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민서가 다음달 생일이 되면 딱 60개월이 된다. 처음 2.04kg의 미숙아로 태어났고 인큐베이터에서 3주 머물때는 1.89kg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새 키도 또래 아이보다 크고, 몸무게도 비슷하게 나간다.
신생아실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의 일이다. 면회도 쉽지 않아 예약하고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날이 잘 견디고 건강하다는 이야기만으로 감사해 했다. 엄마 젖을 빠는 모습은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면회를 하려고 대기할 때였다. 안이 부산스러웠다. 결국 많이 아프던 미숙아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 아주 작은 상자가 나오고 뛰따라 엄마아빠가 따라나왔다. 우리는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민서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산부인과나 유아관련 의학은 이제 비인기학과가 되고, 종합병원의 신생아실 유지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태아보험도 들고, 정부지원에 구청 미숙아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행운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보다. 아름다운 재단의 미숙아 지원 기금 모집을 보면서 민서가 태어났을 때의 그 겨울이 생각난다.
선비 이호창(송강호 분)은 유일한 출세의 길이었던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삶의 목표를 잃는다. 형은 시대적 울분을 안고 의병활동을 나서고, 아버지는 개화세력에 밀려 관직을 그만두고 서당을 운영한다. 아버지는 호창이 서당을 물려받기를 원하지만 호창은 과거 제도가 폐지된 후 암담한 미래 앞에서 글에는 관심 없고 공놀이만 즐긴다.
어느날 호창은 아버지 몰래 공을 차다가 공이 남의 집으로 들어가자 공을 찾으러 담을 넘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야구공을 보았고, 유학파 신여성인 민정림(김혜수 역)을 만나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호창의 아버지는 아들이 서당을 물려받아 글공부를 하면서 초야의 선비로 지조 있게 살기를 바라지만, 호창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여 효도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신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마음에 품고 있는 정림에 대한 사랑을 키울 것인가를 놓고 갈등한다.
우여곡절 끝에 민정림이 활동하는 YMCA에서 ‘베쓰볼’ 팀이 모집되었다. 이 야구단이 황성기독교청년회 야구단이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구한말 조선의 백성들이 야구팀을 만들어 훈련하고 경기를 펼친다. 이후 덕어학교, 영어학교와의 경기에서 연승 행진을 하면서 조선 최고의 인기 야구팀이 되었지만, 을사조약 이후 나라의 위기로 인해 야구팀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들이 야구 연습을 하던 연습장에 일본군이 들어오고, 일본군 팀의 성남구락부와의 중요한 야구 경기가 펼쳐지지만, 주요 멤버인 오대현(김주혁 분)과 이호창의 불참으로 경기는 지고 만다. 패배와 함께 해체 위기에 놓인 YMCA 야구단은 다시 한 번 어렵게 일본 측과의 재경기가 성사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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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첨삭하면 쉬워지는 교과서
① 개화기의 스포츠
1876년에 개항과 함께 본격적인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 체육도 근대적 체육 형태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근대적 체육의 특성인 체조, 유희, 스포츠 등이 나타난 것은 1894년 갑오경장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대 체육의 도입은 특수층만의 유희나 무예적 체육에서 모든 학생들이 교과로서 참여하는 서민 본위의 체육으로 변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1885년 2월에 고종이 발표한 ‘교육조서’에 따르면, 당시 교육의 실제는 ‘덕육, 체육, 지육’에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근대적 교육의 3대 강령에 따라 1895년의 소학교령에서는 체육의 목표를 ‘아동 건강의 유지 증진과 발육 발달’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체조’를 교육시키도록 하였다.
근대적 스포츠의 도입 시기
경기
도입일시
최초 경기
체조
1895. 4. 16.
한성사범학교 설치령에 체조 교과가 정식으로 채택
육상
1896. 5. 2.
영어학교 교사 허치슨의 지도에 의한 화류회에서 경기 가짐.
검도
1896
경무청에서 검도를 경찰교습과목으로 채택
수영
1898. 5. 14.
무관학교 학생들에게 휴가시 수영 연습을 명함.
씨름
1899. 4. 30.
학부주최 관·사립학교 운동회에서 경기종목으로 채택
사격
1904. 9. 24.
육군연성학교에서 사격을 교과목으로 채택
야구
1905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원들에게 지도
축구
1905
외국어학교의 외국인 교사들의 지도로 학생들이 축구를 함.
사이클
1906. 4. 22.
육군참위 권원식과 일본인 요시카와가 훈련원에서 경기 개최
유도
1906
일본인 내전양평에 의해 전래
농구
1907. 봄
황성기독교청년회 초대총무 질레트가 회원들에게 보급시킴
빙상
1908. 2. 1.
평양 대동강에서 일본인들이 빙상운동회 개최
정구
1908. 4. 18.
탁지부(현 재무부) 일반관리의 운동회 때 정구경기종목 채택
승마
1909. 6. 13.
근위기병대 군사들이 훈련원에서 기병경마회를 거행
▲ 자료: 『대한체육회사』, 대한체육회, 1965.
민정림 : 운동 좋아하시나봐요?
이호창 : (얼굴 표정 굳어지며) 나! 선비올시다!
② 근대 스포츠의 발달을 주도한 야구
1912년 황성YMCA 야구단은 일본 원정을 떠났다. 당시 일본의 어느 신문은 이들의 모습에서 비장감을 느끼며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일본을 정복한다’는 결심으로 그 젊은이들의 피가 끓었다.”
이들에게 나타났던 결기는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병탄으로 민족의 울분과 분노가 이들의 얼굴에 비쳐졌기 때문일까? 지금의 한일전처럼 당시에도 관심이 높았던 스포츠 경기에서 나타난 한일전의 각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조선백성의 야구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심훈의 시 속에서는 야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든 야구장으로 오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야구를 전했던 질레트 선교사의 보고서에서도 야구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해서 한 겨울에도 야구 경기가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매달 6~9회의 야구 게임이 치러졌다. 심지어 12월에도 3번의 게임이 치러졌다.” - 1911년, 질레트의 <연간 보고서> 중에서
1909년에 치러졌던 재일 조선유학생 야구단과 황성기독교 청년회 서양선교사들의 야구 경기에는 경기를 보기 위해 약 500~600명이나 운집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는 재일 조선 유학생이 19점을 내면서 9점을 낸 선교사 팀을 크게 제압했다. 재일 조선유학생 야구단은 이후 황성YMCA 야구단뿐만 아니라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던 조선 전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호창: 나 4번 하기 싫소. 재수없소, 죽을 死!
민정림: 제일 잘치는 사람이 4번입니다.
이호창: (웃으며) 선비 士!
③ 일제시대의 스포츠 활동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1911년 조선교육령을 공포한다. 이는 한국인을 일제의 신민으로 육성하기 위한 교육정책을 담고 있었다. 당시의 학교교육령규칙에서 체육과의 내용 중에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 … 절제를 상하는 습관을 양함을 요지로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제는 이미 순종하는 국민을 양성하도록 하는 데에 체육의 목표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육 관련 정책의 과정에서 1913년 황성YMCA는 일제에 의해 해체되고 만다. 그러나 1920년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어 그해 11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대회를 전국체전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체육 활동이 활발히 전개된 것은 체육활동이 청년들의 능력배양과 함께 일제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인식되어 문화운동의 한 부분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제는 전국규모의 체육대회를 개최하던 조선체육회를 일장기를 게양하지 않은 이유로 탄압하고 끝내 해체시키고 만다.
민정림: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을사오적, 오십적, 아니 오백적이 사라진다고 이 나라가 뭐가 달라질까. 그런 암적인 존재들이 사라진다고 사람들이 과연 기뻐하기나 할까?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아이 초원. 겉보기에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어느날 초원이가 자폐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엄마 경숙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에서는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고 초원에게 달리기 훈련을 시킨다.
시간이 흘러 초원은 20살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지능은 5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어대고, 동생에겐 마치 선생님 대하듯 깍듯이 존댓말을 쓴다.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특유의 막춤을 선보여 마트나 지하철, 야구장 어디에서나 작고 사소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온 달리기 실력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다. 경숙은 자신의 목표를 ‘초원의 마라톤 서브쓰리 달성’으로 정하고 아들의 훈련에만 매달린다.
어느날 세계대회에서 전직 유명 마라토너 정욱이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어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의 학교로 온다. 경숙은 정욱에게 아들의 코치 역할을 떠맡기지만 정욱은 속을 알 수 없는 초원을 성가시게만 생각한다. 그러나 정욱은 초원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초원도 정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정욱은 초원에게서 마라톤 서브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매번 속도 조절에 실패해 지쳐 쓰러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훈련에 들어간다.
한편 훈련 초반 불성실하게 초원의 훈련에 임했던 정욱이 미덥지 못했던 경숙은 크게 말다툼을 벌인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말라”는 정욱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경숙. 경숙은 정욱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의 경숙. 그녀는 이제 마라톤도, 서브쓰리도 모두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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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첨삭하면 쉬워지는 교과서
영화는 일상에 작은 균열을 주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문제의식을 던져 주는 매체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말아톤>은 장애와 스포츠를 결합하여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는 현대인들을 향해 일상의 행복과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하면서 스포츠가 주는 극복의 열쇠를 안겨주기까지 했다. 장애는 영화에서 불가항력, 편견, 차별 등의 사회적 현상과 함께 등장하며 주인공의 극적 성취의 카타르시스를 더해 준다. 자신 앞에 펼쳐지는 불합리와 부정 등을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초원의 도전과 가족의 화해, 용서는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말아톤>에 등장하는 장애와 스포츠에 대해 살펴보자.
① 경숙(초원 엄마)의 양육과 초원의 주체적 성장 사이에서 마라톤의 의미
초원의 자폐증이 확인되자 경숙은 절망한다.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포기보다는 극복을 선택하고 현실적 대안으로 마라톤을 정한다. 단지 초원이 남들보다 잘 뛴다는 이유로 가장 극한의 스포츠라는 마라톤으로 초원을 밀고 간 것이다. 영화 <말아톤>을 비롯해 <포레스트 검프>, <맨발의 기봉이>, <달려라, 하늬> 등의 달리기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달리기가 단순한 스포츠 행위를 넘어 현실에 대한 도전, 문제 상황의 극복, 꿈과 희망을 향한 주인공들의 원초적인 표현 행위라는 점이다.
초원 : 초원이 가슴이 뛰어요.. 초원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특히 <말아톤>에서의 마라톤은 비장애인들도 도전하기가 어려운 스포츠이며 초원의 장애를 덮을 수 있는 거대한 가림막이 될 것이라는 경숙의 믿음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초원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숙의 심리적 압박도 한몫 한다. 이러다 보니 경숙의 양육은 매우 독선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초원을 훈련시키면서 힘들다거나 하기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칭찬과 초코파이로 끊임없이 달랜다. 때문에 초원에게 초코파이는 엄마를 상징하며 초원의 독립과 성장을 방해하는 말뚝이다.
초원에게 마라톤은 무엇일까? 초원에게 마라톤은 엄마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행동 중의 하나였다. 초원을 보면서 항상 우울하고 슬퍼하던 엄마가 초원이 달릴 때 기뻐하고 행복한 미소를 진다. 엄마 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은 관심이 없는 자폐아로서 초원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자기를 버릴 수 있다는 공포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어릴적 동물원에서 자신의 손을 놓아버린 엄마에 대한 두려움은 그가 목숨걸고 달려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엄마를 위해 달렸던 것이다. 그런 초원의 마음을 경숙은 몰랐다. 그러기 때문에 경숙도 마라톤에 집착하고 초원도 그렇게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초원 : 동물원에서 엄마가 손놨지. 그래서 초원이 잃어버렸지.
하지만 초원에게 마라톤은 역설적이게도 엄마라는 유아적 안식처에서 독립적 자아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 장치가 되었다. 엄마가 나가지 말라고 하는 마라톤 대회에 처음으로 엄마 말을 어기고 출전할 때, 그 경기에서 달리다가 쓰러져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가 주었던 초코파이(엄마의 상징)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달려 나가는 장면 등은 마라톤이라는 경기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세우는 초원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초원에게 마라톤은 처음엔 엄마의 꿈과 희망이었지만 결국에는 바로 그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 준 것이다.
초원 : 이런 날이 달리기엔 더 좋지!!!
② 장애인의 스포츠 권리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헌법상의 권리는 같다. 스포츠에 대한 권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구체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실현 및 행복 추구를 위하여 문화생활 및 체육 활동을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장애인 기본권이라 함은 장애인이 장애로 인하여 처하게 되는 사회적 불리를 극복하여 인간다운 생활과 사회참여 활동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그렇지만 초원의 학교 교장은 새로 부임한 체육코치 정욱에게 “사실 특별히 할 것도 없으니까 체조 같은 거나 좀 시켜 주세요. 여긴 자폐아들만 있는데 애들이 감정표현 못하고 사람한테 도통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참 순해요.”라며 장애인 체육 활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이 장면은 장애인 체육에 대한 학교 체육의 무관심을 그대로 드러낸 장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 속 초원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체육 활동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육은 교육의 주체를 소외시키면서 대상화시키고 돌봄 또는 보육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며 교육이 가져야 할 이상적인 모습, 즉 사회적 주체로서의 성장을 이끌지 못하며 장애아들을 방치하는 모습에 불과하다.
장애인이 스포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사회적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고 인력과 재정적 지원 역시 요원하다. 이로 인해 스포츠에서 소외되는 장애인들의 현실은 심각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2009년 실시한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생활체육 활동 참여율은 7%로 나타났다. 이를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생활체육 실태 조사가 이루어진 2005년부터의 참여율과 비교해 보면 2005년 3.3%, 2006년 4.4%, 2007년 5.4%, 2008년 6%에 비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국민생활체육 참여율 34.2%(문화체육관광부, 2008)에 비하면 매우 열악한 현실이다.
우리의 열악한 장애인 체육 현실의 원인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있다. 장애인의 활동성을 인정하지 않고, 장애인의 체육 활동을 차별적 시선으로 보는가 하면, 체육 시설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처우나 보조를 불편해하거나 배제하려는 움직임들이 그렇다. 그러나 장애인들도 체육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기본적 권리의 하나다.
1992년 유럽 체육장관회의에서는 장애인들의 체육 활동 참여를 위한 결의안을 발표했다. 이 헌장에서 장애인을 위한 체육활동이 널리 보급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장애인은 일반인과 동일하게 체육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체육활동 참여는 삶의 질을 높인다.
◎ 장애인은 경기에 참여할 능력이 있다.
◎ 장애인은 체육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생리학적, 사회적 이익을 얻는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함께 체육 활동을 즐기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이에 따라 장애인의 체육 활동에 대해 사회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3. 수업 활용 방안
- 장애인이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黙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우주만물 그 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가을의 대지에는 열매를 맺어놓고 쓰러진 잔해가 굴러있다. 여기저기 얼마든지 굴러 있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檢屍)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絃)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저승에나 가서 잘사는가.”
사람들은 익어가는 들판의 곡식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들판의 익어가는 곡식은 쓰라린 마음에 못을 박기도 한다. 가난하게 굶주리며 살다 간 사람들 때문에.
“이만하믄 묵을 긴데…….”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 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 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 잡목 숲과 오도마니 홀로 솟은 묏등이 누릿누릿 시들 것이다. 이러고 저러고 해서 세운 송덕비며 이끼가 낀 열녀비며 또는 장승 옆에 한 두 그루씩 서 있는 백일홍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부터 더욱 흐느끼는 듯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마을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밤을 지샐 모양이다. 하기는 마을 처녀들의 놀이는 이제부터, 달 뜨기를 기다려 강가 모래밭에서 호작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시작될 것이다.
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묘사된 팔월 한가위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이만하믄 묵을 긴데’ 싶다가도 여기저기 빼앗기고 나면 한줌 겨울나기도 쉽지 않은 곡식들, 그것은 풍요 속의 빈곤을 드러내는 아이러니였죠. 지금 우리는 그렇게 풍족할까요?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는 도시의 음습한 그늘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200만명의 종이 줍는 노인들이고, ‘돌림병에 약 한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잠겨간 세월호 아이들이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저 바다 깊이 잠겨 있고요. 그래서 이번 추석은 더더욱 쓰린 가슴에 못을 박게 되는군요. 그리고 이렇게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그래도 추석은 명절입니다. 곳곳에 흩어져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이웃과 친척들이 한 지붕 아래 모입니다. 조상네 밥 한끼 대접하고자 모여 지나간 시간들을 술 한잔으로 털어내며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날이죠. 우리 아이들도 노을 지는 시골길에서 만나는 바람 속에서 가을 들녘의 풍요와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의 작은 행복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더불어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칼 맞고 잘게 부서진 쪽파의 비극이 여기까지 번지지는 않았을까. 무도 감자도 단단함을 잃지 않았다. 늦도록 장터를 지키다가 떨이로 딸려온 노각이 몸을 구부린다. 물정을 안다는 몸짓이다. 문밖의 상황에 따라 순서가 정해짐을, 뒤집을 수 없음을 예감한 안색이다. 그마저 포기한 쑥갓 한 묶음이 구석에서 시커멓게 절망한다. 물러지는 전신을 바라보기만 한다.
터주 노릇 하는 김치가 칸칸 일가를 이뤘다. 고춧가루와 젓갈에 휘둘린 배추가 겉절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말끔한 백김치는 도시 출신처럼 보인다. 밭에서는 제법 우락부락했을 총각무가 가지런히 통에 누워 순화되는 중이다. 억센 허리로 소금기가 스민다. 갓김치는 남도 출신답게 몸짓이 중모리로 늘어진다. 손가락으로 집으면 육자배기 한 자락이 묻어날 것만 같다. 종횡으로 잘려 한 무더기 깍두기가 된 무가 원래 자리를 찾느라 부산하다. 반투명 통으로 부석거림이 비친다. 묵은지는 길게 누워 풋것들의 살뜰함과 무력감을 보기만 한다. 겨울을 넘겨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다. 숙성이라 불리지만 자신들에게는 인내의 시간이다. 적멸로 가는 길은 짜고 맵고 종내는 시큼하다.
교과서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 지나친 활동 중심 과제들을 대폭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 해결 가능한 활동 외의 과제로서 따로 풀어야 하는 활동 과제들은 아주 가끔씩 나와야 하는데, 요즘 교과서에서는 수시로 조사-발표-토론 과제들이 등장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하지 않거나 과제로 제출하게 하는 것이 전부다.
교과서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교육과정이 쉽게 나와야 한다.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어렵게 나오고 난이도 역시 그대로라면 교과서의 난이도 역시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우산을 들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1층과 2층 사이 PVC관이 불에 녹으면서 타고 있었고, 그 안에서 불꽃이 튀면서 PVC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나고 있었다. 가까운 장소라면 소화기로 쉽게 끌 수 있는 장소였으나 장소가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라 소방차가 와야 가능할 듯싶었다. 게다가 전기 합선이 우려되는 상황인만큼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우산을 접으니 사람들 모습도 보인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있다. 선거운동원들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통제하는 역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모른는 걸까?
전화를 할까, 아니면 역 관계자에게 알릴까 잠시 생각하다가 역관계자에게 알리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봉역에 들어서면서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에 설 때까지 주의 깊게 찾아보았지만 역관계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작은 불이었지만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역 관계자나 그 상황을 통제할 책임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사람은 사라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출퇴근 길의 개봉역 그 거대한 공공 장소에 안전 요원이 없었다.
뉴욕 타임스 혁신보고서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언론 미디어는 일찌감치 디지털 시대로 인하여 역사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이 디지털 파도는 머지 않아 출판시장, 특히 교과서에도 적지 않게 휘몰아칠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콘텐츠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심층적인 결과물로서 이 보고서는 유의미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안에 불과하나 이는 모두에게 열린 제안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콘텐츠에 대한 더 깊은 생각과 사유를 위하여 의미 있는 해석글들을 링크해 본다.
▲ 슬로우뉴스의 기사
첫째. 뉴스 도달거리를 확장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라
1. 구조화된 저널리즘: 데이터 구조를 혁신하라
2. 소셜 미디어 역량을 강화하라
3. 뉴스 소비의 개인화를 지원하라
둘째. 편집국과 비즈니스 팀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셋째. 편집국에 전략팀을 만들어라
넷째. 디지털 우선 전략(Digital First)을 세워라
▲ capcold님의 블로그 기사 - NYT 혁신보고서 단상 : 모두 각자의 혁신보고서를
- 홈페이지(웹사이트의 메인페이지를 칭한다) 트래픽 감소 대처 필요
- 리패키징 전략 필요
- 개인화 강화 필요
- 소셜을 통한 유입 강화 필요
- 일회성 프로젝트보다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탬플릿의 개발 필요
- 디지털퍼스트 전략의 필요성
※ capcold 님은 각 항목에 대한 다른 의견도 많이 있으므로 소제목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됨.