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후배 Y를 만났다. 그 이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에 아들을 낳은 워킹맘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바로 아이를 갖게 되었지만, 아기를 어린이방에 맡기고 출근하는 일이 쉽지 않은가 보다. 이날의 만남은 후배의 고민 때문이다. 나와 만난 Y는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눈물부터 흘리며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기를 어린이방에 맡긴지 얼마 되지 않아 아기는 그만 요도 간염에 걸려 신장까지 바이러스에 간염 되어 열흘이나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단다. 그동안의 마음고생 몸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아기는 얼마 전에 퇴원해서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하는 Y의 마음은 더할 수 없는 상처로 아..
사실 동생이 가게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에 건물주가 거부해서 계약이 틀어졌다. 당시 권리금으로 수천만 원이 이야기 되던 시점이다. 그리고 얼마 후 건물주가 바뀌었고, 새로 온 건물주는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했다. 재건축을 하겠다는 건데, 처음에는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듯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작년 여름부터 말이 바뀌었다. 이주비(300~500만원)는 줄 수 있으나 다른 보상은 없단다. 동생 가게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가게들에게도 똑같이 말했나 보다. 이런 조치로 이 건물주에게 돌아갈 이익은 약 2억원에 가까울 거라고 동생은 말한다. 동생의 바람은 많은 보상비를 요구하는 게 아닌,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서 1층이 아닌 2층에서라도 ..
지금은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신 분이죠. 그러나 그는 감옥 생활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던 공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과거 1977년 청주 교도소에서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중략)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중에서 얼마전 사형수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가 ..
지금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의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지요. 그러나 1970년 오늘 여기서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화염으로 세상을 밝히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수유리 집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아낀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점심을 사 먹인 일화는 그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인간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연구자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한문이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날이 새가면서 읽고 해석하며 스스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 근로기준법이 고통받는 여공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
그러고 보니 오늘은 1자가 네 개나겹치는 날이죠. 이런 날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명목이 바로 길죽한 과자 이름을 딴날입니다. 당초 부산의 어느 여학교에서 11월 11일을 맞아 서로 살을 빼고 날씬해지자며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날이라는데, 지금은 해당 업체의 한해 매출의 절반가량을 해결해 주는 상업적인 날이 되어버렸네요. 이 날의 상업적 흥행은 아무래도미디어가 한몫을 했다고 보기에 여기서는 단 한글자도 그 과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11월 11일은농업인의 날이었죠. 과자의 이름으로 날을 기억하는 것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 더욱 뜻 깊고 의미 있지 않을까요? 사람의권리, 인권을 생각하는 블로그이니만큼 오늘 ‘농업인의 날’..
책을 만들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어처구니 없이 터지기도 한다. 모니터와 가인쇄 과정에서 문제가 없던 색의 문제가 실제 인쇄과정에서 터져서 애를 먹는 건 다반사다. 이번 교과서의 경우 특정 인쇄소의 인쇄에서 자꾸 문제가 발생했다. 바탕에 10%의 농도로 색을 깔아 놓았는데, 거의 30%에 가까운 색농도가 자꾸 배어 나오는 것이다. 인쇄 기장님의 말에 따르면 원래 30%로 왔던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분명 데이터 값에서는 10%로 보냈던만큼 인쇄하는 사람이나 편집자나 속이 타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부분 즉석에서 기계 조절을 통해 색농도를 낮추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며 이로 인해 다른 지면의 사진이나 색이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라 지나친 색 조절은 오히려 독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
길고 긴 장정이 마무리 단계에 다가왔다. 그동안 하군(마눌님 애칭)과 뜨기(태아 애칭)에게 서운하게 할만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하군은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언제나 많은 것을 이해해 주었고, 뜨기는 새벽에 들어오는 아빠의 음성을 잊지 않고 힘찬 발길질로 맞아 주었다. 직장인의 밥벌이 노동은 어디가나 비슷하겠지만, 교과서 편집 업무는 마치 수많은 야수와 독충들로 우글거리는 정글 속을 탐험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거다. 오늘도 아는 후배 하나는 나에게 말했다. "정말로 나 죽을뻔 했어요." 그 말이 결코 평범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이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노고 속에서 탄생한다. 단행본 출판사에서는 결..
1991년,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인 구례를 찾아갔을 때 장장 24시간에 걸쳐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저의 귀향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귀성 전쟁은 비단 저만 치르는 것은 아니죠. 추석 이후에는 너나없이 모여 서로 어떤 귀성전쟁을 치렀는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국인이면서 고향이 먼 시골이라면 대부분은 겪어봤을 고통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향길이 아니라 고행길이라지만, 어쩌면 이 분들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사치에 가까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오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남북 각각 100가족이 극적인 상봉을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이후로 끊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