, 대외 홍보활동에까지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철도공사의 직원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철도공사 직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주와 도급을 거쳐 그들은 비정규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들은 거리로 나섰고 언론은 키 크고 예쁜 젊은 여성들의 거리 집회에 반짝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이 사실상 한국철도공사(KTX)의 실질적인 정규직 근로자이며 철도공사는 이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관련 기사 : “해고된 KTX 승무원들, 철도공사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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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을 돌려 2006년으로 가보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2월에 KTX여승무원 관련 진정 2건을 받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여성에 대한 고용차별이라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 생소한 사안에 대한 조사는 쉽지 않았다. 처음 사건을 배당받았던 조사관은 월간 <인권>(2006년 11월호)에 이렇게 밝혔다.


“처음 사건을 배당받고 든 암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본질적인 비정규직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법망에 걸리지 않는 간접고용 사건인 것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던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은 성차별을 주장해 정규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KTX 여승무원들은 그토록 열심히 싸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관련 기사 가기


지난한 과정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9월 KTX 여승무원에 대해 성별을 이유로 하는 고용 차별이라며 한국철도공사에 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관련 보도자료 가기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한 차별의 내용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이 어떤 편견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4년이 지난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문제다. KTX여승무원 채용 과정에서 한국철도공사는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용모의 여성’을 채용 조건으로 내세웠고, 신입직원의 경우 21세부터 25세까지로 나이를 제한하였으며, 162cm 이상을 신장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업무에 있어 신장과 나이의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어떠한 논리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남성 중심 사회의 차별적이고 일방적인 시선만이 존재했다. 게다가 이는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을 채용기준으로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금지)을 위반한 것이다.


다음은 ‘성차별에 근거한 분리 채용’의 내용이다. KTX승무원의 역할은 방송 시스템 취급, 승강문 취급 및 이례적인 사항 발생 시 조치 등 본질적인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는데, 이 중 고객서비스 업무만을 단순 반복적인 업무로 보아 여성 승무원에게 전담시킴으로서 저임금과 고용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 문제는 여성의 일을 평가절하 하는 성차별적 편견에서 비롯됐다. 현대 사회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 시장에 끌어들이면서도 여성의 노동을 공짜로 제공되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았다. 누군가를 보살피고(고객서비스, 돌봄, 간병 등), 청소하고, 요리하는 일에 대해 저평가하여 저임금을 지급하고, 외주나 도급화 등을 통해 차별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KTX여승무원 사례는 승무원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를 모두 배제시키고 그중 돌봄의 영역(고객서비스)으로 축소하여 저임금 계약직으로 비정규직화 해 차별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철도공사가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고용을 시정하는 한편,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차별에 가슴 아파했을 KTX여승무원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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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태양은 나를 향해 비추며, 바람마저 내 귀밑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준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나를 축복하고 꽃들도 내 아름다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그런 날들. 내 사랑과 열정이 넘쳐나던 젊은 날을 떠올릴 수 있고,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거나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전직 군인이었던 한 여성은 구금자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내 보이며 “내 삶의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그이에게는 군대에 있던 젊은 날이 국가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하며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련 기사: 이스라엘 여군 “내 최고의 날” 페이스북 사진 인권침해 논란



그러나 아름다운 삶은 지금 있는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 사진은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온 정신적 문명이 망가지는 장면을 담은 것일 뿐이다. 눈이 가려지고 손목이 묶인 수감자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은 것, 타인의 고통과 수치심, 절망감에 대해서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을 그저 사진 속 배경에 처리해 버린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는 “언젠가 우리는 모두 생활(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부(가진 것)의 척도가 아니라 나눔의 척도로,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선함으로 평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최고의 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 과연 그 최고의 날은 생활수준의 기준으로 잡았던 것일까? 부의 척도로 재단했던 것일까? 아니다, 내면적인 선함, 인간성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다가오는 8월 22일은 역사적인 제네바 협약이 맺어진 날이었다. 1864년 8월 22일 제네바에서는 전쟁에서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을 맺는 것으로 출발해 지금은 전시에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조항까지 전쟁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약속으로 자리매김했다. 제네바 협약의 정신은 치열한 전쟁 상황에서도 야만적인 상황을 멈추게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여성이 놓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사진은 ‘내 삶의 최고의 날’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구에게 분명 ‘내 삶의 최악의 날’이 되는 사진이다. 우리 스스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배울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과 갈등의 배경이 저 사진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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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wls0115: @saunakim 말씀대로 진실은 밝혀지겠죠. 하지만 언론통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는 지금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심각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aunakim: @eowls0115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씀 하시는 건지요?


이전부터 김철균 비서관을 팔로잉 하면서 그가 소통하려는 노력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또 그의 이런 노력이 진심이라는 것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오늘은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다. 김 비서관 말대로 PD수첩의 불방과 청와대 사이에 아무 연관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며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의 오해는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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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언론통제와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지적된 사안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질문이 좀 도발적인 면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마치 그런 일은 없다는 듯이 반문하는 건 아니다. 약간은 흥분해서 요새 말하는 폭풍 트윗을 좀 했다. 다음은 이후의 내 트윗이다. 비서관에게 맨션으로 날리지는 않았다.


1. 국제앰네스티는 2010연례보고서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1년간 인터넷과 집회·시위 등에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면서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기소 사건 등을 소개했다.

2. 국제엠네스티는 “미네르바 사건 이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많아지고 정부의 무리한 기소가 늘었다.”면서 “과도한 불법화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 그 외에 용산참사나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의견 표현은 매번 경찰과 검찰에 의해 협박당하거나 위협당하거나 체포 연행 기소 등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4. 지난번 6.2 지방선거는 세계 선거사에서 웃음거리가 될 만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이나 친환경 무상급식 홍보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 것은 기가 찰뿐이다.

5. 게다가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를 조사하러 온 유엔 특별 보고관을 미행한 것도 한국정부의 외교통상부 직원이다. 누구든 사찰하고 미행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6. 그 외에도 공무원, 교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 침해는 언급안하겠다만, 기소, 고발, 고소 등으로 표현의 자유 위축시킨건 명백하다.

7. 이번 PD수첩 사태 역시 표현의 자유 침해 연장선에서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 물론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사람들이 청와대를 의심하는 건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 침해가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 생애 최초의 폭풍 트윗의 내용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 전반에 표현의 자유 등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건 이번 PD수첩 불방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등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 특별한 조처를 취할 생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도 나쁘지만,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을 그냥 놓아두고 있는 것 역시 잘못이다. 이것이 정부가 우리 사회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이번 PD수첩 불방 사태에 대해 억울해 할 것만 아니다. 우리 사회 인권 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내놓지 않는 한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청와대를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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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에 우리나라가 동참하면서 이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란과의 경제 교류 분야에서 있을 우리 기업의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란 사람들의 삶과 의식에 대한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란을 과격한 종교의 나라로 오해하고 있는 이면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이전부터 서방 세계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 온 이란은 서방 언론 매체를 통해 과격한 종교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지난해 반정부시위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보여준 이란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에 ‘이슬람’이라는 편견을 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여성 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2009년 만해평화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물론 유감스러운 사건이 있지만 그게 이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같은 이슬람 정부라고 해도 여성 총리가 나온 나라가 있을 정도로 이슬람도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있으며 충분히 인권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다만 비민주적인 정부들이 인권을 억압하는 정책에 ‘이슬람’이란 말을 남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립스틱 지하드, 하이힐 혁명

지난해 있었던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일명 ‘립스틱 지하드(성전)’, ‘하이힐 혁명’으로도 불린다.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셨다는 것이다.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6~7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개혁파의 상징색인 녹색 스카프나 깃발을 든 채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여성의 정치 사회 운동 기반과 민주주의 의식의 저변 확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모습이다.


이전부터 이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롭고 실용주의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공식적인 옷차림 규제는 매우 엄격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허용치를 넘나드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10대들은 속이 비치는 머리스카프로 흉내만 내면서 엉덩이도 덮이지 않는 짧은 겉옷을 입고 다닐 정도다.


또 이란의 인터넷과 휴대폰 보급, 그리고 그 여파도 이번 시위에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 상에서 빠르게 전파되는 시위 소식은 그대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혈 사태를 곧바로 감지할 수 있어서 세계 여론을 끌어들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유혈 진압의 상처와 그 치유

결과적으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이란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선거 부정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었고, 그 의혹을 표출하는 이란 민심에 대한 무자비한 유혈진압이 일어났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10년 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이란 정부의 국민통제는 더욱 강화됐고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민병대, 경찰의 민간인 탄압과 불법체포, 감금, 폭행이 상시화 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국제엠네스티는 1년간 체포된 이란 반정부시위대가 5,000명이 넘는다는 보고서를 냈다.


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 교도관들이 수감자를 구타하고 강제로 수감자의 손톱을 뽑는 등 가혹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온라인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수감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카리작 구치소를 폐쇄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란 사법부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140명을 즉각 석방하기에 이르렀다.


이란의 지난해 유혈 사태는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전 세계인의 양심이 지켜보고 응원한다면 그 치유 과정 역시 빠르게 전개될 수 있다. 눈여겨 볼 사실은 이란은 세계 최대의 난민 수용 국가라는 점이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자료에 따르면, 이란은 100만 명이 넘는 난민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한다.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인 이들에게 이란 정부는 거액을 들여 사회보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대신 그들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고 한다.




장금이와 천국의 아이들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분야에서도 꾸준한 교류를 통해 더욱 발전된 관계를 이룰 수 있다. 많은 이란인의 가슴 속에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낸 한국 드라마의 ‘대장금’(2006년 이란 국영 TV IRIB에서 방영해 8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이란 국민들의 인기를 얻었다)이 새겨져 있고,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천국의 아이들’(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이란 영화, 2001년 국내 개봉)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이란 영화, 2009년 국내 개봉)의 맑고 투명한 눈망울을 기억하고 있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에서 한층 나아진 모습으로 경쟁할 때 세계 평화와 인류애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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